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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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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연대_ 멸치떼처럼 뭉쳐 싸웁시다!

코코가 마련한 ‘미얀마 민족공동체 청년과의 대화’ ‘민주주의 혁명’ 대의 아래 서로를 좀더 이해하는 자리
등록 2021-12-05 14:19 수정 2021-12-06 11:51
2021년 11월28일 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얀마 민족공동체 청년들이 서울 신촌 인디톡 공연장에서 정혜신씨의 가야금 반주에 맞춰 노래를 배우고 있다. 맨 왼쪽은 이 간담회를 마련한 해외주민운동연대 코코(KOCO)의 강인남 대표. 이정우 선임기자

2021년 11월28일 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얀마 민족공동체 청년들이 서울 신촌 인디톡 공연장에서 정혜신씨의 가야금 반주에 맞춰 노래를 배우고 있다. 맨 왼쪽은 이 간담회를 마련한 해외주민운동연대 코코(KOCO)의 강인남 대표. 이정우 선임기자

“멸치는 작지만(멸치는 작지만), 큰 고기여요(큰 고기여요)~ 또래끼리 한데 모여 덩어리를 만들어요~ 큰 고기들이 잡아먹으려다가~ 큰 덩어리에 놀라 그냥 떠나간대요~ 멸치 멸치 멸치 멸치!!”

2021년 11월28일 오후, 서울 신촌의 소공연장 인디톡에서 흥겨운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객석을 채운 30여 명은 가야금 연주자 정혜심씨가 가르쳐준 <멸치>라는 곡을 돌림노래로 합창했다. 절반 이상이 미얀마 젊은이였다. 한국의 국제연대 시민단체인 해외주민운동연대 코코(KOCO)가 마련한 ‘미얀마 (소수)민족공동체 청년과의 대화’ 자리였다. 한국에 체류하는 미얀마 청년들이 고국에서 군부 쿠데타에 맞서 투쟁하는 동료 시민과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과 민주주의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함께 나눴다.

여러 민족 공존하지만 평등한 기회 주어지지 않아

11월30일은 미얀마 군부가 2020년 11월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한 총선 결과에 불복해 쿠데타로 문민정부 2기 출범을 좌절시키고 전권을 장악한 지 꼭 3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까지 군부의 총칼에 숨진 희생자만 1295명, 누적 구금자는 1만517명에 이른다.

미얀마는 공인된 민족만 135개나 되는 다민족 연방국가다. 전체 인구 5440만 명 중 버마족이 68%로 가장 많고 샨족(9%)과 카렌족(7%)이 뒤를 잇는다. 여기에 몬, 카친, 카야, 친, 라카인이 각각 전체 인구의 1~2%를 차지하며 8개 주요 민족을 이룬다. 1962년 첫 쿠데타 이후 반세기 넘도록 미얀마의 지배 세력으로 군림해온 군부는 소수민족의 독자적 언어와 문화를 인정하지 않고 자치 요구를 짓밟으며 내부 갈등을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이용했다.

이날 대화 자리는 이전까지 어울릴 기회가 드물던 미얀마의 여러 민족 출신 청년들이 가슴에 묻어둔 말을 꺼내고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대의 아래 서로를 좀더 이해하는 기회였다. 그만큼 조심스럽기도 했다.

강인남 코코 대표는 이 자리를 위해 재한 미얀마인 단체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 연대’(Youth Action for Myanmar)와 미리 세 차례나 워크숍을 했다. 이날 대화에는 카친, 카렌, 카야, 친, 샨, 버마 등 6개 민족 청년이 대표 발언자로 참여했다.(일부 발언자의 이름은 실명 대신 애칭으로 썼다.)

광주 5·18기념재단 초청 장학생으로 한국에 온 지 3년째인 카렌족 대학생 샤샤는 가족에게 영상 메시지를 전해보라는 권유에 “엄마, 너무 보고 싶어요. 어려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데, 무사히 잘 지내주세요”라고 말했다. 롱롱(카야족)은 최근 몇 달 새 미얀마 군부의 공습이 집중된 지역 중 한 곳인 카야주 출신이다. 민가는 물론 교회와 성당까지 군부의 포격 대상이 됐다. 상냥탕(친족)은 미얀마 서부의 인도와 접경한 지역 친주 출신이다. 그는 “내 고장은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 하트 모양으로 흐르는 강과 폭포가 많아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군부 쿠데타 이후 무자비한 공격이 집중됐다. 많은 가족이 산속으로 피난했다”고 했다. 윤카잉(샨족)은 미얀마 중동부에서 중국과 접경한 샨주 출신이다. 그는 “샨주는 차가 유명해 중국이 탐내는 지역이다. 튀김과 막걸리가 유명한 아름다운 고장이지만 민족 갈등으로 오랜 내전이 지속된 슬픈 땅”이라고 했다.

