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란 좋은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시대엔, 혁신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 별로 없다. 혁신은 ‘기술적 진보’와 융합돼 쓰이기도 한다.
혁신은 ‘새로운 것을 만든다’ ‘기존 습관을 바꾼다’는 뜻의 라틴어 ‘innovare’에서 파생됐다. 흥미로운 건, 이 단어가 20세기 초 유럽에서 꽤 경멸적 의미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산업혁명 이전, 종교가 곧 법이고 사제가 재판관일 때 혁신은 지옥에 내쳐질 만한 범죄였다. 새로운 성경 해석 등이 그에 해당했다. 19세기에도 혁신가는 빈정거림의 대상이었다.
혁신의 의미가 바뀐 건가? 변화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바뀐 건가? 3년 전, 나는 기술 스타트업 창업을 위해 영국 런던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갔다. 스타트업 문화와 처음 맞닥뜨린 때였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스타트업 서브컬처를 알게 됐다.
스타트업 세계에서 혁신은 한결같이 칭송받는 단어다. 그러나 여전히 비도덕적이고 혼란스러운 측면도 있다. 새롭고 흥미로운 것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가치중립적인지와 무관하게 혁신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더 정교한 지도 서비스, 로컬 가게를 어렵게 만드는 조세회피처에 근거지를 둔 전자상거래 사이트, 친구 사진에 턱수염을 붙이는 애플리케이션 등 투자자에게 수십억달러의 부가가치만 안겨주면 칭송받는다.
금융계에선 2008년 세계경제를 파괴한 복잡한 파생상품을 ‘거대한 혁신’으로 여겼다. 그러나 2009년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금융 혁신이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객관적·중립적 증거를 나에게 알려주기 바란다.” 그는 금융계에서 가장 유용한 혁신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라고 했다. ATM을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파생상품과 비교하면서 긍정적 혁신과 부정적 혁신을 구분했다. 전근대의 혁신에 대한 과도하게 보수적인 생각과 다르며 오늘날 혁신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의 관점과도 다르다. 나는 볼커의 관점이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을 새로운가 새롭지 않은가의 관점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스타트업 사람들은 혁신의 특별한 분파 가운데 ‘(기존 질서의) 파괴’도 좋아한다. 달리 보면 누군가 일자리를 잃거나 파산할 수 있다. 결과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감정적, 재정적, 문화적으로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파괴’(Disrupt)라는 이름의 유명한 스타트업 콘퍼런스가 있다. 투자자는 기존 시장을 어떻게 파고들지 알고 싶어 한다. 젊은 창업자는 열정적으로 그들의 기술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자랑한다. 이 과정에서 부작용은 무시한다. 그러나 변화는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각각 고유의 장단점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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