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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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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말이 아닌 말

등록 2012-07-30 18:27 수정 2020-05-02 04:26

MB가 또 사과했다. 대통령 취임 뒤 여섯 번째다. 그러곤 “사이후이(死而後已)의 각오로 더욱 성심을 다해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여전히 일방적이다. ‘사이후이’는 죽어서야 일을 그만둔다는 뜻인데, 뒤집으면 살아 있는 한 그만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의 제갈공명이 위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전했다는 후출사표 고사로 유명하다. MB의 형 이상득 전 의원과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실장 등 측근들의 비리에 대해 사과했지만, 자신은 잘못한 게 없으니 하던 일을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처럼 들린다. 그런데 MB가 ‘하던 일’이라는 게 뭔가? 4대강 죽이기? 부자 감세? 공기업 내다팔기? ‘내 몫과 내 편은 끝까지 챙긴다’는 조폭적 삶의 전 사회적 확산?
최근 MB는 “통일은 정말 가까이 왔다”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벼랑 끝 대치 상태인데 뭔 통일? 통일은 세 가지 경로 가운데 하나를 밟을 수밖에 없다. 합의 통일, 전쟁 통일, 붕괴·흡수 통일. 5·24 대북 제재 조처로 북쪽을 압박하는 데 여념이 없는 MB가 합의 통일을 염두에 뒀을 리 없다. 아무리 MB라도 전쟁으로 통일하자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터. 남는 건 하나. 북쪽의 붕괴에 따른 흡수 통일. MB와 그 측근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성이 없다. 망상이다. 한반도 주변 4강은 북한의 조기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 사정이 복잡하니 다 생략하고 중국의 태도만 짚자. 한반도 문제를 대하는 중국의 태도는 한결같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다. 20세기 초반의 치욕을 딛고 다시 세계의 패자가 되려고 힘을 기르는 중국에 주변 정세 안정은 관건적이다. 북한의 붕괴에 따른 동북아 정세 격변은 재앙이다. 중국이 늘 한반도의 안정을 먼저 강조하는 배경을, 북쪽이 1990년대 동구권 연쇄 붕괴와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무너지지 않은 까닭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망상에 기반을 둔 정책이 작동할 리가 없다. 2012년 남북관계의 처참한 현실은, MB가 열심히 일한 결과다.
MB는 7월19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고소득 노조가 파업을 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고 말했다. 거짓말이다. 미국·유럽 등 많은 나라에서 고소득 노동자뿐만 아니라 공무원, 심지어 경찰도 파업한다. 무엇보다 단체행동권(파업권)은 소득의 다소와 무관한 헌법적 권리다(33조 1항). MB가 ‘헌법 수호 책무’가 있는 대통령보다는, 여전히 재벌 기업 사장님의 멘털을 지닌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까닭이다. 남 탓하는 데 선수인 MB는 이런 말도 했다. “정말 어려운 계층은 파업도 못한다.” 그래서? 물론 ‘정말 어려운 계층’도 필요하면 파업을 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치겠다는 다짐이 아니다. MB가 쌍용차 노동자·가족 22명의 죽음에 조의는커녕 관심을 보였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MB가 파업 2천 일을 넘긴 콜트·콜텍, 재능교육, 유성기업 등의 노동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하소연을 직접 들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늘 외롭고 배고파했다는 통영의 초등학생 한아무개양의 서러운 죽음에 대통령으로서 자책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사이후이’의 각오는 그만 거두시라. ‘하던 일’ 멈추시라. 그 입, 다무시라.

*‘생명 OTL’ ‘병원 OTL’ 등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김기태씨가 기자 일을 그만두고 영국 버밍엄대학에서 만학도의 길을 새로 걷습니다. 김기태씨의 작별 인사를 전합니다.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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