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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다발 디폴트, 그 뒤에는 [뉴스큐레이터]

등록 2022-05-02 22:33 수정 2022-05-03 11:13
스리랑카의 반정부 시위 풍경. REUTERS

스리랑카의 반정부 시위 풍경. REUTERS

인플레이션이 결국, 취약한 곳부터 파국을 이룬다. 물가 상승은 생필품조차 구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난한 시민을 내몬다. 정부는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다. 반정부 시위로 번진다. 2022년 4월 개발도상국 도처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경제 상황만 놓고 볼 때 2011년 ‘아랍의 봄’보다 더 심각한 국제 정세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국제기구는 염려한다.

4월12일 스리랑카는 510억달러에 이르는 대외 부채 상환을 중지하겠다고 일시적인 디폴트를 선언했다. 경제위기는 시민한테 극단적인 물자 부족(가격 상승)의 모습으로 임한다. 파키스탄의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7% 올랐다.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응급수술을 하고, 식료품은 물론 종이까지 부족한 풍경이 전해진다. 시민은 시위를 벌였고 총리 공관에도 진입했다. 정부는 일부 각료를 교체했다. 시민의 요구는 대통령 퇴진이다.

스리랑카만의 일은 아니다. 파키스탄은 경제난으로 현직 총리를 축출했다. 페루의 농민과 운전자는 비료와 연료 가격 인상에 항의하며 도로를 점거했다. 이집트 시민은 빵값 상승에 항의해 시위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저소득 국가 73개국 중 41개국의 부채가 부실화됐거나 부실 위험이 큰 상태라고 분석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가. 금리인상과 공급망 차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사태는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저소득 국가에 절대적인 물건 공급을 줄였다. 하필 분쟁이 세계적인 곡창지대이자, 비료 생산 국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졌다. 가장 기초적인 물품, 먹거리 공급마저 줄고 가격이 오른다. 여기 더해 선진국의 금리인상은 유동성 쏠림 현상을 낳고, 취약한 국가들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린다. 이는 수입 물품 가격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아랍의 봄’ 사태 역시 식료품 가격 상승 같은 경제적 배경을 품었지만, 팬데믹을 겪은 세계의 위험은 훨씬 더 심각하고 복잡하다. 감염병에 대응하며 국가부채 규모가 크게 늘었다. 스리랑카를 비롯해 많은 개발도상국이 전적으로 의존했던 관광산업은 코로나19로 침체했다. 취약한 국가일수록 위험은 커지고 소득은 줄었다. 길고 불평등하며 참혹했던 팬데믹, 이후 또한 길고 불평등하며 참혹하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뉴스 큐레이터는 <한겨레21>의 젊은 기자들이 이주의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뉴스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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