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서너 살 때, 교실에서 모두가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 있었다. 바로 “오아시스야, 블러야?”다. 오아시스는 모두 알 것이다. 블러는 1990년대 중반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와 함께 브리티시팝과 청년문화를 지배한 록밴드다. 우리 세대가 침실에서 오아시스나 블러의 음악을 듣는 동안, 부모님은 거실에서 드라마 나 를 봤다.
나는 물론 단순화해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시대는 변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한 가지에 깊이 빠진 시대는 끝났다. 여전히 아델과 콜드플레이처럼 대중 스타는 있다. 그들에 대한 사랑은 이전처럼 헌신적이지 않다. 남은 단 하나의 ‘통일자’는 축구다.
이젠 인터넷이 있다. 인터넷은 현상·분야·관심사를 가리지 않고 지식과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 우리는 여전히 하향식 대중문화와 매스미디어를 소비한다. 그 방식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런던에서 회사를 운영할 때 직원들이 돌아가며 ‘사무실 DJ’를 맡아 배경음악을 골랐다. 우리의 넓은 선택지는 20년 전엔 없었던 다양성을 보여준다.
인터넷은 새로운 관심사를 열어준다. 종종 관심사의 물리적 근접성을 기반으로 한 사람들 대신 전혀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과 함께 스스로를 재편한다. 이웃, 고향 (심지어 내 나라) 사람들에게 느끼는 연대감이 훨씬 약해졌다. 과거 우리는 함께 이야기하고 친해질 무언가가 있었다. 지금은 더 이상 사회적 관계를 맺기 위해 물리적으로 어딘가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주 30곳의 영국 펍이 문을 닫는다. 2005년보다 나이트클럽 수도 50%가량 줄었다.
자신에게 직접 영향 미칠 때를 제외하곤 국내 뉴스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기이하게 나는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특별히 원하지 않았음에도) 영국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미국에서의 일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하나의 세계에서 새로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우리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소외된다.
나는 무언가가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누군가 지난밤 재미있는 TV쇼를 말할 때 함께 웃는 순간이나, 누군가 당신이 좋아하는 밴드의 새 앨범 카피를 가지고 있을 때 느끼는 흥분 같은 것들. 서로 옆에서 같은 감정을 느끼는 공동의 순간이 줄어들었다.
오늘날과 비교하면, 오아시스 대 블러의 시기는 완전히 지루했다. 그것은 하향식인데다 억압적이었다. 만약 당신이 둘 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상상해보라. 다른 사람들과 동시에 무언가를 즐길 확률은 매우 낮아진다. 근대 영국이 점점 ‘이웃 없는 국가’가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터넷 시대의 속성은 여러 이유 중 확실한 하나다. 우리는 고도로 민주적인 소외의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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