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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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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강박관념 ‘중국을 이기자’

부시 행정부의 광적인 MD 집착이 9·11 테러로 귀결된 것처럼,
바이든 행정부의 미-중 경쟁에 대한 강박관념이 아프간 대혼돈 초래
등록 2021-09-04 14:22 수정 2021-09-08 02:45
2021년 8월3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가운데)이 동남아 순방길에 싱가포르에 정박한 미 해군 전함 털사를 방문해 지휘관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REUTERS

2021년 8월3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가운데)이 동남아 순방길에 싱가포르에 정박한 미 해군 전함 털사를 방문해 지휘관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REUTERS

2001년 9월11일 아침(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하늘은 쾌청했다. 거리는 출근길 시민과 자동차 행렬로 활기찼다. 오전 8시46분 대형 비행기 한 대가 쌍둥이 빌딩인 세계무역센터의 한 빌딩에 충돌하며 폭발했다. 오전 9시3분에는 두 번째 여객기가 다른 빌딩으로 돌진해 거대한 화염을 일으켰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세 번째 비행기가 미 국방부(펜타곤) 앞에 추락해 건물 일부를 파괴했고, 네 번째 비행기는 펜실베이니아주의 벌판에 추락했다.
미국 군사력의 심장부가 공격당하고 미국 자본주의의 힘을 상징하는 거대한 쌍둥이 빌딩이 힘없이 무너져내린 현실 앞에서 미국은 망연자실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알카에다가 미국 민항기를 납치해 벌인, 야만적인 동시다발 테러였다. 미국 전체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미국은 곧바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알카에다의 은신처이던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로부터 꼭 20년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프간에서 모든 미군과 미국인의 철수를 완료하고 종전을 선언했다. 미국과 동맹국 군인, 아프간 군경과 민간인 등 최소 23만 명이 숨지고 268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치른 뒤였다. 미군이 떠난 땅은 다시 ‘탈레반 천하’가 됐다.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으로 기록된 아프간 전쟁은 사실상 아무런 성과 없이 ‘교훈’만 남기고 끝났다.
표지이야기에서는 9·11 테러와 미국의 전쟁 20년을 돌아본다. △아프간 전쟁의 배경과 전망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명멸과 중동 지정학의 변화 △아프간 철수 이후 미국이 당면한 딜레마 등을 두루 짚었다._편집자주

2021년 8월26일(현지시각), 미군의 철군 개시 직후 아프가니스탄이 대혼돈에 빠져드는 상황에서 대형 테러가 발생했다. 이슬람국가(IS) 아프간 지부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힌 자살폭탄 테러가 카불 공항 외곽에서 벌어졌다. 아프간을 탈출하려 몰려들었던 현지인 90여 명과 철수를 앞둔 미군 13명이 숨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즉각 응징을 다짐하면서 드론을 이용한 공격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IS가 아프간 곳곳에 있고 이들에 대한 보복이 자칫 보복 테러의 악순환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이는 IS가 의도하는 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련 기사= 아프간을 정복 못했다.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미사일 아니라 커터 칼날에 당할 줄이야

이번 사건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미국의 위협 인식이다. 2001년 9·11 테러 발생 직전에 미국 정보기관은 테러 위협이 커진다며 이것의 대비책을 강조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미국과 동맹국이 직면한 최대 위협은 북한, 이란, 이라크 등 이른바 ‘불량국가’(Rouge States)들의 탄도미사일을 이용한 공격이라며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여기에는 떠오르는 중국을 상대로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적 수위를 유지·강화해 21세기도 ‘미국의 세기’로 만들겠다는 야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9·11 테러는 불량국가의 미사일 공격이 아니라 ‘커터 칼날’로 무장한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납치한 여객기의 공격으로 일어났다. 미국 내에선 부시 행정부의 정보 판단 미숙에 대해 비판이 나왔다.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를 “불량국가나 테러리스트가 탄도미사일을 이용한 공격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며 MD를 향한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9·11 테러를 MD에도 사실상 금지가 적용되는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 파기의 빌미로 활용했다. 동시에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으로 아프간 침공을 강행했고 북한·이라크·이란을 ‘악의 축’이라 하면서 전쟁과 갈등의 세계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20년 가까이 흐른 오늘날 바이든 행정부도 유사한 실책을 범하고 있다. 바이든이 8월31일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를 결정한 데는 미국의 힘을 중국·러시아와의 경쟁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주효했다. 부시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미국과 경쟁할 생각을 포기하라’는 입장이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의지를 뒷받침하듯 8월26일부터 미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 4개국 협의체인 쿼드(Quad)가 괌 인근 해역에서 합동군사훈련 ‘말라바르21’에 돌입했다. 앞서 8월23일에는 미국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싱가포르에 입항한 미 해군의 최신예 연안전투함에 올라 “중국은 남중국해의 대부분 지역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강압과 위협을 일삼고 있다”며 “이는 불법”이라고 말했다.

