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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프간을 정복 못했다.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소련이 아프간에서 패퇴하고 32년, 미국이 소련 전철을 밟아…
미국의 ‘종전’과 아프간의 ‘온건 노선’은 실현될까

제1379호
등록 : 2021-09-03 20:08 수정 : 2021-09-0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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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2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 앞줄)이 사흘 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국제공항 인근에서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폭탄테러로 희생된 미군 병사 13명의 주검을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맞이하며 예우를 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01년 9월11일 아침(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하늘은 쾌청했다. 거리는 출근길 시민과 자동차 행렬로 활기찼다. 오전 8시46분 대형 비행기 한 대가 쌍둥이 빌딩인 세계무역센터의 한 빌딩에 충돌하며 폭발했다. 오전 9시3분에는 두 번째 여객기가 다른 빌딩으로 돌진해 거대한 화염을 일으켰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세 번째 비행기가 미 국방부(펜타곤) 앞에 추락해 건물 일부를 파괴했고, 네 번째 비행기는 펜실베이니아주의 벌판에 추락했다.

미국 군사력의 심장부가 공격당하고 미국 자본주의의 힘을 상징하는 거대한 쌍둥이 빌딩이 힘없이 무너져내린 현실 앞에서 미국은 망연자실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알카에다가 미국 민항기를 납치해 벌인, 야만적인 동시다발 테러였다. 미국 전체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미국은 곧바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알카에다의 은신처이던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로부터 꼭 20년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프간에서 모든 미군과 미국인의 철수를 완료하고 종전을 선언했다. 미국과 동맹국 군인, 아프간 군경과 민간인 등 최소 23만 명이 숨지고 268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치른 뒤였다. 미군이 떠난 땅은 다시 ‘탈레반 천하’가 됐다.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으로 기록된 아프간 전쟁은 사실상 아무런 성과 없이 ‘교훈’만 남기고 끝났다.

표지이야기에서는 9·11 테러와 미국의 전쟁 20년을 돌아본다. △아프간 전쟁의 배경과 전망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명멸과 중동 지정학의 변화 △아프간 철수 이후 미국이 당면한 딜레마 등을 두루 짚었다. _편집자주

“국경을 넘으면 이슬람 국가다. 이슬람은 단지 종교가 아니라 다른 법을 가진 다른 세계다. 그들은 이교도와 싸운다. 우리와 싸우다 천국에 가면 이승에 없는 복을 누린다고 본다. 물, 풍부한 과일, 아름다운 처녀…. 명심하고 또 명심하라. 여자와의 관계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가정은 신성한 것으로, ‘하람’(Haram)이란 말의 어원이 됐다. (하람의) 두 번째 뜻은 ‘금기’다.”

빈라덴의 싹을 키운 옛소련과의 10년 전쟁
옛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지 9년째인 1988년, 아프간 북쪽 접경국인 우즈베키스탄의 한 신병 훈련소. 몇 달간의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전선 투입을 앞둔 병사들에게 교관이 단단히 훈시했다. “아프간은 다인종 국가다. 20개 이상의 민족이 있다. 타지크, 투르크, 우즈베크, 파키스탄 국경 쪽에 파슈툰, 서쪽 하자르와 몽골까지. (…) 역사를 통틀어, 그 누구도, 아프간을 정복하지 못했다. 단 한 번도.”

1989년 1월 ‘자르단 3234 고지전’ 실화를 다룬 러시아 영화 <제9중대>(2005)의 한 장면이다. 앞서 1979년, 소련은 아프간에서 쿠데타로 집권한 친소 성향의 누르 모하마드 타라키 정권이 내전으로 붕괴될 위기를 맞자 군사개입을 감행했다. 제9중대는 전차와 공격 헬기, 기관총과 대포로 중무장했지만 개인화기와 박격포 정도만 갖춘 아프간 민병대의 끈질긴 파상공세에 끝내 전멸당했다. 한 달 뒤인 1989년 2월, 소련은 아프간 10년 전쟁을 빈손으로 끝냈다. 바로 그해 11월 독일에서 베를린장벽이 무너졌고, 2년 뒤인 1991년에는 소련이 몰락했다. 아프간은 소련에 문자 그대로 ‘베어 트랩’(The Bear Trap·곰 잡는 덫)이 됐다.

이 전쟁에서 소련에 맞서 싸운 이슬람 무장세력이 ‘무자헤딘’이다. 무자헤딘은 ‘지하드(이슬람 성전) 전사들’이란 뜻이다. 미국은 소련의 팽창을 막으려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미국과 파키스탄은 무기를 제공했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의 친미 국가들은 돈을 댔다. 그러나 이는 뒷날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호 출신이자 알카에다 창설자인 오사마 빈라덴의 9·11 테러도 여기에서 싹이 텄다.

