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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냐, 떼강도냐

스페인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
등록 2019-03-30 12:11 수정 2020-05-03 04:29
연합뉴스

연합뉴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어설픈 정보전이었을까, 일부 과격한 북한 인권운동단체의 떼강도 사건이었을까.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벌어진 스페인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3월26일(이하 현지시각) 스페인 고등법원은 기밀로 묶여 있던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 수사보고서를 전격 공개했다. 스페인 일간지 보도를 보면, 2월22일 멕시코 국적의 ‘에이드리안 홍 창’은 이름을 속이고 북한대사관의 3등서기관 면담을 요청했다. 대북투자를 앞세워서인지 의외로 문은 쉽게 열렸다. 에이드리안 홍 창을 따라 미리 대기하고 있던 9명이 곧 난입했다. 그들은 알려진 대로 컴퓨터 2대와 유에스비(USB) 몇 개, 하드드라이브 2개, 휴대전화 1대를 탈취했다. 여기까지는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전개다. 이들이 네 그룹으로 나뉘어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넘어가 미국행 항공기에 탄 것만 봐도 딱 그렇다. 일사천리다.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가 지난해 스페인 대사로 있었다는 점까지 더해지면 CIA가 작전을 펼쳤을 거라는 스페인 내 여론이 힘을 얻는다.

하지만 여기까지. CIA 작전이라고 말하기 힘든 대목도 있다. 이들이 취득한 정보를 넘기기 위해 접촉했다고 알려진 조직은 미 연방수사국(FBI)이다. CIA가 작전 성공 뒤 정보를 넘기려 FBI를 만난다? 굳이 비교하자면,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경찰청 수사대에 정보를 갖다 바치는 격이다. 조직 생리상 상식과 거리가 멀다(FBI와 CIA의 합동작전이라는 추론이 가능하지만, 현재까지 그 증거는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보고서에 등장하는 9명의 무장도 뭔가 부족하다. 권총집 5개, 전투용 나이프 4개, 독일제 모형 권총 6정, 손전등 5개, 수갑 등. 다른 건 몰라도 정상회담 일주일 전 상대국 핵심 인사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손에 쥔 게 모형 권총이라니. 하지만 는 이 사건이 CIA와 관련 있다는 사실에 여전히 무게를 싣는다. 우리 언론도 뒤늦게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침입자 10명 중 상당수(일부 보도에선 5명)가 한국 국적으로 알려지면서다. 이제 우리 차례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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