2021년 7월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오른쪽)이 중국 톈진을 방문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창설자이자 지도자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만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2021년 7월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오른쪽)이 중국 톈진을 방문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창설자이자 지도자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만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군사보복에 나설 것인가, 협력을 도모할 것인가

공교롭게도 IS의 카불 테러는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힘을 과시하는 와중에 발생했다. 이는 9·11 테러 당일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시 행정부는 테러 경고에도 불구하고 온통 MD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9·11 테러가 발생하기 몇 시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MD 보일러’라는 별명을 지녔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부 장관은 공화당 의원들을 펜타곤(미국 국방부)으로 불러들였다. MD 예산이 형편없이 적다며 예산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자리였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인 콘돌리자 라이스는 인근 대학으로 향하고 있었다. 미국이 직면한 최대 위협은 북한의 탄도미사일이라며 MD 강화의 필요성을 연설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9·11 테러가 발생하자 럼즈펠드는 시엔엔(CNN) 방송에 출연해 마치 대형 테러를 예상하고 공화당 의원들과 이 문제를 논의한 것처럼 거짓말했다. 라이스는 백악관 지하 벙커로 행선지를 바꿨다.

부시 행정부의 MD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테러 대응과 이후 세계 질서에 큰 해악을 미쳤다면, 바이든 행정부의 미-중 경쟁에 대한 강박관념은 아프간의 대혼돈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하겠다는 판단이 탈레반과 IS에 대한 과소평가를 낳은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철군이 불가피하더라도 철군 이후 아프간의 미래에 책임 있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프간의 혼돈과 IS의 테러는 미국에 중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장 미국이 IS를 상대로 단독 군사보복에 나설 것인가, 아니면 아프간의 권력을 사실상 장악한 탈레반과 협력을 도모할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해지고 있다. 단독 군사행동은 신속한 보복 의지를 과시할 수 있지만, 이는 결국 아프간 영토를 공격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가 생기게 된다. 미국이 탈레반의 동의나 협력 없이 IS 은신처로 추정되는 아프간 지역을 공격했다가는 20년 전의 잘못을 되풀이할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탈레반과 협력해 테러리스트에게 책임을 묻고 추가 테러를 예방하려는 방식을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 참고로 바이든도 탈레반이 IS와 테러를 공모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악의적 경쟁보다는 선의의 경쟁과 협력을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미-중 관계다. 바이든 행정부가 자신의 선택이 옳다며 중국과의 경쟁과 갈등 수위를 계속 높이려 한다면 세계질서의 혼돈은 가속될 위험이 크다. 좀처럼 꺾이지 않는 코로나19 유행과 갈수록 확산하는 기후위기 양상은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와중에 일어난 아프간의 혼돈과 테러 사건도 미국과 중국의 악의적 경쟁보다는 선의의 경쟁과 협력의 필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중국은 신중국 건설 100주년이 되는 2049년쯤 종합국력에서 미국을 추월하겠다고 다짐한다. 미국은 그럴 일은 없을 거라며 중국에 대한 압박과 포위를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기후위기를 방치할 경우 2050년의 지구는 거주 불능이 되리라는 경고가 나온다. 거주 불능이 되는 지구를 향한 미-중 패권 경쟁이 허망한 까닭이다. 그래서 묻게 된다. 뭣이 중한가?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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