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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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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등, 위만 보던 ‘소도시 문제풀이 능력자’의 끝

어머니 살해 후 도주, 밑바닥 생활하다 사형…촉망받는 지역 최고 우등생 ‘베이징대학 우셰위’ 사건
등록 2025-05-29 22:29 수정 2025-06-05 07:11
살해 혐의로 법정에 선 우셰위의 모습. 시나뉴스 영상 갈무리

살해 혐의로 법정에 선 우셰위의 모습. 시나뉴스 영상 갈무리


2016년 2월14일, 그날은 음력 정월 이렛날이었다. 중국 푸젠성 푸저우시의 한 오래된 아파트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모두 가까운 친인척이었다. 춘절(음력 설)을 하루 앞둔 2월6일, 그 아파트 1층에 살던 집주인 셰톈친과 그의 아들이 미국에서 온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내내 소식이 없자 ‘무슨 일이 났나 싶어’ 찾아온 것이다.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자 사람들은 열쇠공을 불러 문을 열었다. 동네 치안 담당 경찰도 함께 불렀다. 닫혔던 문이 열리자 눈앞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숨진 엄마, 사라진 최우등생 아들

집 안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길가를 향한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졌고, 사방에 못이 굳게 박혀 있었다. 방문의 모든 틈은 종이와 테이프로 막혀 있었지만 집 안에서는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바닥과 식탁 등에는 악취를 없애기 위해 뿌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활성탄이 곳곳에 있었다. 방문을 열자 침대 위에는 수십 겹의 비닐로 꽁꽁 싼 ‘물건’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부패가 진행된 주검 한 구였다. 숨진 이는 그 집의 주인이자 인근 고등학교의 역사 교사였던 셰톈친. 경찰은 이 상황을 살인사건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사라진 아들 우셰위를 주요 용의자로 전국에 지명수배했다.

우셰위는 1994년생으로 당시 21살이었다. 우셰위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았던 푸저우시 최우등생이었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때 학교장 추천으로 전국에서 인재들을 미리 무시험으로 선발하는 전형을 통해 베이징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2010년 아버지가 간암으로 죽은 뒤, 어머니 셰톈친은 그를 홀로 키웠다. 어머니는 2015년 7월10일, 자신의 집에서 아들에게 살해당했다. 사망 당시 나이는 47살. 우셰위는 셰톈친이 현관문을 열고 실내화로 갈아 신고 있을 때 미리 준비한 아령으로 머리를 가격했다.

2014년 9월, 당시 대학교 2학년이던 우셰위는 미국 대학원 수학 자격시험인 지아르이(GRE)에서 전세계 상위 5%에 해당하는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2015년 7월, 그는 고향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미국 유학을 떠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2016년 2월 셰톈친의 주검이 발견되기 전까지 약 7개월 동안 직장 동료들과 친인척들은 셰톈친이 아들을 따라 미국에 간 줄로만 알고 있었다.

우셰위는 어머니를 살해하기 한두 달 전부터 인터넷에서 가짜 이름으로 살인에 필요한 각종 도구를 사 모았다. 2015년 7월10일, 어머니를 살해한 뒤 주검 처리와 집 안 정리를 마친 우셰위는 집 근처 호텔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생전 아버지의 친구들과 친인척에게 차례로 전화해 거액을 빌렸다. 그는 자신이 곧 어머니와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데 경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대며 “한 번만 도와달라”고 읍소했다. 친척들과 지인들은 그들 모자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십시일반 돈을 모아 우셰위 통장으로 입금해줬다. 우셰위는 장래가 거의 보장되다시피 한 베이징대학 경제학과 출신이어서 모두 ‘미래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큰돈을 빌려줬다. 2015년 말까지 그가 빌린 돈은 총 144만위안(현재 환율로 약 2억7천만원)이었다. 그는 어머니 명의로 자신이 대필한 사직서까지 학교에 냈고, 지인과 친척들에게는 인사를 나눌 시간도 없이 황급히 떠나게 됐다고 둘러댔다. 셰톈친이 평소에도 다른 사람과 거의 교류하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사람들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공부의 신’이었던 아들 우셰위를 따라 미국에 가서 새 인생을 사는 줄로만 알았다.

 

아들과 함께 미국 간 줄만 알았는데…

거액을 빌리는 데 성공한 우셰위는 상하이에 가서 그곳에서 알게 된 성매매 여성과 동거를 시작했다. 방탕한 유흥 생활을 하며 흥청망청 돈을 탕진했다. 한꺼번에 58만위안(약 1억원)어치 복권을 샀고, 인터넷에서 가짜 신분증 수십 장을 사서 장기간 도피 생활을 준비했다. 2019년 4월20일, 약 3년간의 도피 생활을 하던 우셰위는 충칭의 장베이 국제공항에서 가짜 신분증과 여권으로 출국을 시도하다가 잡혔다. 순식간에 돈을 다 써버린 우셰위는 붙잡히기 전까지 충칭의 한 호스트바에서 일하며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었다.

1심과 2심 모두 사형을 선고받은 우셰위는 상고심에서도 사형이 확정돼, 2024년 1월31일 사형이 집행됐다. 어릴 때부터 줄곧 공부 신동 소리를 들었던 그는 중국의 모든 학생과 학부모가 꿈에서라도 되고 싶은 우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친 살해범이라는 가장 극적인 반전 서사를 쓰며 ‘역사에 길이 남을’ 오명을 안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중국식’ 우상의 몰락이었다.

