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차라리 추웠으면

미세먼지와 한파의 시간차 공격
등록 2019-01-19 07:44 수정 2020-05-02 19:29
구둘래 기자

구둘래 기자

한반도에 살기 너무 어렵다. 따뜻해지면 미세먼지로 숨을 쉴 수가 없고, 바람이 불어 미세먼지가 날아가면 추워서 발을 동동 굴러야 한다. 여름에는 너무 덥더니 겨울에는 너무 춥다. 비가 오면 부채 장사하는 아들 걱정, 해가 나면 우산 장사하는 아들 걱정하는 꼴이다. 어머니 독감이 나으니 아버지 제사가 돌아온다. 오른쪽 팔이 저려 왼쪽으로 누우니 왼쪽 다리가 저리다. 이래저래 살 수가 없다.

1988년의 그리스인은 ‘안개 속의 풍경’이라고 서정적 제목을 붙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세먼지가 최악을 기록했던 1월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사진)은 2040년 어느 날로 온 듯했다. 공상과학소설(SF)이 그린 미래 세계 모습 중에서도 최악이다. 광화문역에선 미세먼지 안내 방송이 나오고, 아파트에서도 나가실 때는 조심하시라고 방송이 나온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하고 종종걸음을 친다.

서울시는 1월12일 정오 미세먼지 비상 저감 조처를 시행해, 15일 오후 6시에 해제했다. 이 조처는 일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나쁨’(51~100㎍/㎥) 이상, 다음날도 나쁨 이상으로 예보될 때 발령된다. 2017년 2월 이래 총 10번 발령됐는데 주로 겨울철에 집중됐다. 여름철에는 비상 저감 조처를 시행한 날이 한 차례도 없었다. 겨울엔 차가운 공기가 지표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시기(1월15일, 17일, 18일)에 미세먼지 저감 조처가 시행됐다. 당시 미세먼지에 대해 국립환경과학원은 “국외 영향보다 국내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국외 기여율이 38~57% 수준이었다고 했다. 국내에서 주요 미세먼지 발생지는 충남 서해안 지역인 것으로 알려졌다. 석탄화력발전소 61기 중 30기가 이 지역에 몰려 있다.

미세먼지가 자욱했던 1월15일 고용노동부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김용균씨가 사고를 당한 한국서부발전에 대해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1029건의 법 위반 사항이 적발돼 총 6억7천여만원의 과태료를 매겼다. 땅의 발전소는 지뢰밭이고 하늘은 숨 쉴 수가 없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