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俠). 겨드랑이에 낄 협(夾)자에 사람 인(人) 변을 붙인 이 글자는 약한 사람을 끼고 도는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중국 고대로부터 학식과 무예가 있으되 부귀영화가 보장되는 관료의 자리를 버리고 천하를 떠돌며 남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인물들이 있었으니, 이들을 유협(遊俠)이라 일컬었다. 재주로써 세태에 부합하지 않고 이익보다는 의로움을 좇는 존재,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면 그를 위해 모든 걸 버리는 존재, 그리고 무엇보다 유별난 자존감을 삶의 처음과 끝으로 삼는 존재.*
기자는 ‘본질적으로’ 협이 아닐까.
한 자루 검을 메고 강호를 떠도는 협객처럼 기자는 외로운 존재. 자리를 덥힐 틈 없이 늘 무언가를 찾아나서야 한다. 그러면서 만나는 이들(취재원)은 환한 미소로 마중하지만 한순간도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마음을 쉬이 열지 않는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멀리하지도, 너무 가까이하지도 않는다는 게 그들이 기자를 대하는 초식이다. 기자의 보도 행위란 게 대개 누군가에게 칼을 겨누고 달려드는 일합의 싸움이니, 그도 그럴 만하다.
억울함을 당하거나 궁지에 몰린 민초를 위해 검을 뽑는 유협처럼 기자는 또한 의로운 존재. 그가 칼을 겨누는 대상은 대개 탁리(濁吏)이거나 못된 세도가이거나 사파의 모리배다. 거악을 징벌할 판관·포교들이 정치색 덧칠한 짧은 비수나 휘둘러대는 시대일수록, 기자의 펜은 열 자의 창검이요, 기자의 마이크는 천 근의 철퇴다. 한 번 꼬나쥔 병기는 쉽게 내려놓지 않으니, 돈이나 권력이 아닌 진실을 추구함이다.
그리하여,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조차 한갓 지푸라기인 양 버리는 협객처럼 기자는 의리의 존재. 자신의 기사에 독자와 시청자가 호응해줄 때 기자는 공포스런 내전의 현장에도 눈 질끈 감고 뛰어든다. 단 한 가지 팩트를 확인하기 위해 며칠 밤낮을 몸으로 때우기도 하고 산더미 같은 자료를 밤새 눈이 빠져라 뒤지기도 한다. 예로부터 강호에 나선 기자는 집안을 돌보지 않음을 미덕으로 여기며 몸을 살피지 않음을 자랑으로 삼았다.
그러나 기자는 ‘현실적으로’ 협이 아닐 수도 있다.
권력의 하수인 자리로 잽싸게 전향하기도 하고, 검을 팔아 부를 챙기기도 한다. 사주의 이익을 위해 의를 저버리는가 하면, 사파의 유혹에 넘어가 비굴한 기사를 쓰기도 한다. 그것은 협의 본질, 바로 자존감을 허문 탓이다. 강호의 사악한 기운은 호시탐탐 유협의 허점을 노려 자존감을 뽑아내려 한다. 바야흐로 언론 장악의 회오리가 강호를 삼킬 지경이다.
이때 홀연히 나타난 일군의 기자들. ‘낙하산 사장’을 막아 공정 보도라는 자존을 지키려는 이 유협의 무리는 품 안 깊숙한 곳에 묻어뒀던 검을 꺼내들고 정권의 방송 장악에 맞서는 전선의 맨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그곳에서 혼신을 바쳐 70여 일을 버티고 있다.
이들은 강호를 구할 것인가. 싸움의 결과야 미리 단정지을 일이 못 되나, 이들의 기상이 갸륵하고 뭇 유협의 본보기가 될 법하니, 감히 사마천의 말로써 미리 기리기로 한다. 유협에 대한 첫 기록이라 할 ‘자객열전’의 말미다.
“조말로부터 형가에 이르기까지 다섯 사람은 그 뜻을 이루기도 하고, 또 이루지 못하기도 했지만, 그 뜻을 세움이 빛을 비추듯 분명하니 이를 속이지 않고 이름을 후대에 드리우도록 해야 한다. 어찌 헛되이 하랴!”*
*(문현선 지음, 살림 펴냄)을 참조했음.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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