2016년 2월 ‘우셰위 모친 살해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을 때, 중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도무지 그 동기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선망하는 최고 엘리트였고 겉으로 드러난 가정환경과 평소 성격, 대인관계 등에서도 문제가 될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가 비록 병으로 일찍 사망했지만 그의 가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중국의 여느 가정처럼 지극히 평범했다. 부모의 학대를 받고 자란 것도 아니었고 경제적 어려움을 크게 겪지도 않았다. 생전의 아버지도 직장에서 인정받는 능력자였고 대인관계도 좋았다. 어머니가 과도한 결벽증과 대인기피증을 가지고 있고 남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는, 조금 냉정한 성격을 지녔지만 사회생활을 못할 정도로 괴이한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우셰위도 겉으로만 봐서는 크게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하거나 성격을 지닌 학생은 아니었다.

우셰위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변함없이 ‘공부만’ 했다. 같은 학과 동기들과 선후배, 기숙사 동료들의 증언에서도 그는 강의실과 도서관, 식당만을 오가는 성실한 학구파 학생이었고, 공부 외에 다른 취미나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잠자기 직전까지 공부만 하는 대학교 2학년이던 2014년, GRE 시험에서도 전세계 상위 5% 안에 드는 우수한 성적을 거둔 우셰위는 왜 1년 뒤 갑자기 어머니를 죽이기로 결심했을까? 사람들은 그 극적인 반전 서사 뒤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알고 싶었다.

 

모두가 선망하는 중국식 우상의 몰락

2023년 잡지 ‘삼련생활주간’에서 ‘우셰위: 인성의 심연’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건을 다룬 특집판이 발행됐다. 기자 몇 명이 우셰위 사건 이후 몇 년 동안 관련 인물들과 재판 기록 등을 다각적으로 취재해서 쓴 심층 탐사보도였다. 이 보도는 2025년 5월 당시의 기사를 보강 취재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제목은 ‘인성의 심연: 우셰위 사건’이다. 책에서 저자들은 그동안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우셰위와 부모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처해 있던 다층적인 사회관계, 그 속에서 각자가 겪고 있던 고통과 모순을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하고 해부했다. 또 그가 엄마를 살해하기까지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친 요인들과 주변 사람들을 취재해서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우셰위가 대학 입학 이후 겪은 내면의 분열 과정이다.

우셰위는 조사 과정에서 자술을 통해 자기 인생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 인생은 한 학년에서 더 높은 학년으로, 한 학교에서 더 높은 학교로, 한 교과서에서 다음 교과서로, 한 시험에서 다음 시험으로 옮겨가는 연속이었다. 공부하고, 문제를 풀고, 시험을 보는 것 외에는 인생에 다른 길이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고등학생 때 하던 것처럼 공부만 열심히 하면 항상 1등을 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최고의 인정을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 사회는 자신이 생각하던 세계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가 충격받은 사실은, 베이징대학 학생 중 20% 이상이 자신과 달리 공부 외에 다른 특기생 자격으로 가산점을 받아 들어왔고, 그들 대부분은 대도시의 부유한 가정 출신이었다는 점이다. 또, 많은 학생이 여러 사교 활동과 동아리 활동을 하고 외국 여행도 하는 등 대학 생활을 ‘즐긴다’는 걸 목격했다. 자신은 그저 농촌이나 작은 소도시에서 태어나 문제풀이에만 탁월한 능력을 가진 전형적인 ‘소도시 문제풀이 출신’(小鎭做題家)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자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부를 잘하면 엄마가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엄마의 체면을 세워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온 뒤 우셰위는 자신이 알던 세계가 작은 소도시에 머물러 있다는 걸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우수한 성적을 얻는다고 해도 대학 사회에서는 고향에서처럼 자신을 우러러보는 사람도 없었다.

우셰위가 겪었던 과정은 ‘농촌이나 소도시에서 올라온 문제풀이 능력자 출신들’이 베이징 등 대도시 명문대에 진학한 뒤 겪게 되는 전형적인 문화적 충격 과정이기도 하다. 이들은 대학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자신들의 ‘문화자본’이 가진 비참한 현실을 깨달은 뒤 상처받고 좌절한다. ‘소도시 문제풀이 출신’은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사회에서 가장 유행하는 용어다. 이 말 속에는 자신들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결코 사회 상류층까지는 진입하지 못할 거라는 자기비하적 은유가 담겨 있다.

 

‘소도시 문제풀이 출신’이 겪은 문화 충격

우셰위가 목격한 현실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공부기계’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부질없는 일임을 느끼자 극단적인 인격 분열과 변신을 하게 된다. 2014년 하반기부터 그는 공부 대신 밤새워 웹소설과 영화를 봤고 아침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급기야 휴학하고 기숙사를 나가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는 착한 아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시험 치는 기계로 살며 항상 ‘절대적인 1등’을 해서 기쁨을 주고 싶은 유일한 대상이었던 어머니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어머니를 죽인 뒤 우셰위는 그 전까지와는 정반대의 인생을 살았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다. 도피 기간에 태어나 처음으로 ‘점수 이외’의 인생을 살아봤다고.

‘인성의 심연: 우셰위 사건’ 저자들은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이 사건 속에서 보게 된 것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다.” 우셰위는 중국 사회에만 존재하는 ‘그들’이 아니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2023년 6월7일 중국 베이징사범대학 부속 실험고등학교 앞에서 학부모들이 대입수학능력시험(가오카오)을 치르는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다. 신화사 연합뉴스

2023년 6월7일 중국 베이징사범대학 부속 실험고등학교 앞에서 학부모들이 대입수학능력시험(가오카오)을 치르는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다. 신화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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