빈라덴은 이슬람 사회가 세속주의에 물들었다고 비판하며 참신앙과 코란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와하비즘’에 심취했다. 와하비즘에 대한 그의 절대적 믿음은 시를 즐겨 쓰고 금욕 생활을 하던 그를 진정한 이슬람 가치의 실현을 위한 ‘지하드 전사’로 바꿔놨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자 그는 아프간에 들어가 지하드를 수행했다. 스물아홉 살이던 1988년에는 본격적인 군사행동을 위한 알카에다를 창설했다. 빈라덴은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패퇴한 이듬해인 1990년 ‘지하드의 영웅’으로 귀국했다. 바로 그해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이 즉각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걸프전쟁’이 일어났다. 알카에다는 미국을 지하드의 핵심 대상으로 찍었다. ▶관련 기사= 비뚤어지도록 열정적인 그들

소련이 물러간 아프간은 힘의 공백 상태에 빠졌다.  지역·민족·종파로 나뉘어 난립한 무장 군벌들이 벌인 7년간의 내전에서 무자헤딘이 주도권을 장악했다. 무자헤딘은 단일한 조직체라기보다 여러 파벌들의 엉성한 연합체에 가까웠다. 무자헤딘 정권은 폭압적이고 부패하고 무능했으며 불안정했다. 그 혼란을 수습하겠다며 이슬람 하위 성직자와 지지자들이 민병대를 결성해 무장투쟁에 나섰다. 이들이 바로 탈레반이다. 탈레반은 ‘학생들’이란 뜻이다. 급속히 세력을 키운 탈레반은 1996년엔 수도 카불에 입성해 ‘아프간 이슬람 토후국’을 선포했다. 그러나 탈레반 역시 극단적인 ‘샤리아(이슬람 율법) 통치’를 내세운 공포정치로 악명을 떨쳤다.

2021년 8월31일 밤(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에서 미국 공군의 C-17 수송기가 미국 군인과 아프간 현지인 군속 등을 태우고 아프간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년 전쟁 거치며 삶은 최악으로
소련이 아프간에서 패퇴한 지 32년 뒤, 이번에는 미국이 소련의 전철을 밟았다. 2021년 8월31일 저녁(현지시각),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어젯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에 걸친,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을 끝냈다”고 공식 선언했다. “12만 명이 넘는 사람(미국과 동맹국과 아프간 시민)을 피란시키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수작전을 대단히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자평했다. 약 26분에 걸친 그의 종전 선언 연설에 ‘승리’(Victory)라는 단어는 없었다. 탈레반은 미군의 마지막 수송기가 카불 공항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 모두의 승리”를 자축했다.

미국이 아프간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까지 꼬박 20년이 걸렸다. 조지 W. 부시(8년), 버락 오바마(8년), 도널드 트럼프(4년) 등 공화당과 민주당이 번갈아 집권한 3개 정부가 하나같이 아프간 철군을 공언했지만 누구도 실현하지 못했다. 2021년 출범한 바이든 정부가 예고하고 실행한 전면 철수는 아프간에 ‘제국의 무덤’이란 별칭이 붙은 현실을 새삼 일깨웠다. 소련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아프간 침공이 끔찍한 수렁에 담그는 첫발이 되리란 걸 상상도 하지 못했다. 9·11 테러 한 달 만인 2001년 10월7일, 미국은 탈레반 정권이 은신 중인 오사마 빈라덴을 넘겨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프간을 침공했다. 아프간이 테러 집단의 온상인 만큼 그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었다.

개전 한 달 만에 탈레반 정권은 붕괴했고, 세력은 지리멸렬 흩어졌다. 3년간의 미군정 뒤에는 친미 성향의 민선 정부도 들어섰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불과했다. 탈레반의 끈질긴 게릴라식 저항과 무차별 테러가 미국 동맹군과 아프간 국민을 괴롭혔다. 탈레반 정권도 부패하고 무능력했다. 외세의 침공과 오랜 내전, 극단적인 ‘샤리아 통치’를 내세운 탈레반 집권기(1996~2001년)에 이어 미국과의 20년 전쟁을 거치면서, 대다수 아프간 국민의 삶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국제통화기금의 2019년 자료를 보면, 아프간의 1인당 연간 국내총생산(GDP)은 513달러(약 59만원)로, 조사 대상 188개국 중 179위에 그쳤다.

