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베이징시 차오양구 ×××× 지역을 관할하는 방역본부다. 혹시 며칠 전 오미크론 확진자가 발생한 ×× 건물 부근을 지나간 적이 있는가? 당신 스마트폰 행적코드(行程码·이동 및 여행 기록 코드)에서 그 건물을 지나간 행적이 나왔다. 오늘 밤 자정 이후 당신 스마트폰 건강코드(健康宝)가 단촹(弹窗·확진자나 밀접접촉자가 나온 지역을 방문하거나 지나간 흔적이 있을 경우 스마트폰 건강코드에 자동으로 뜨는 실행오류 알림표시. 이 표시가 뜨면 모든 공공장소 방문과 이동이 금지돼 사실상 외부활동이 불가능함)될 것이다. 해제하려면 사흘 동안 연속 이틀 이상 유전자증폭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와야 한다. 자세한 사항은 당신 아파트 관할 주민위원회에 문의하기 바란다.”
시원한 밤바람을 쐬며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던 중 걸려온 낯선 번호의 사람이 대뜸 나에게 이렇게 ‘선고’했다. 건강코드에 실행오류가 뜬다는 건 사실상 사회적 사망선고와 같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중국 내 거의 모든 장소는 건강코드와 행적코드에 ‘초록 코드’가 부여돼야 방문과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접촉자가 다녀간 장소 근처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을 뿐인데도 나의 스마트폰 행적코드는 방역관리 당국이 관리하는 빅데이터가 자동으로 식별해 ‘위험분자’로 선고한다.
며칠간 유전자증폭검사만 받으며 좀비처럼 지내다가 드디어 건강코드에 다시 ‘초록불’이 켜졌을 때,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불법 난민 신세에서 ‘그린카드’를 부여받은 합법 시민이 된 기분이랄까. 저절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뚫고 나갈 거야. 여기서 저기로.”(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대사)
드디어 해방된 것이다. 해방 기념으로 아이들과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동네에서 제법 멀리까지 ‘드라이브’를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강제 영업정지가 풀려서 약 한 달 만에 다시 문을 연 근처 식당에 가서 오랜만에 외식의 해방도 누리려 했다. 건강코드를 스캔한 뒤 종업원 눈앞에 최대한 가까이 들이밀며 당당하게 식당 안으로 입장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중학생 아들이 문 앞에서 종업원에게 입장 제지를 당했다. 건강코드에 48시간 이내 유전자증폭검사 음성 결과가 있어야만 입장이 가능한데, 아들 녀석의 기록은 48시간에서 거의 하루 정도 지났다는 것이다. 옆에 있던 고등학생 딸아이가 동생과 종업원을 번갈아 째려보며 “킹 받는다”(‘열받는다’를 뜻하는 신조어)고 했다. “온종일 인터넷수업을 하느라 요 며칠 짬을 내지 못했으니 좀 봐달라”고 통사정했지만, 종업원은 “국가 방역 규정이라 우리도 어쩔 수 없다. 발각되면 다시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다”며 단호한 태도를 고수했다.
내 보리밭의 보리를, 내 수확기로 수확하려는데상하이에 사는 팔순 넘은 할머니가 집 앞 단골 가게에서 국수 한 다발을 사려 했다. 그날은 마침 할머니 생일이어서 기념으로 ‘장수면’을 끓여 먹으려 했다. 한참 동안 줄을 서서 마침내 가게에 들어갈 차례가 됐을 때, 할머니는 울상이 됐다. 가게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건강코드를 스캔한 뒤 ‘초록불’이 확인되고 48시간 이내 유전자증폭검사 음성 결과가 있어야 입장이 가능한데, 할머니는 스마트폰을 들고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스마트폰이 집에 있기는 한데 사용법을 잘 몰라 거의 쓰지 않았다. 입장을 제지하는 종업원에게 할머니는 “신분증은 안 되냐?”고 물었지만 종업원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뒤에 있던 사람에게 부탁해서 “돈을 줄 테니 나 대신 국수 한 다발을 사달라”고 했다. 그 사람은 흔쾌히 응했고 자기 차례가 와서 건강코드를 스캔하고 입장하려는 순간, 다시 종업원에게 제지당했다. 그의 스마트폰 건강코드에 기록된 유전자증폭검사 음성 결과가 이미 72시간이나 지났던 것이다.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1m 거리에 국수가 진열돼 있었지만 그 사람과 할머니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국수를 사려고 했던 사람이 올린 할머니의 사연은 2022년 6월20일께 중국 내 각종 소셜네트워크와 인터넷 매체 등에서 가장 널리 퍼져 ‘웃픈’ 뉴스가 됐다.
허난성 주마뎬촌에 사는 한 농부는 더 황당한 일을 당했다. 6월 초, 보리를 수확하려 자신의 보리밭에 가서 막 수확기를 이용해 보리를 베려던 참이었다. 마을의 촌지부 서기(가장 높은 직위)가 달려오더니 다짜고짜 화내며 “누구 맘대로 보리를 수확하는 거야! 빨리 멈춰!”라고 명령했다. 48시간 이내 유전자증폭검사 음성 결과 확인서가 없으면 수확할 수 없다고 했다.
