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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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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만난 당신의 친절을 기억합니다

[미얀마와 연대합니다] 미얀마에서 만난, 무조건적인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사람들
등록 2021-04-25 13:03 수정 2021-05-19 09:09

이현정 마인드트립 대표

이현정 마인드트립 대표

[#Stand_with_Myanmar]
2021년 봄, 미얀마 국민은 군부독재 정권의 총칼에 맞서 목숨을 건 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겨레21>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미얀마 국민과 연대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한국 시민의 글을 제1358호부터 미얀마어로 번역해 함께 싣습니다. #Stand_with_Myanmar

안녕하세요. 저는 명상 지도자인 이현정입니다.

2020년 초, 미얀마 양곤의 명상 선원에 한 달 반 동안 머물며 명상 수행을 했습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갔던 터라 수행을 알차게 하고 싶었던 바람과는 달리, 어깨 통증이 심해지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점점 움직이기 힘들 정도가 됐지요. 명상센터 내 클리닉에서 약을 받았지만 잘 듣지 않더군요. 그나마 효과가 있는 건 의사 선생님이 빌려주신 찜질팩이었습니다. 찜질하면 짧은 시간이나마 천천히 걷거나 앉을 수 있었어요.

누가 잘 살고 있는 걸까, 누가 타인에게 도움되는 삶을 사는 걸까

하루는 찜질팩을 혼자만 여러 날 사용하는 것이 죄송해 의사 선생님에게 외부에서 사주실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후 구매비를 드리려고 하니 받지 않겠다고 하시더군요.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꼭 받으시라고 했지만 “당신은 수행자니 이 물건을 받을 자격이 된다. 돈을 받을 수 없다”고 하셨어요. 받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는 한국 문화 속에 살다 온 저는, 선원을 떠나면 다시 볼 일 없는 외국인에게 베푸는 조건 없는 선의가 낯설었습니다.

클리닉 처방만으론 치료되지 않아 외부 병원에 갔을 때, 하루의 시간을 다 내어 차를 태워주고 통역해주고 아픈 저를 돌봐주신 미얀마분이 계셨습니다. 하루 동안 수고해주신 비용을 알려달라 하니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시더군요. “나는 바빠서 수행하지 못하는데, 당신이 대신하고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고요.

미얀마의 많은 선원은 기부금으로 운영됩니다. 제가 간 곳은 외국인이 많은 편이나 그들의 기부금만으로 그 큰 선원이 운영될 리는 없습니다. 미얀마 시민들이 선원에 기부하는 돈으로 외국인도 경제적 부담 없이 수행할 수 있습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귀중한 가르침까지 주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꼈습니다. 으레 한국은 잘살고 미얀마는 훨씬 못산다고 생각하지만 ‘누가 잘 살고 있는 걸까, 누가 타인에게 도움되는 삶을 사는 걸까’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최근 미얀마에서 일어나는 가슴 아픈 소식을 매일 듣습니다. 목숨 걸고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리고 미얀마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들은 내가 무거운 가방을 끌고 갈 때 가방을 들어준 사람이고, 길거리에서 수줍게 웃던 소녀이고, 열심히 가족을 부양하는 택시 운전사일 것입니다.

미얀마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라며 해사한 웃음을 짓고 선뜻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이 거리에서 군부가 발사하는 실탄에 맞아 피를 흘리고, 얼굴이 붓고,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있습니다. 뉴스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하고 숨통이 조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한명 한명의 얼굴을 보며 ‘이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이 사람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그러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매주 온라인에서 만나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활동 논의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거리에서 투쟁하는 분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미얀마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들이 베푼 호의와 친절함을 돌려드리고 싶다고, 그 손을 잡고 함께 가고 싶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초에 불을 켜면서 간절히 기원합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하고 계신 분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길, 고통에서 벗어나길. 안전하길, 안전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현정 마인드트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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