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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옌, 린이한, 김현진… 누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았나

중국·대만·한국의 세 사건이 드러낸 ‘성폭력 피해 이후의 세상’
등록 2026-04-23 21:07 수정 2026-04-26 10:52
중국 베이징대학 재학 중 성폭력 피해를 당한 뒤 숨진 가오옌의 묘. 가오옌의 어머니가 묘비를 닦고 있다. 롱 형제 유튜브 갈무리

중국 베이징대학 재학 중 성폭력 피해를 당한 뒤 숨진 가오옌의 묘. 가오옌의 어머니가 묘비를 닦고 있다. 롱 형제 유튜브 갈무리


2018년 3월10일, 중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소셜 커뮤니티 더우반(豆瓣)에 충격적인 글이 한 편 올라왔다. 작성자는 미국 웨슬리언대학 동아시아연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던 왕아오다. 그는 당시 미국 일리노이대학 어배너-섐페인 캠퍼스(UIUC)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학과장이던 쉬강이 막강한 학술권력을 이용해 지난 20여 년 동안 여학생들을 성폭행하고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거나 강제 낙태도 시켰다고 폭로했다. 폭로 내용은 구체적이었다. 피해자 중에는 왕아오의 지인도 있었다. 그 게시글은 삽시간에 중국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르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폭로로 시작된 가오옌 사건과 중국 미투

 

그해 4월5일 청명절, 더우반에 또 다른 폭로글이 올라왔다. “창장학자( 長江學者·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이룬 학자에게 주는 칭호) 선양 교수님, 여학생 가오옌의 죽음은 정말 당신과 무관합니까?”

글 작성자는 베이징대학 사회학과 95학번 졸업생인 리유유다. 그는 1998년 3월11일, 21살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베이징대학 중문과 95학번 가오옌의 절친이었다. 리유유에 따르면, 가오옌이 20년 전 자살한 이유는 당시 베이징대학 중문과 교수이던 선양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결과다.

리유유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가오옌과 같은 과 동급생이던 왕아오가 쉬강 교수의 성폭력 범죄를 폭로하는 글을 올린 것에 감화받아 자신도 선양 교수에 대한 고발글을 올리게 되었다고 했다. 왕아오 역시 훗날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쉬강 교수의 성범죄를 폭로하는 글을 올리게 된 계기는 20년 전 같은 과 친구 가오옌이 당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당시엔 친구를 구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구할 수도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리유유와 왕아오 등은 가오옌 사망 20주기를 추모하는 글도 함께 올렸다. 그들은 추모사에서 가오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선양 교수의 당시 범죄 사실에 대한 재조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중국 온·오프라인 여론은 벌집을 쑤신 듯했다. 게다가 당시는 2017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 열기가 전세계로 거세게 확산하던 때다. 중국에서도 2018년 1월 초부터 미투가 뜨겁게 떠오르고 있었다. 당시 베이징 항공항천대학 박사 졸업생인 뤄첸첸이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13년 전 자신의 지도교수인 천샤오우 교수에게 당한 성폭력 사실을 고발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그 뒤 터져나온 선양 교수의 성범죄 폭로글은 천샤오우 교수 사건에 이어 중국 대학가와 사회 곳곳의 미투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통제와 착취

 

2026년 3월31일부터 방영된 ‘위험한 관계’(危險的關係)는 최근 가장 많은 화제를 몰고 온 중국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요 몇 년 사이 중국 사회에서 많이 언급되는 문제 중 하나인 PUA(Pick-Up Artist·감정 조종을 통한 정신적 통제 및 지배를 뜻하는 개념으로, 가스라이팅과 비슷하다)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옌링은 이혼 뒤 어린 아들과 함께 사는 36살의 대학 계약직 교수이자 싱글맘이다. 옌링은 14살 생일날, 해양선 선장이던 아버지가 자신이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면서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생전 직장 부하 직원이던 유부남 아저씨 한 명이 등장한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를 도와주고, 옌링이 좀더 좋은 고등학교에 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다. 그는 옌링과 옌링 엄마에게 아버지 자리를 대신해주는 구세주이자 은인이 된다. 옌링은 차츰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고 의지하게 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간다.

옌링의 18살 생일날, 아저씨는 묘한 눈빛을 지으며 옌링의 몸을 만진다. 아저씨는 옌링에게 “우리는 세속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는 관계”라고 말한다. 이성에 대한 감정과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옌링은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던 아저씨가 ‘사랑’이라고 말하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10여 년간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한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그사이 아저씨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옌링은 ‘사랑하는’ 아저씨가 다른 어린 10대 소녀들과 데이트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그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는 그저 젊고 어린 여자들의 육체를 탐하는 사냥꾼이었다는 것을.

훗날 아저씨를 정식으로 고소하고 법정 싸움을 앞두고 있던 때, 변호사는 옌링에게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각오 단단히 해야 할 거다.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다. 당신은 앞으로 성폭력 가해자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백래시’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당신의 사회적 인격을 말살하기 위해….” 변호사의 예언은 한 치 틀림이 없었다. 가해자는 오히려 자신이 옌링에게 아버지 대용으로 이용당했다며 과거에 옌링이 자신에게 세뇌당했던 시절 쓴 편지를 모두 공개하며 옌링을 ‘미친년’으로 몰아간다. 편지 내용이 인터넷과 언론에 유포되자 사람들은 옌링을 ‘가짜 미투녀’라고 비난한다. 옌링은 차츰 숨 쉬기도 힘들 만큼 사는 게 공포스러워진다.