기막힌 농부는 “내 밭에서 내가 직접 심은 농작물도 누구 허락을 받고 수확해야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마을 촌지부 서기는 “정부 방역 규정을 어기면 처벌받는다”며 기어이 농부를 쫓아냈다. 자기 농지에서 쫓겨난 농부는 어디에 마땅히 호소할 데가 없자, 스마트폰 동영상 앱에 짧은 하소연 동영상을 올렸다. 보리를 수확하러 갔다가 48시간 내 유전자증폭검사 음성 결과가 없다는 이유로 쫓겨난 농부의 사연은 곧바로 중국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고 외신에도 퍼져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산시성 타이위안에 사는 중년 여성 장싱싱은 어느 날 날벼락 같은 일을 당했다. 4월18일 이후 자신이 허난성의 소규모 농촌 은행에 저축한 60만위안(약 1억원)이 갑자기 인출 정지된 것이다. 온라인 은행에 ‘인출 불가’ 공지가 떠서, 해당 은행에 전화해 물어보니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복구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아 다시 전화했는데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장싱싱은 온라인 은행 인출 금지에 이어 오프라인 영업장도 인출 금지가 되고 아예 은행이 셔터를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왼쪽 눈이 안 보였다. 의사는 급격한 스트레스로 눈 정맥에 출혈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황반부종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당장 수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장싱싱은 돈이 한 푼도 없었다. 모든 돈을 다 그 은행에 저축했기 때문이다. 다른 은행보다 이자가 높아서 수중에 모아둔 돈뿐만 아니라 매달 버는 적은 액수도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몽땅 그 은행에 저축했다.
곧 대학에 들어갈 아들 등록금도 못 낼 판이라 장싱싱은 그대로 있을 수 없어 직접 허난에 있는 은행에 찾아가보기로 했다. 직업이 회계사라 누구보다 은행과 금융 문제에 전문가라고 자신했고, 은행은 국가에서 신용보증을 해주는 기구라 만에 하나 은행이 파산해도 50만위안 이내는 전액 보상해주리라고 굳게 믿었다.
이 사연들은 <봉황 타임스>가 보도했다. 2022년 4월18일 이후 허난과 안후이 지방의 6개 소규모 농촌 은행에서 40만여 명이 저축한 돈이 하루아침에 어딘가로 증발해버린 대형 사건이 일어났다. 이자가 높다는 소문을 들은 전국 각지의 고객이 대부분 온라인을 통해 저축액을 예치했지만, 현재 밝혀진 바로는 은행이 온라인 전산 시스템을 조작해 고객 돈을 꿀꺽했고 중앙은행에 예치금을 보고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다급해진 고객은 하나둘 기차와 비행기를 타고 허난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문제의 은행으로 향할 수 없었다. 그들은 허난성 성도인 정저우의 기차역이나 공항에 도착 즉시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정저우와 허난 지역의 건강코드와 행적코드 앱을 설치한 뒤 스마트폰으로 스캔했다. 출발할 때는 ‘초록색’이던 건강코드가 정저우에 도착하는 순간 ‘빨간 코드’로 변했던 것이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방역 당국에 의해 집중격리시설로 이송되거나 출발지로 되돌아가야 하는 ‘위험인물’로 돌변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출발 전에 반드시 48시간 이내 유전자증폭검사 음성 결과를 받아야 하고 건강코드와 행적코드 등에 아무 이상이 없어야 기차나 비행기 등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문제가 있었다면 애초에 출발조차 할 수 없었다.
지하철·공원도 코드 있어야 이용 가능정저우만 아니라 허난의 다른 지방에 도착한 사람들의 건강코드도 일제히 ‘빨간 코드’로 변했다. 보도에 따르면, 정저우시 정부는 건강코드가 빨간색으로 변한 사람들에게 ‘그 문제의 은행을 가려고 온 것이 아니다’라는 확인서약서를 받으면 건강코드·행적코드를 다시 정상으로 복구해줬다고 한다. 허난과 안후이의 농촌 은행 문제가 터지자 고객이 몰려와 시위하고 사회문제화할 것을 우려해, 관련 당국이 건강코드 등을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이다.
이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져나가면서 중국의 주요 언론매체와 유명 논객들도 ‘걱정과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중국 정부의 의중을 대변한다는 평을 받는 보수우익 논객이자 전 <환구시보> 편집장 후시진도 한마디 보탰다. “순수하게 방역 목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건강코드를 다른 사회통제 목표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나 이미 중국은 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전방위에 걸쳐 국민을 실시간 감시할 수 있는 전자 사회통제 시스템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건강코드와 행적코드 등 각종 ‘코드류’가 지방마다 남용되고, 얼마 전부터 베이징시는 아파트마다 각종 신상정보와 건강코드가 연동되는 전자출입증 제도를 공표했다. 이 제도에 따르면 기존의 지하철과 버스 카드에도 건강코드를 연동해야만 탑승할 수 있고, 3살 이상부터는 72시간 이내 유전자증폭검사 음성 결과와 건강코드가 있어야 공원 출입이 가능하다.
건강코드와 행적코드 등은 이제 중국인의 인신을 구속하는 전자수갑이 돼가고 있다. 언론에선 ‘건강신분증’이라는 그럴듯한 신조어로도 부르지만, 만일 이 건강신분증에 표시되는 숫자가 2를 넘어가면(유전자증폭검사 48시간을 의미. 1은 24시간) 불안해지기 시작해 사람들은 곧바로 ‘생명연장’(유전자증폭검사)을 하러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 농부는 아직도 이틀마다 자기 보리를 수확하기 위해 유전자증폭검사를 받을까. 장싱싱은 평생 모은 피 같은 돈을 찾기 위해 무사히 허난의 은행으로 진입할 수 있을까. 요즘엔 나도 딸아이가 ‘코시국’ 이후 입에 달고 사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자주 한다. “킹 받는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북경만보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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