아프간은 국토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지대인 내륙국가다. 북쪽으로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등 옛소련 국가들이 접경국이다. 서쪽에는 이란, 남쪽에는 파키스탄이 국경을 맞댄다. 동쪽으로는 좁디좁은 와칸회랑 너머로 중국의 신장웨이우얼자치구와 만난다. 바다를 접하진 않았지만 대신 중국과 중동, 중앙아시아와 아랍권을 잇는 교역로의 허브이자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다. 구리와 금,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과 철광석 등에 더해 아연, 수은, 세륨, 리튬 등 희토류가 풍부하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침탈과 오랜 내전에 시달린데다, 토착 군벌 세력이 강고한 까닭에 정치와 치안이 불안하고 경제는 낙후했다. 19세기 인도를 식민지배하던 영국과 남쪽으로 세력을 펼치려던 러시아가 충돌한 ‘그레이트 게임’의 주무대가 바로 아프가니스탄이다.

미국과 소련에 앞서, 세계 제국이던 영국이 아프간을 식민지로 삼으려 1819년부터 1919년까지 세 차례나 전쟁을 벌였지만 끝내 정복하지 못했다. 당시 영국은 아프간 왕국과 국경 협정을 맺어 영국령 인도와 아프간을 구분짓는 ‘듀랜드 라인’을 그었다. 이 경계선이 뒤에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국경이 됐다. 산악지대에서 전통 생활을 이어오던 여러 다른 민족들은 졸지에 서로 분리되거나 한 울타리에 합쳐졌다. 서구식 근대국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던 토착민들에게 또 하나의 민족과 종파 갈등의 씨앗이 심어진 셈이다.

군사적으로 종전은 분명해 보여
미국이 아프간의 천연자원에 눈독을 들이고 전쟁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미국한테 아프간은 자원 확보나 군사전략, 지정학적으로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이 아니다. 아프간에 근거지를 두고 9·11 테러를 벌인 알카에다에 대한 응징과 테러 기지 근절이 핵심 목표였다. 미국은 단기간 목표 완수를 기대했다.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마스터플랜 같은 건 없었다. 아프간 전쟁이 부시 정부 시절 군산복합체가 주축인 ‘네오콘’(강경 보수파)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2003~2011)과 성격이 다른 이유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8월31일 아프간 철군 결정을 설명한 대국민 연설에서도 확인된다.

바이든은 “맨 처음에 우리가 왜 아프간에 갔는지 기억해보라. 2001년 9월11일 오사마 빈라덴과 알카에다가 우리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프간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이어 “만일 9·11 공격이 아프간이 아닌 예멘에서 왔다면, 2001년 아프간이 탈레반 통치 아래 있었다고 한들 우리가 아프간에 갔을까? 정직한 대답은 ‘아니요’다”라고 말했다. “우리(미국)는 미국 본토와 미국 동맹국들에 대한 공격을 차단하는 것 말고는 아프간에 사활적인 국익이 없으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아프간을 너무 몰랐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대규모 병력을 증파하며 공세를 벌이던 2009년 9월, 탈레반 지도자 물라 오마르는 은신처에서 발신한 영어 메시지를 통해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아프간 역사를 공부하라”고 꼬집었다. 오마르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대왕의 군대가 파슈툰족에 패퇴”한 사례와 “(19세기) 아프간이 80년 동안 영국 침략자들에 맞서 싸워 마침내 독립을 쟁취”한 사례를 언급했다. 이어 “오늘날 우리는 더 강한 결의와 군사훈련과 효과적인 무기들을 보유하고 장기간 전쟁에 준비돼 있다”며 “침략자들을 축출하고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지하드(성전)를 계속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마르는 2013년 사망했지만, 8년 뒤 그의 공언은 현실이 됐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정말 끝났을까? 적어도 군사적으로는 ‘종전’이 분명해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러시아·사이버공격·핵확산 4가지를 오늘날 미국이 당면한 핵심 위협으로 꼽고 국가안보의 전략축을 옮길 것을 분명히 했다.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미국 영토 안에서 우리를 더 강하고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고도 했다. 최소한 그의 재임 기간에 지상 전투 병력 파병을 통한 군사개입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관련 기사= 바이든의 강박관념 ‘중국을 이기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만에 완전히 철수한 다음날인 2021년 8월31일, 수도 카불에서 탈레반 지지자들이 탈레반 깃발을 흔들고 구호를 외치며 자축 행진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테러와의 전쟁 대신 ‘테러에 맞선 싸움’으로
미국 안에서는 아프간 전쟁을 복기하고 실패 원인을 분석하는 평가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당장 바이든 대통령부터 “아프간 철군 결정은 우리가 지난 20년간 훈련하고 무장시킨 30만 명이 넘는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과의 내전에서 강력한 맞수가 될 거라는 가정에서였지만, 그 가정은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미군 철수 직전 카불에서 대형 테러를 저지른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를 겨냥해 “우리는 너희와 볼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아프간과 다른 나라들에서 테러에 맞선 싸움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 20년 동안 써온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이란 구호 대신 ‘테러에 맞선 싸움’(Fight against Terror)이라고 표현한 대목이 눈에 띈다.