 

고발 이후 ‘백래시’… 달라진 건 없다

 

2018년 리유유는 친구 가오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선양 교수를 고발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가오옌은 나에게 조금씩 이야기해줬어요. 선양 교수가 자신의 옷을 벗겼고,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당했다고. 매우 두렵고 너무 괴로웠다고. (…) 선양에게 싫다며 하지 말라고 했더니, 선양은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다고 말했대요. (…) 가오옌을 더욱 충격에 빠뜨린 것은 선양이 동시에 같은 반 다른 여학생과 자주 만나고 성관계까지 맺고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선양은 그 여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대요. ‘나는 가오옌이 조금도 좋지 않아. 걔가 먼저 나한테 들러붙은 거야, 걔가 나를 유혹한 거라고. 네가 가오옌보다 훨씬 더 예쁜데 내가 어떻게 걔를 좋아하겠어? 가오옌은 정신병자야.' 그리고 그 여학생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양의 그 말을 가오옌의 룸메이트들과 같은 반 다른 여학생들에게 그대로 전했어요.”

리유유의 폭로글이 올라온 다음 날인 4월6일, 여론이 들끓자 선양 교수가 재직했던 베이징대학이 입장을 발표했다. 대학 쪽은 관련 사건에 대해 “1998년 사건은 내부 회의 결과 당사자인 선양이 가오옌과 ‘남녀 관계가 있었다’고 인정해서 당시 선양 교수에게 행정처분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4월8일, 베이징대학 기율위원회가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대학 쪽은 이번 사안에 대해 반성과 교훈의 기회로 삼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20년 전 당시 선양 교수에 대한 징계 결정 전문을 공표했다. 하지만 공개된 당시 징계 결정문은 그 자체로 심각한 ‘백래시’이자 가해자인 선양 교수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쓴 것에 불과했다.

“당시 선양은 이혼한 상태였고 홍콩에서 1년간 방문 연구 중이었다. 그 기간 중 겨울방학을 맞아 베이징에 돌아왔을 때, 가오옌이 선양의 거처를 찾아왔다. 가오옌은 선양에게 ‘자신과 연인 관계를 맺겠다는 의사 표시’를 요구했고, 선양은 그럴 마음이 없었음에도 경솔하게 ‘네가 내 여자친구인 셈 치자’라고 말하며 가오옌과 포옹하고 입을 맞췄다. 1997년 6월 말, 선양은 가오옌에게 관계를 끊자고 통보했다. 1998년 3월, 가오옌은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후 베이징대학 중문과는 선양이 여학생과의 교제에서 태도가 충분히 진지하지 않았고 처신이 매우 경솔했다고 판단했다.”

이 결정문 어디에도 가오옌의 ‘입장’은 없었다. 가오옌 친구들의 폭로와 그해 중국과 전세계를 달군 미투 열기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오옌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았고 가해자 선양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중국 미투 운동도 당과 정부의 통제와 억압을 받으며 서서히 죽어갔다.

성폭력 피해 경험을 담은 대만 린이한 작가의 자전적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비채 펴냄, 2018).

성폭력 피해 경험을 담은 대만 린이한 작가의 자전적 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비채 펴냄, 2018).


 

반복되는 죽음, 사회가 가해자다

 

대만 작가 린이한은 13살 때부터 과외교사로부터 지속적인 성적 학대를 당했다. 미성년자인 린이한에게 50대 과외교사는 “이건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세뇌하며 성적 착취를 일삼았다. 2017년 2월, 린이한은 자신이 당했던 경험을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라는 제목의 소설로 썼다.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대만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4월27일 린이한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향년 26.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중증 우울증을 앓았고 여러 차례 자해와 자살을 시도하며 중환자실과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린이한은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학살은 팡쓰치(자신이 모델인 책 주인공)식 강간이다.” 린이한의 이 말은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된다. ‘팡쓰치식 강간’이란 “이것이 너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며 세뇌하다가 점차 어린 소녀들의 영혼까지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학살’의 배후에는 가족과 학교, 이웃 등 모든 유무형의 ‘사회’라는 공범의 조력이 있다. 책 말미에 이 책의 서평을 쓴 사회학자 차이이원은 이렇게 썼다. “성에 관한 모든 폭력에는 사회라는 공범이 있다. 성에 관한 모든 폭력은 가해자 혼자 저지른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가해자에게 협조함으로써 발생하고 지속된다.”

2026년 4월17일, ‘98년생 김현진’이 죽었다. 향년 28. 그는 2016년 시인 박진성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김현진은 17살 때 온라인을 통해 박진성에게 강습을 받았고 당시 여러 차례 문자 등을 통한 성희롱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박진성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그를 ‘저를 (무고하게) 고소했던 년’이라 했고 민·형사 소송 등을 걸며 다방면으로 압박했다. 그리고 이렇게 조롱했다. “이것이 너의 20대란다.” 수많은 언론과 뭇사람들은 그에게 ‘가짜 미투녀’라는 오명을 씌웠다.

76년생 가오옌과 91년생 린이한, 그리고 98년생 김현진은 모두 20대를 채 온전하게 살아보지 못했다. ‘짧았지만 빛나고 뜨거웠던’ 삶을 살았던 그들의 명복을 빈다.

작은 눈과 좁은 시야, 게으른 발걸음으로 광활한 중국을 설렁설렁 주마간산식으로 산책했다. 그동안 부족한 글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린다. 베이징에 오면 ‘짜장멘’ 한 그릇 대접하겠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2022년 12월부터 ‘북경만보’를 연재해온 박현숙 작가의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수고하신 박 작가와 글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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