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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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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한 맹세에 우리가 화답하길

모내기철을 놓쳐 더 이상 나눌 식량도 없는 미얀마, 그 옹골진 주먹에 뭐라도 쥐여줬으면
등록 2021-09-01 12:03 수정 2021-09-02 02:27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Stand_with_Myanmar]
2021년 봄, 미얀마 국민은 군부독재 정권의 총칼에 맞서 목숨을 건 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겨레21>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미얀마 국민과 연대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한국 시민의 글을 제1358호부터 미얀마어로 번역해 함께 싣습니다. #Stand_with_Myanmar

미얀마 상황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쿠데타 초기 미얀마 시민들은 냄비를 두드리고 평화시위를 하는 것으로 저항했지만, 독재 59년의 내공을 갖춘 군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위자를 잡아가 참혹하게 살해하는가 하면, 심지어 주검의 배를 갈라 친친 꿰맨 채로 내다버리기까지 한다. 장기를 적출해서 팔았다는 소문, 향후 고문에 대해 책임 추궁당할 것을 대비해 가짜 기록을 만들려고 부검했다는 소문 등이 있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골목에서 놀던 아이도 저격당하고, 저항하는 지역에는 어김없이 포탄이 쏟아진다.

코로나19는 군부의 훌륭한 조력자

삶의 터전은 불타고 곡식과 가축을 빼앗긴 이들은 어린 아기와 노인을 둘러업고 더 깊은 밀림으로 숨어든다. 산속 마을들은 피란민을 집으로 받아들여 옷가지와 이불을 내주고 식량을 나눈다. 다 내놓고 나누다보니 이제 바닥을 닥닥 긁어야 할 형편이다. 폭격을 피하느라 모내기철을 놓쳐 농사를 망쳤으니 더 이상 나눌 식량도 없다. 외부에서 식량을 조달하기도 어렵다. 물품 수송로가 군부에 막혀 식량과 약품은 필요처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거의 빼앗긴다. 잔악한 군부는 피란민을 돕기 위해 재물을 내놓은 사람, 돕는 행위를 하는 사람 가리지 않고 잡아간다. 마을에 잠입한 평복 군인들은 찻집에 앉아 정보를 수집해 반대자를 색출하고, 떼지어 휩쓸고 다니는 군인들은 식량을 강탈해 먹어치운다. 총구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불을 뿜는다.

게다가 코로나19까지 덮쳤다. 총알보다 더 무서운 코로나19는 소리 없이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몸살인지 코로나19에 걸렸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 치료에 필요한 산소를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군부는 산소를 받기 위해 공장 앞에 줄 선 이들을 위협해 해산시키고, 산소 공장을 폐쇄해 국민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총과 포탄을 쓰지 않고도 국민을 위협할 수 있으니 코로나19는 군부에 아주 훌륭한 조력자다.

그래서 무장투쟁이 시작됐다. 참다못한 이들이 시민의 목숨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되찾겠다고 지역마다 시민방위군을 조직해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온전한 무기가 있을 리 없다. 맨발에 나무를 깎아 만든 모형 총을 들고 군사훈련을 받는 청년들 모습을 보면 기가 막힌다. 그 옹골진 주먹에 뭐라도 쥐여줬으면 좋겠다. 훈련받겠다고 훈련소를 찾아가는 청년들이 차비가 없어 그 먼 길을 걸어가지 않도록 그 손에 차비라도 들려 보내면 좋겠다. 청년들을 맞은 훈련소에 훈련병을 먹일 식량도 넉넉히 보냈으면 좋겠다.

내 피가 덜 붉다면, 머뭇거린다면

맹세/ 혁명의 길에 목숨 바치신/ 동지들 앞에 맹세합니다// 맹세/ 끝나지 않는 혁명에/ 내 피가 덜 붉다면/ 당신의 피를 뿌려/ 용맹하게 하소서/ 맹세/ 끝나지 않는 혁명에/ 두려움에 젖은 내 영혼이/ 주저하고 머뭇거린다면/ 당신의 영혼이/ 나를 움직이소서// 끝나지 않는 혁명에/ 거만함이 스며/ 내가 민중을 향해 등 돌린다면/ 당신이 싸우는 공작새의 손으로/ 나를 벌하소서// 끝나지 않는 혁명을 위해/ 내 생명 바쳐도/ 인생의 헤어짐은 슬프지 않아/ 내게 주어진 뜨거운 임무/ 혁명의 깃발 휘날리고/ 당신 품으로 내가 갑니다/ 동지들 붉은 가슴 열어 나를 반기소서

미얀마 청년들의 심장에서 뛰고 있는 이 시는 존경받는 시인이자 혁명가인 민꼬나잉의 ‘맹세’다. 이 뜨겁고 간절한 맹세에 우리도 뜨겁게 화답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이제 미얀마 소식은 뉴스에 안 나온다. 살그머니 잊히려 한다. 그래서 더 고맙다, 이 연재를 이어가고 있는 <한겨레21>.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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