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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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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혁명에 뛰어들었나

성소수자로서 숨죽여 살아온 나, 쿠데타 반란 세력의 성적 착취와 폭력 결코 용납할 수 없어
등록 2021-11-23 16:17 수정 2021-11-24 02:10
서한뇌우 작가

서한뇌우 작가

[#Stand_with_Myanmar]
2021년 봄, 미얀마 국민은 군부독재 정권의 총칼에 맞서 목숨을 건 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겨레21>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미얀마 국민과 연대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한국 시민의 글을 제1358호부터 미얀마어로 번역해 함께 싣습니다. #Stand_with_Myanmar

담담히 고백합니다. 저는 흔히 이야기하는 성소수자, 그중 트랜스젠더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을 때 저는 성폭행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아이가 몹쓸 일을 당했음에도 교육자·경찰·군인·종교인이 즐비한, 사회적 영향력이 있던 우리 집안은 어르신부터 형제자매까지 그 누구도 제 편에서 저를 보호해주지 않았습니다. 동성에게 성폭행당한 일이 집안의 명예와 위엄을 실추시킨다며 덮고 숨기기에 급급했습니다. 누구도 그런 아들(혹은 딸), 그런 조카, 그런 손자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겠지요. 특히 군에 복무하거나 교육계와 종교계에 몸 담은 친지에게 저는 감춰야만 하는 집안의 치부였습니다. 저는 그저 숨죽여 있는 것 말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유년기를 지나 저는 거센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듯 살았습니다. 그런 저를 친척들은 안개 속 수증기 한 방울만큼의 가치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처연한 마음을 달래려 종교에도 의지해봤습니다. 그러나 종교를 믿는 사람들 또한 사회적 죄악에 물들어 있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상스러운 눈길과 흉측한 손길이 끊임없이 훑고 지나간 저의 몸과 마음은 말 그대로 문드러져버렸습니다. 이 모든 불의와 공포를 방기함으로써 제 삶을 망쳐버린 사회시스템에 저는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낍니다. 하여 오늘날 혁명에 제 모든 걸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미래세대인 아이와 여성 그리고 성소수자를 위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쿠데타 반란 세력은 미얀마 여성에게 수많은 성범죄와 성적 착취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도시 하나, 지역 한 곳을 점령하거나 민족을 탄압할 때마다 전리품을 쟁취하듯 여성의 존엄성을 파괴합니다. 여성에게 수치심과 모멸감을 줌으로써 공동체의 존엄성과 명예를 짓밟으려는 겁니다. 그들은 그런 행위를 통해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쿠데타 반란 세력과 그들을 추종하는 이는 저급하고 열등한 자에 불과합니다. 하여 저는 여성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성폭행으로 몸이 망가지고 심지어 원치 않는 임신까지 했다 해도, 여성의 본질과 민족의 존엄이 당신의 짓밟힌 신체 일부에 있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주십시오.

공감능력은커녕 생각의 깊이가 소쿠리 깊이만큼도 없는 쿠데타 반란 세력과 그들이 풀어놓은 개들이 벌이는 일은 어떤 식으로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함께 힘냅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불가능해 보여도, 살아갈 방법이 좀처럼 보이지 않아도 함께 힘을 쥐어짜 일어섭시다.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절대 군부독재 시대로 회귀할 수 없습니다. 미래세대가 공포 아래서 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저처럼 가능성을 짓밟혀도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이가 더는 나오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진실을 숭상하고 차별을 철폐해야 합니다. 사람이 폭력과 모욕으로 다른 사람을 짓밟는 일은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우리가 구체제와 군부독재로 겪어야 했던 고통과 상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큽니다. 그 모든 걸 가슴으로 겪어야 했던 저는 단호하고 분연하게 말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보상으로 우리는 끝까지 민주주의만을 원합니다.

서한뇌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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