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봄, 미얀마 국민은 군부독재 정권의 총칼에 맞서 목숨을 건 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겨레21>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미얀마 국민과 연대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한국 시민의 글을 제1358호부터 미얀마어로 번역해 함께 싣습니다. #Stand_with_Myanmar
‘뮬란’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으리라 믿습니다. 고대 중국 설화 속 전쟁영웅이지요. 연로한 부친 대신 군역에 종사해 천리만리 먼 원정길을 떠났고, 외적에 맞선 전투에서 공훈을 세웠음에도 논공행상을 마다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청한 여성. 우리가 익숙히 아는 뮬란 설화입니다.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하던 시절에 그는 어떻게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상상해봅니다. 남정네들로 가득한 전장에서 여성이 정체를 숨기고 지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뮬란은 부친을 위해 희생으로 가득한 길을 걸었습니다. 남자들과 대등하게 싸우면서 뮬란은 자신의 기량과 능력을 만천하에 보였습니다. 이토록 어려운 일을 해내고도 전쟁이 끝난 뒤 그가 원한 건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습니다.
지금 미얀마 ‘봄의 혁명’에도 수많은 뮬란이 존재합니다. 군부 쿠데타에 맞서 거리로 나온 여성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전 혁명에서도 여성 참여는 있었지만 이번 봄의 혁명만큼 도드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한 예로 쿠데타 반란세력이 수배하는 혁명가 중 약 40%가 여성인 점이 그것을 방증합니다. 이러한 여성의 사회참여는 단연코 미얀마 역사상 유례가 없습니다.
저는 거리에서 여성의 용맹함을 봤습니다. 분필을 들고 교단에 섰던 교사, 흰옷을 입고 환자를 치료하던 의료인, 펜을 들고 배움에 매진하던 학생 등 각계각층의 여성이 거리로 나가 깃발과 팻말을 들고 무더위 속을 행진했습니다. 총성이 울리고 체포의 위협이 다가와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먀뛔뛔카인, 째신 같은 여성들은 혁명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그들은 오롯이 나아갔습니다.
여성들의 투쟁은 거리집회에서 무장투쟁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어떤 여성은 부모의 격려와 응원 속에 총을 들었지만, 일부 여성은 집안의 반대에 부닥쳤습니다. 반대에 부닥친 이들은 친지는 물론 부모와도 절연하고 무장투쟁에 합류했습니다. 뮬란이 가족을 위해 군역에 종사했다면 봄의 혁명 여성 대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집을 떠났습니다. 여성의 능력과 역할 수행은 이번 혁명의 핵심입니다. 여성 대원은 남성 동료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투쟁을 이어가고, 어떤 분야에선 남성을 뛰어넘는 역량을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야 형언할 수 없이 많지만, 그럼에도 여성 대원들은 강인하고 용맹하게 쿠데타의 주범 민 아웅 흘라잉의 몰락과 군부독재 종식이라는 대업을 위해 나아갑니다.
최근 사가잉주 먀웅 지역에서 여성 대원으로만 이뤄진 게릴라 부대가 창설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얀마 역사상 최초의 여성 유격대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섬섬옥수에 살인 병기를 쥐어야 했던 대원들의 분노와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신념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공공의 목표인 군부독재 타도를 위해 그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뮬란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저는 뮬란이 단순히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남성우월주의로 가득한 사회체제에 저항한 최초의 여성이기도 합니다. 미얀마는 오랜 시간 문화와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억압해왔습니다. 그래서 봄의 혁명은 군부독재 타도만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구습 타파와 여성의 완전한 권리 획득을 위해서도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가 열망하는 인권이 존중되고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이 이뤄질 것입니다. 전장에서 목숨 걸고 싸운 뮬란이 원한 것은 무사 귀향과 가족과의 평안한 삶을 꾸리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시민방위군 여성 대원들도 마찬가집니다. 이에 더해 여성들은 민족의 안녕과 새로운 국가 건설이라는 대망을 품고 있습니다.
혁명이 승리로 끝난 뒤 우리는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새 나라 건설을 위해 분골쇄신할 것입니다. 잔혹한 독재체제가 무너지고 가족과 뜨겁게 재회해 안전하고 온기 넘치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우리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그를 위해 시민방위군 여성 대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스스로 개척하며 혁명의 여정을 굳건히 걸어갈 겁니다.
꺼나웅(가명) 미얀마 시민방위군 대원
*<한겨레21>은 2021년 4월부터 8개월 동안 한국과 미얀마 시민이 함께 쓰는 ‘미얀마 연대’를 매주 연재해왔습니다. 앞으로는 부정기적으로 기고를 원하는 이들의 글을 받아 싣습니다. 원고 보낼 곳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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