띤테이 아웅은 “저는 버마족 사람입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미안합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2021년 쿠데타 이전까지는 왜 다른 민족들이 미얀마 군부정권에 맞서 싸우는지 몰랐다. 1988년 8888항쟁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군부정권이 국민에게 진실을 감추고 잘못된 정보만 알리고 교육했는데, 대다수 버마족 사람은 그걸 믿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쿠데타 이후 군부의 참혹한 살상과 국민의 저항을 직접 보면서 정의가 뭔지 알게 됐다”며 “아까 배운 <멸치> 노랫말처럼 이제 모두 한마음으로 뭉쳐 싸웁시다!”라고 외쳤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300일째인 2021년 11월30일 저녁,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시민사회단체모임 등이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앞에서 포스코가 미얀마 군부와 가스전 협력 사업을 해 돈줄이 돼주고 있다며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발전대안 피다 강하니 사무국장 제공

미얀마 군부 쿠데타 300일째인 2021년 11월30일 저녁,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시민사회단체모임 등이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앞에서 포스코가 미얀마 군부와 가스전 협력 사업을 해 돈줄이 돼주고 있다며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발전대안 피다 강하니 사무국장 제공

연방 민주주의 실현돼야

상냥탕이 “진심으로 함께 하면 좋겠다”고 하자 띤테이 아웅은 “진심입니다”라고 화답했다. 모람이 “우리 카친 사람은 60년 전부터 버마족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고 있다. 군부정권은 버마족에게 ‘카친족은 너희를 죽이려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가르쳤는데 지금은 군부 쿠데타의 참혹한 현실을 모두가 함께 알고 있다”며 “버마족이 다른 민족을 많이 도와달라”고 주문했다.

청중석 반응도 뜨거웠다. 자신을 친족이라고 밝힌 한 청년이 “버마 군부는 변방 산악지대의 소수민족을 집중 공격하고 더 탄압한다”며 “미얀마 국민이 바라는 것은 혁명의 승리와 모든 민족의 자치와 평등이 보장되는 연방 민주주의 실현”이라고 강조했다. 카인족 청년도 “미얀마에는 여러 민족이 공존하지만 (버마족이 아닌) 다른 민족들에게는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에겐 애초 ‘자유’라는 게 없었고 항상 싸워야 했다”고 거들었다.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서 미묘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대화 진행자 강인남 대표는 “여러 발언들에 대해 ‘이런 생각도 있구나’ 이해하고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이것도 소중한 민주주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날 대화의 참뜻을 상기시켰다. 윤카잉(샨족)은 “투쟁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서운한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비난하진 않는다. 그건 민주주의를 깨뜨리는 것이다. 모두 열린 마음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고 말하자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중간 휴식시간에 피리 연주자 윤영덕씨가 <상록수>에 이어 자작곡 <미얀마의 봄>을 연주했다. 무대 스크린에 “모든 게 잘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 세 손가락 꽃이 되어 피어나라 미얀마~”라는 노랫말이 흘렀다. 청중은 잠시 숙연한 분위기에 빠졌다.

이어진 자유 대화는 그동안의 분열과 불신이 연대와 다짐으로 조금씩 바뀌어가는 시간이었다. 모람(카친족)은 “지금까지 역대 군부정권이 해온 ‘평등’ 약속이 지켜진 적이 없었다. 지금은 모두가 군부 퇴진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싸우지만 투쟁이 성공한 뒤에는 어떨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진정한 연방 민주주의가 실현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샤샤(카렌족)도 “우리는 진정한 연방 민주주의가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민족통합정부(NUG)와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상냥탕(친족)은 “그럼에도 지금은 민족통합정부가 큰 힘이고 희망이다”라며 단결투쟁을 강조했고, 윤카잉(샨족)도 “과거 경험을 보면 버마족이 주류인 민족통합정부를 100% 믿을 수 없는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함께 가는 게 맞다”고 거들었다. 샤샤는 “미얀마 민주주의가 이뤄지면 한국과 미얀마를 잇는 역할을 하고 싶다”며 “혁명이 성공한 뒤 미얀마에 꼭 오시라. 공짜로 투어가이드 다 해드리겠다”고 말해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3 Cut’ 전략과 민족통합정부 승인이 관건

