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레스터시티 구단 사이에는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2016년, 이들은 인간의 예측 능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보여준다.
<뉴욕타임스> 경제 칼럼니스트 닐 어윈은 5월11일 ‘인간은 이변을 예측하는 데 한없이 서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트럼프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과 시즌 전 도박사들이 5천 대 1의 배당률(배당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약체로 평가받는다는 뜻)을 책정했던 레스터시티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그저 ‘깜짝 이변’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이는 인간의 편향된 판단이 정확한 예측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윈은 이런 잘못된 예측들이 최근 일어난 일에 실제보다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는 ‘최신 편견의 오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주식시장이 한 차례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같은 조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곧 주식시장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믿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식의 오류다. 어윈의 주장에 따르면, 여론과 유권자들은 ‘지난 몇 차례 경선에서 결국 낙마한 후보들도 한동안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린 적이 있다’는 기억으로 트럼프의 약진을 묵살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 역시 지난 21차례 시즌에서 ‘빅 4’(전통의 강호 4곳)로 불리는 4개의 특정 팀만 우승을 차지했다는 기록을 ‘공식’처럼 생각했다.
반면 어윈은 “사람들이 1940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무명의 웬델 윌키가 거둔 깜짝 승리나 프리미어리그에서 빅클럽의 21차례 연속 우승이 시작되기 직전 시즌에 블랙번 로버스(1995~96 시즌)가 거둔 동화 같은 우승의 기억은 외면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예측에 서툴다. 다른 이유도 얼마든지 더 찾을 수 있다. 경선 후보나 프로축구 우승팀을 정확히 예측하기에는 과거 샘플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또 2016년 경선 결과를 예측하는 데 TV토론조차 없던 1950년대 경선 당시 경험을 끌어오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예측 과정에서 사건의 규칙과 외부 환경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편견 때문에 발생한 문제는 예측률 저하뿐만 아니다. 최근 편견으로 화제가 된 또 다른 뉴스가 있다. 국내 언론에도 소개된 페이스북의 이른바 ‘좌편향 뉴스 편집’ 논란이다. 페이스북 ‘트렌딩 토픽’에 소개될 뉴스를 고를 때, 컴퓨터 알고리즘만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인간’ 편집자가 최종 선정 여부를 판단해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보수 성향의 뉴스가 배제됐다는 논란이다. 가치판단에 중립적인 기계 대신 편견에 취약한 인간이 뉴스를 담당하면서 특정 이념에 치우친 뉴스가 일반인에게 더 많이 전달되는 것은 문제라는 논지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5월13일 “페이스북은 구글처럼 뉴스를 통해 이용자의 관심을 유도한 뒤, 그 자리에 광고를 배치해 수익을 올린다. 독자의 관심을 끌 만한 ‘맞춤형 뉴스’가 그만큼 중요해진 것”이라며 “하지만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상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는 다양한 시각에 노출되기보다 자신의 기존 의견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정보를 선호한다. 맞춤형 뉴스가 이용자의 클릭을 유도하려면 낯선 정보, 불편한 진실을 들이밀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의 편견’을 영업에 활용하기 위해 ‘기계적 공정함을 추구하는 컴퓨터’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결국 페이스북은 ‘공정한 뉴스 선택 알고리즘’ 대신 ‘인간의 편견’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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