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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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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은 비싸지 않다

영국 ‘힝클리포인트 핵발전소’ 재정 낭비

재생에너지 통념에서 비롯한 정책 실패
등록 2017-10-13 23:57 수정 2020-05-03 04:28
영국 남부 서머싯주에서 건설되는 힝클리포인트 핵발전소 전경. REUTERS

영국 남부 서머싯주에서 건설되는 힝클리포인트 핵발전소 전경. REUTERS

‘재생에너지는 비싸다’. 이는 오랫동안 존재해왔고,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통념이다. 최근 관련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그렇다. ‘녹색’이라 이름 붙은 건, 그것이 무엇이든 ‘좌파’로 분류된다. 마치 이분법적 흑백논리가 작동하는 것처럼 친환경 정책은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이면서 국가재정에 부담이 되는 보조금에 의존하는 것으로 쉽게 왜곡되기도 한다.

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2016년 9월, 영국 정부는 서머싯의 농촌 지역 힝클리포인트에 세 번째 핵발전소를 설립하는 데 서명했다. 여기에도 ‘이분법적 논리’가 작동했다. 재생에너지로 점차 증가하는 미래 전기 수요를 적정 가격으로 충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 자란 기술’에 투자하는 정부

‘힝클리포인트 핵발전 프로젝트’를 이끄는 두 회사는 중국의 ‘제너럴뉴클리어’와 프랑스의 EDF다. 둘 다 정부가 최대주주인 국영기업이다. 영국 정부는 그것이 무엇이든 ‘국가 주도형’은 열등하다고 생각한다.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그 주체가 외국 정부일 때다. (아마 그것은 이념적 이유라기보다 자기 확신이 부족해서인 것 같다.) 핵발전 프로젝트는 예정보다 1년 정도 지연되고 있다. 예산은 애초 예정보다 15억파운드가량(약 2조3천억원)을 초과했다. 과정이 어떠하든, 영국 정부는 계약을 체결한 중국과 프랑스 기업에 1메가와트(MWh)당 92.5파운드(약 14만1700원)를 지급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시장가격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다. 영국 경제지 의 지난해 보도에 따르면, 이 원전 건설은 영국 납세자가 300억파운드를 부담해야 하는 거대한 규모의 보조금 사업이기도 하다. 는 힝클리포인트 핵발전 프로젝트를 ‘보조금 문화의 최고봉’이라 명명했다. 자유시장을 선호한다는 정부가 성숙한 기술에 엄청난 재정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보통 우리는 정부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예측 가능한 비용 구조를 가진 핵발전보다 재생에너지 같은 ‘유치 산업’(infant industy)에 일차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기 기대한다. 특히 전기 생산 같은 경우 재생에너지로 가야 한다는 명확한 환경적 당위가 있다. 화석에너지의 환경적 영향은 잘 알려져 있다. 핵은 (폐기물이 제대로 다뤄진다고 가정했을 경우) ‘깨끗하지만’ 끔찍한 재앙이 일어날 수 있는 외부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이 같은 보조금 논쟁을 하지 않더라도 최근 (영국 에너지 산업엔) 굉장히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 풍력에너지 가격이 핵에너지 가격보다 낮아진 것이다. 최근 경매에서 미래의 풍력발전 프로젝트 소유자가 힝클리포인트의 전기보다 훨씬 싼 1MWh당 57.5파운드의 가격으로 전기를 파는 것을 제안했다. 오염 효과 등 외부 요인을 고려할 때 풍력발전은 영국의 전기에너지 가운데 가장 싼 에너지원이다. 이번에 풍력발전 프로젝트 소유자가 제안한 가격은 5년 전 풍력발전으로 생산된 전기 가격의 절반도 안 된다.

다른 재생에너지 역시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다. 태양에너지를 예로 들면, 5년 전 태양력 전기 1MWh의 가격이 150~200파운드 선이었다면 지금은 50~56파운드다. 농담처럼 들렸던 ‘영국 태양 에너지’라는 아이디어가 지금 현실이 됐고, 장차 힝클리포인트의 핵에너지보다 저렴해질 것이다.

풍력 전기보다 비싼 원자력 전기

시대적 조류가 바뀌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더 이상 비싸지만 기분 좋은 대안에너지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 그리고 미래 전기 생산의 상당 부분을 책임질 주요 에너지원이다. 언젠가는 재생에너지가 우리가 쓰는 전기의 100%를 담당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는 최근 , 그리고 내가 전에 일한 매체인 같은 주류 매체에서 긍정적으로 다뤄진다. 이 매체들은 풍력에너지가 더 저렴한 시대라는 점을 고려할 때 힝클리포인트 핵발전은 ‘포인트를 잃은 것’으로 평가해왔다.

기술이 주류가 되어 점점 더 많은 자금을 유치하면 비용도 함께 감소한다. 힝클리포인트 프로젝트는 2025년까지 가동되지 않을 것이다. 계획이 미뤄지고 있음에 따라 현실적인 가동 시기는 2027년께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무르익은 기술’인 원자력에너지는 지금보다 더 효율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 한창 성장하는 재생에너지는 엄청나게 발전한 ‘10년 뒤’를 맞이할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꽤나 노동집약적인 분야다. 재생에너지 투자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고용을 창출한다. 올해 초 미국에선 태양에너지 영역에서 37만4천 명이 일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보다 25% 늘어난 수치다. 에너지 산업 전체로 따지면 고용의 43%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반면 석탄·가스·석유 기반의 에너지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18만7천 명에 불과하다. 미국에너지부 보고서에 따르면,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영역에서 올해에만 19만8천 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컨설팅회사 PwC는 독일이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40% 감축하기 위해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절약 부문에 투자를 확대함에 따라 43만 명이 새 일자리를 얻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 정책에 1250억유로(약 168조4600원)가 소요된다.” 한 보수 매체가 뽑은 헤드라인이다. 그러나 PwC는 이 투자가 2740억유로의 가치를 창출하며 1490억유로의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평가했다. 재생에너지는 ‘강남좌파’들의 명분을 위한 선택지가 아니다. 재생에너지는 친환경적 선택일 뿐만 아니라, 냉정히 말해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선택지다. 반면 테리사 메이 총리가 결정한 1MWh당 92.5파운드를 지급하는 선택은 훨씬 비합리적이다.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재생에너지

시장은 스스로 선택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풍력발전은 영국 전기의 12%를 차지했다. 올여름, 이 수치는 확 늘었다. 6월7일 하루를 따져봤을 때, 이날 영국에서 사용된 전기 생산량의 26.7%는 풍력발전에 의해, 21.5%는 태양력발전에 의해 만들어졌다. 평균가격은 1MWh당 24.87파운드였다. 지금부터 10년 뒤 힝클리포인트의 핵발전소가 완공되면, 그것은 곧 엄청난 재정 낭비로 이어질 것이다.

다니엘 튜더 전 서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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