앞서 11월17일에는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민사회단체모임이 ‘미얀마 민주주의 운동 10개월: 시민사회의 역할과 연대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로 인터넷 화상 강연 웨비나(웹+세미나)를 열었다.

8888항쟁에 앞장섰다가 군부 탄압에 쫓겨 미국으로 망명한 활동가 킨 오마(프로그레시브 보이스 대표)는 미얀마 군부를 압박하고 민주주의를 앞당기기 위한 스리컷(3 Cut) 전략을 강조했다. ①군부의 돈줄 차단 ②군부 범죄자들에 대한 불처벌(면책) 중단과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 ③국제사회의 무기 금수 등이 그것이다. 그는 “미얀마 군부는 합법 조직이 아니라 깡패 집단일 뿐이다. 그들이 제시한 2023년 총선은 법적 정당성이 없으므로 누구도 이 선거를 지지해선 안 된다”며 “국제사회가 미얀마를 돕는 최선은 민족통합정부를 (미얀마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미얀마 현지 활동가 띤자 순례이(미얀마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행동위원회 코디네이터)는 “미얀마의 활동가들은 날마다 신체적 안전에 위협을 느낄 뿐 아니라 언제든 체포될 수 있다는 공포와 정신적 트라우마가 크다”며 “그럴수록 서로의 연대, 그리고 외부와의 연대가 절실하다.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정신적 지지가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연대는 재정 지원에서도 뚜렷이 확인된다. 코코가 2021년 2월부터 11월까지 열 달 동안 벌인 모금 운동에는 모두 1976명(4295회)이 참여해 5억2089만원을 기부했다. 강인남 코코 대표는 성금 대부분을 시위 물품 구입, 의료품 지원과 부상자 치료, 구속자 가족 생활 지원, 커뮤니티 주민 생계, 시민불복종운동 참여 시민의 생활 안정, 피난민 구호 등 인도주의 구호 비용으로 송금했다고 밝혔다. 모금 결과와 사용처는 현지 전달 영수증과 구매품 사진, 음성 웹자보 등으로 투명하게 공개한다.

한국 시민들의 연대 손길

미얀마민주주의네트워크(대표 정범래)도 재한 미얀마인 1450여 명이 매월 자기 소득의 하루치를 떼어 본국 동료시민의 투쟁을 지원하는 ‘원 데이 챌린지’로 월평균 1억원 이상 모금해 미얀마 민족통합정부로 보내고 있다. 한국 시민의 정기후원도 매월 1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11월초에는 불교 조계종에서도 3100만원을 기부하는 등 사회단체들의 성금도 끊이지 않는다. 미얀마민주주의네트워크는 겨울을 맞아 미얀마에 옷과 담요 보내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미얀마 현지 소식을 생생하게 전하는 소셜미디어 <미얀마 투데이>도 매월 한 차례 모금 운동을 하고 있다. 최진배 대표는 “11월까지 다섯 달 동안 약 1천만원이 들어와 전액을 시민방위군(PDF) 쪽에 보냈다”고 밝혔다. <미얀마 투데이>는 현지 시민단체 스프링 다이어리와 연대해 제작한 민주화 혁명 기념엽서(한 세트에 12장, 1만2천원)를 판매하고 있다. 판매 수익금의 70%는 미얀마 시민방위군과 시민단체에 전달한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해외주민운동연대 코코: 우리은행 1006-201-472222
미얀마민주주의네트워크: 우리은행 1005-604-163863
미얀마 투데이: www.facebook.com/groups/ 1603092429887617, 농협 355-0077-2701-63

*<한겨레21>은 지금까지 8개월 동안 한국과 미얀마 시민이 함께 쓰는 ‘미얀마 연대’를 매주 연재해왔습니다. 앞으로는 부정기적으로 기고를 원하는 이들의 글을 받아 싣습니다.
원고 보낼 곳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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