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입천장을 보신 적 있나요? 그곳은 단단한 돌기로 빼곡합니다. 긴 시간, 선인장을 씹은 흔적입니다. 목을 축이려 가시의 자창(刺創)을 받아들였겠지요. 2021년의 미얀마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군부에 민주정권을 강탈당했습니다. 거리는 독재 타도의 외침으로 가득했습니다. 총부리가 이들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의 목마름을 해소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 지구촌의 시선을 끄는 풍경이 있었습니다.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 그리는 시위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의 집단예술은 사기를 올리고 목소리를 내기 위한, 필사의 날갯짓이었습니다. 이를 보니, 100여 년 전 자유와 평화를 되찾고자 그림을 그렸던 미얀마 만화가들이 떠올랐습니다.
1913년 ‘버마아트클럽’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곳에서 영국인들은 예술을 교류하고, 미얀마인들은 서양회화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난생처음 만화 기법을 익혔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서 침략자들의 코믹스(Comics)는 ‘신사들의 제국’에 일침을 가하는 가시의 예술로 재탄생했습니다.
영국군은 미얀마를 식민지화하며 온갖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중 하나는 불교예술의 생태계를 파괴한 일이었습니다. 미얀마인들에게 부처의 말씀은 종교 그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고대 미얀마 땅에는 작은 왕국들이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을 하나로 만든 왕은 정신적 통일이라는 숙제를 두고 고민했지요. 그래서 내린 답이 불교였고 왕은 승려들의 생활부터 사원 건축, 예술까지 든든히 지원했습니다. 이를 눈치챈 영국은 왕조부터 멸망시켰습니다. 자연히 불교예술가들의 창작 환경은 메말라버렸지요. 국가적인 예술 환경을 침탈당하고 침략자의 예술을 배우는 시간, 만화를 배우는 행위는 미얀마의 가시밭길을 상기하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미얀마의 만화가 1세대는 침략국을 겨냥한 풍자만화를 그렸습니다.
<슈웨다곤 신발 논쟁>(Shwedagon Shoe Controversy·1917)은 미얀마 예술사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버마아트클럽에서 만화를 공부한 바 게일(1893~1945)의 만평이지요. 이 작품은 사원에서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안내를 본 서양인이 신발을 신은 채 미얀마인의 등에 올라탄 모습을 그렸습니다. 영국군은 호시탐탐 불교 성지에서 신발 벗는 예법을 없애려 했습니다. 불탑의 나라는 민족주의 열망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영국군은 억지 사과를 하며 자신들도 신발을 벗겠다고 선언합니다. 실은 미얀마 국민이 한마음이 될까, 독립운동이라도 일어날까 염려해서였지요. <슈웨다곤 신발 논쟁>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사과는 존중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미얀마를 지배하려는 계산이다. 그들에게 설득당하거나 협력하지 말자.”
만화, 글보다 다의성이 풍부한 기호비록 영국이 그들의 예술을 짓밟았지만 미얀마 예술가들의 만화 속에는 나라의 자존심이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미얀마에 불교가 정착하기 전, 사람들은 주로 토착 신앙을 믿었습니다. 동물과 결합한, 초자연적인 신을 모시는 경우가 많았지요. 불교는 정착 과정에서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동물 신의 요소들과 어우러졌습니다. 따라서 미얀마의 불교예술에는 과장되거나 판타지적인 면이 있었고, 이는 만화의 기법과 닮아 있었지요. 이를 발판 삼아 미얀마의 예술학도들은 만화를 빠르게 흡수해 자신들의 목소리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영국은 물러갔지만, 그들의 식민지배는 미얀마에 분열이란 후유증을 남겼습니다. 영국은 미얀마가 뭉치는 걸 두려워했고, 여러 민족을 이간질해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불안정을 빌미로 군부는 국가권력을 강탈했고, 오늘날까지 미얀마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몸살을 겪고 있습니다.
미얀마 언론계는 검열과 이완을 오갔습니다. 만화는 이들에게 사회적 발언을 비교적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글보다 두루뭉술하게 표현할 수 있고 다의성이 풍부한 기호니까요. 낙타의 입천장처럼, 그들의 만화는 고난의 시간을 꾸준히 씹어 삼키며 맷집을 키웠습니다. 현재 미얀마에서 민주주의를 말하는 예술활동은 탄압 대상입니다. 만화가들은 체포되고, 구금됐습니다. 언론이 차단된 상황에서 인터넷을 통해 간간이 노출되는 그들의 작품은 유난히 세상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어둠 속에 갇힌 이들이 자유의 빛을 찾는 간절함을 품어서겠지요. 지금 그들의 벽화와 음악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네요. 오래전 미얀마의 만화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강기린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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