2021년 8월16일 미국의 ‘아프간 재건 특별감사관실’(SIGAR)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 아프간 재건 20년의 교훈’이라는 제목의 특별보고서를 냈다. 2008년 독립기구로 설립된 특별감사관실의 191번째이자 사실상 마지막이 될 이번 보고서는 ‘아프간 재건’ 실패에 대한 뼈아픈 자책과 원인 분석으로 채워졌다. 감사관실은 아프간 재건 실패의 원인을 △전략 △시간표 △지속가능성 △인적 자원 △치안 불안 △아프간의 특수한 맥락 △감시와 평가 등 7개 항목으로 나눠 살폈다.

특별보고서의 핵심을 간추리면 이렇다. 첫째, 미 국방부는 자체적인 아프간 전략을 주도할 전문가와 자원이 없었고, 국무부는 경제와 거버넌스 영역에서 대규모 재건 임무를 수행할 구체적 내용이 없었다. 둘째, 미국 관리들은 실질적 달성이 가능한 목표를 세우지 않고 비현실적으로 촉박한 일정을 고집했다. 셋째, 재건 프로그램은 당장의 구제를 위한 인도적 지원과 달리 지속가능한 정부와 시민사회, 상업(경제) 기구가 필요한데도 장기적 지속가능성 확보에 실패했다. 넷째, 적시 적소에 적절한 인물을 투입하지 못했다. 다섯째, 아프간 전역에서 지속된 치안 불안 탓에 신뢰할 만한 합법적 선거와 정부 구성에 실패했다. 여섯째, 아프간 고유의 사회·경제·문화적 맥락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 어설프게 서구식 기술관료 모델을 이식하려 했다. 끝으로, 아프간처럼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주기적이고 실질적인 점검과 평가를 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뼈아픈 ‘교훈’이자 만시지탄이다.

미군이 남기고 간 첨단 무기까지 챙기며 더 강해진 탈레반은 잔혹한 폭력집단 이미지를 털고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나라 안팎에 온건 노선을 표방하고 나섰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미군이 철수를 마친 8월31일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며 “그들 모두와의 좋은 외교관계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나흘 전 아랍위성방송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선 탈레반의 주축이자 최대 민족인 파슈툰족뿐 아니라 다른 민족들까지 아우른 통합정부를 구성할 뜻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전쟁이 아니라) 외교, 국제적 영향력, 그리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통해 아프간 국민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오사마 빈라덴의 ‘9·11 테러 기획’ 부인하는 탈레반
그러나 앞으로 한동안은 양쪽 약속 모두 빈말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아프간에선 벌써 ‘탈레반 공포정치 2.0’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이 팽배하다. 아프간 전역에 산재한 탈레반 집단을 카불의 지도부가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탈레반 지도부의 공언과 달리, 지방에선 탈레반이 미국에 협조했거나 불충한 무슬림을 겨냥한 가택 급습, 감금, 실종, 살해 등 폭력행위가 속출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북부 판지시르 등 몇몇 산악지역에선 탈레반과 반(反)탈레반 저항세력의 교전이 본격화했다. 탈레반은 미국의 아프간 침공 빌미가 됐던 ‘오사마 빈라덴의 9·11 테러 기획’조차 부인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8월25일 미국 엔비시(NBC) 방송 인터뷰에서 “오사마 빈라덴이 미국에서 이슈가 됐을 때 그는 아프간에 있었다. 그가 9·11 테러에 연루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아프간 영토가 누구에 대해서도 적대 행위에 쓰이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는 발언에 붙은 말이긴 했지만, 미국의 아프간 전쟁 명분까지 허물어뜨리려는 의도가 읽힌다. 미국 쪽 사정도 어수선하긴 마찬가지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격적인 아프간 철군 실행이 가져온 혼란을 두고 거센 비판과 책임론에 직면해 있다.

역사를 통틀어 누구도 정복하지 못했던 아프가니스탄의 국민은 20세기 중반 이후 줄곧 협애한 이슬람원리주의와 폭력으로 무장한 몇몇 군벌 집단, 그리고 외세의 침공에 시달려왔다. 자국민도 아닌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의 ‘지하드 전사’가 저지른 테러가 불러들인 20년 전쟁이 마침내 끝났지만, 아프간의 참담한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 고통은 고스란히 보통 사람들, 특히 여성, 아이, 종교적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몫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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