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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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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불복종 참여 교사의 편지

불의와 타협을 거부한 버마족 교사가 보내온 편지
등록 2021-09-04 14:52 수정 2021-09-09 02:32

[#Stand_with_Myanmar]
2021년 봄, 미얀마 국민은 군부독재 정권의 총칼에 맞서 목숨을 건 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겨레21>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미얀마 국민과 연대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한국 시민의 글을 제1358호부터 미얀마어로 번역해 함께 싣습니다. #Stand_with_Myanmar

저는 뗏 수 흘라잉입니다. 미얀마 제2도시 만달레이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합니다.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자부하기도 하고, 제자들에게 독서를 권하고 싶은 마음에 학교 도서관 사서 업무도 담당했습니다.

2021년 2월1일 쿠데타가 발생하기 전, 미얀마 중부에 사는 우리 버마족은 안정적인 일상을 영위하며 살아왔습니다. 반면 소수민족에게 평화는 늘 요원한 일이었습니다. 미얀마 군부는 라카인주와 친주에서 수년간 통신망을 차단한 채 잔혹한 인권 탄압을 자행했으며, 인종청소 같은 반인륜적 전쟁범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버마족 중심의 지배’라 불리는 이념을 추종해온 버마족 대다수가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가 됐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오랜 시간 민중 서로가 연민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말살하고 지금처럼 좁은 시야 속에서 분열하도록 교육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대물림되는 악순환 속에 태어나고 자라온 우리 현실을 잘 알기에, 저는 제자들이 자유롭게 사유하고 정의롭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학교 도서관에서 온 힘을 다해 바른 독서를 전파했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상상조차 못했던 불법 쿠데타를 또다시 저질러버렸습니다.

군부의 표적이 된 뒤 해고되고 도피 생활

2월1일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미얀마 전역에서 저항운동이 벌어지던 때, 일부 시민은 이 싸움이 미얀마 민중 다수가 지지하는 아웅산 수치 여사와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당면한 문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들 중에는 NLD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더불어 버마족뿐만 아니라 소수민족과 사회 각계각층이 군부독재 타도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이는 정당의 정치적 이해를 위한 싸움이 아닌 ‘정의와 불의가 벌이는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불의와 타협을 거부했습니다. 시민불복종운동(CDM)에 참여한 뒤 교육자들을 규합해 거리로 나가 군부독재 타도를 외쳤습니다. 이 때문에 군부의 표적이 됐고, 가족과 떨어져 도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군경이 벌이는 행위는 너무도 잔혹합니다. 저는 눈앞에서 동료 교사들이 무릎 꿇려져 얻어맞고 끌려가는 걸 봤습니다. 붙잡혀간 이들의 소식은 참혹하기 그지없습니다. 취조 과정에서 화장실 갈 권리를 박탈당해 용변을 비닐봉지에 해결해야 하고, 물 한 모금, 밥 한 덩이마저 먹지 못한 채 고강도 심문을 당합니다.

지금은 거리에 나설 수 없을 정도로 모진 탄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거리집회를 할 수 없어 저는 친주로 이동해 난민을 돕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난민캠프에 필요한 식량, 식수, 의약품, 옷가지와 생필품을 조달하는 게 제 임무입니다. 조달 과정은 너무도 험난합니다. 숱한 검문을 피해 소수민족 지역으로 어렵게 물자를 보냈는데 운이 나빠 군경에 덜미를 잡히면 물품을 모조리 압류당하고 활동가가 체포되기도 합니다. 군부는 자원봉사 활동마저 방해하려 활동가들의 은행계좌를 동결하고 얼마 되지 않는 잔고마저 압류했습니다.

사람들은 군인과 금융사, 기업들이 군부가 내린 명령이 무서워 민중에 해가 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들 스스로 이익을 좇기로 결정했기에 충직하게 군부를 따르는 겁니다. 군부는 일부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불의와 잔혹함이 일상화되도록 사회를 조작하고 망가뜨렸습니다. 희생되는 건 모두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뿐입니다.

뗏 수 흘라잉 시민불복종운동 참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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