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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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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잃은 노동당 ‘동지’ 코빈

6월 영국 총선 앞둔 메이의 보수당

노동당과 최대 격차 지지율 확보해
등록 2017-06-01 15:28 수정 2020-05-03 04:28
지지자들에게 연설하는 영국 노동당 당수 제러미 코빈. AP 연합뉴스

지지자들에게 연설하는 영국 노동당 당수 제러미 코빈. AP 연합뉴스

진보 성향의 한국 친구들은 ‘동지’ 제러미 코빈에 대해 긍정적 인상을 가진 편이다. 코빈은 나의 모국인 영국의 좌파정당 노동당의 당수다. 한국에서 보니 그 이유를 쉽게 알 만도 하다. 코빈은 지루한 중도파가 아니다. 평생 가난하고 짓밟힌 사람들을 위해 캠페인을 벌여왔으며 정치적 우위를 위해 원칙을 저버린 일도 없다.

서방세계를 중심으로 급진좌파주의가 떠오르고 있다. 제러미 코빈의 부상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그 현상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같은 추세를 고려할 때 영국 유권자들은 소탈하면서도 맹렬한 코빈의 매력에 이끌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6월8일 영국은 총선을 앞두고 있다. 보수당이 압승을 거둬 테리사 메이 총리가 연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난 철도 국유화 같은 코빈의 정책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내 표는 코빈에게 향하지 않을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유럽연합(EU) 잔류라는 노동당 당론과 달리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반대하지 않았던 코빈이 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화적인 중도좌파 노동당원들과 달리 급진좌파인 코빈은 유럽연합을 ‘자본주의자 클럽’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은 브렉시트 반대 캠페인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 게다가 코빈의 노동당은 테리사 메이 현 총리가 추진하려는 더 ‘심각한’ 피해를 입힐 공약에 맞서 선거전을 펼지는 것에도 실패하고 있다.

코빈은 다가오는 총선이 브렉시트에 대한 선거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의 발언은 명백한 허위다. 지난 1년간 영국 국민의 최대 관심사는 브렉시트였다. 이번 총선은 브렉시트에 관한 것이다. 브렉시트에 반대한 48%의 표심을 대변하는 것은 하원의원 9명을 보유한 소수 정당인 자유민주당뿐이다.

브렉시트 찬성론자는, 유럽연합 탈퇴는 세계화의 파고에 대항해 ‘우리의’ 문화와 국가를 되찾고 영국의 독립성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설파했다. 유권자들의 정서에 호소한 것이다. 그런데 브렉시트 반대론자는 명분으로 고작 내세운 게 국내총생산(GDP) 성장 둔화였다. 경제가 좋을 때도 하찮은 직업밖에 못 구하거나 (아니면 실직 상태거나) 집값도 감당할 수 없는데, 누가 경제성장 따위를 신경이나 쓰겠는가.

코빈은 당을 장악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노동당을 1980년대 초반의 노동당으로 되돌리고 싶은 급진좌파 당원들의 지지로 당수가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에도 노동당은 선거에서 이기기 어려웠다. 일반 당원들과 노동당 의원들은 코빈을 지지하지 않는다. (나도 일반 당원이었지만 코빈 때문에 탈당했다. 영국에서는 기자도 당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한국 기자들은 이 사실에 종종 놀라곤 한다.)

코빈이 노동당을 이끌면서 당은 시위 그룹으로 변모했다. 코빈이 이끄는 노동당은 민심은 안중에도 없이 이념적으로 일관적이고, 말하는 바를 실천할 뿐이다. 이는 지리멸렬한 노동당 지지율을 보면 알 수 있다. 노동당은 보수당보다 15~20%포인트 뒤져 있다. 이는 역대 최대 격차일 것이다. 노동당은 실제 선거에서 이기기보다 이념에만 몰두해 얻는 건 없는 전형적인 좌파정당의 함정에 빠져 있다.

영국은 사실상 양당제로 노동당이 지면 보수당이 이기게 돼 있다. 6월 총선에서 코빈이 지면, 메이 총리는 향후 5년간 원하는 것을 뭐든지 추진할 수 있다.

노동당 출신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여러 잘못을 저질렀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이라크 전쟁에 참여했고, 언론 플레이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역효과도 냈다. 하지만 블레어는 최저임금을 도입하고, 국가보건서비스(NHS)와 교육에 더 많은 재원을 할당하고, 아동·노인 빈곤을 극적으로 완화했다. 보수당이 집권당이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다니엘 튜더 전 서울 특파원 *영국 경제주간지 의 서울 특파원을 지낸 다니엘 튜더가 영국의 정치를 통해 3주에 한 번씩 독자를 찾아갑니다. 튜더는 영국 정치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다양한 움직임에 대해서도 ‘이방인’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을 제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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