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사>
3·1운동 100주년이다. 3·1운동이 100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말이다. 어느 여학교의 3·1운동 역사 자료를 파고든 한 교수는 자료가 부정확해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기념관의 자료, 학교의 자료, 기념비의 자료 등이 참가자 이름, 수형자 수, 수형 기간 등 기본 자료조차 일치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서 이감된 이 학교 출신이 함께 기재되거나, 만세 시위 뒤 함께 붙들린 동네 사람도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교 재학자가 되었다.
1919년 3·1운동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실패한 운동이었다. 이후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일제 말 통치는 더욱 가혹해졌다. 운동 뒤 26년이나 지난 뒤에 한국은 독립을 맞았다. 19살이었던 사람은 45살이 되고, 30살이던 사람은 56살이 되는 세월이다. 어지러운 해방 정국에서 연구가 이어지긴 했지만, 이미 3·1운동의 기억은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딴 사람의 경험을 자기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한국의 과거 정권이 3·1운동 연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세월’보다 더 큰 적이다.
“해마다 3·1절만 되면 당국은 민주애국 인사들을 자택에 연금시키거나, 체포, 연행 또는 자의반 타의반의 지방 여행을 시키는 것이 최근에 와서 상례화되어왔었다. 3·1절만 되면 당국은 잔뜩 긴장하고, 3·1절을 무사하게 넘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 자신 신민당 총재로서 1975년 3월1일에 발표할 예정이던 성명을 발표할 수가 없었고, 또한 가까스로 성명을 발표했으나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었다.”(대통령 기록관 ‘3·1절 유감’)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대통령이 되어 맞은 3·1절에 남긴 말이다. 정권은 역사를 국가의 이름으로 통제해왔고 만세, 해방, 운동 이런 말조차 두려워했다. 3·1절에 되살려야 할 것은 역사의 해방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랴, 세월은 100년이 흐른 것을. 독재정권이 더 미워지는 3월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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