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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허락된 삶

미 취업 포털 ‘워크’의 실험… 유연근무제의 효과와 한계
등록 2017-02-14 19:14 수정 2020-05-03 04:28
미국 취업 포털 ‘워크’의 첫 화면에 ‘유연성은 페미니즘의 미래’라는 문구가 있다. 워크 홈페이지(https://www.saywerk.com) 갈무리

미국 취업 포털 ‘워크’의 첫 화면에 ‘유연성은 페미니즘의 미래’라는 문구가 있다. 워크 홈페이지(https://www.saywerk.com) 갈무리

똑같은 일을 해도 남성보다 적은 임금, 고위 임원으로 갈수록 여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유리 천장’이 있다. 아울러 ‘독박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도 여성 쪽이 훨씬 더 많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터에서 발생하는 ‘성별 격차’는 미국에도 존재한다. 일하는 시간과 장소를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한 게 유연근무제다. 이 제도가 이직률을 낮추고, 일과 가정 사이에서 부득이하게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줄여 성별 격차 해소에 일조한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하지만 유연근무를 신청했다가 급여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 이른바 ‘유연근무 낙인 효과’도 미국에 엄연히 존재한다. 전체 회사의 약 80%가 유연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지만 대부분 허울뿐인 규정이다.

는 취업 포털 ‘워크’(Werk)를 통해 유연근무제의 효과를 정리했다. 워크는 인력을 채용하는 회사와 사전 협의해 ‘유연근무 조항’을 넣은 회사에만 구인 공고를 허용한다. 워크에는 주로 경력직 일자리가 올라오는데 재택근무 비율, 정시 출퇴근에 구애받지 않는 자율적인 근무시간, 출장 빈도 등의 요건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구직자들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일자리를 찾거나 처음부터 밉보일 염려 없이 세부 조건을 협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워크를 통해 직원을 채용하는 회사들은 “다른 경로로는 만나기 어려웠을 훌륭한 인재들이 원서를 낸다”고 입을 모은다.

33살 에린 파스도 워크를 통해 직장을 구했다. 그는 2살 된 딸이 있고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플로리다주로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 이사했다. 육아도우미를 일주일에 10시간만 쓰고 육아 대부분을 맡았다. 덕분에 비영리 컨설팅회사에서 매니저로 경력을 이어가게 됐다. 파스는 둘째를 낳은 뒤 출산휴가를 쓰고 다시 정규직 전환을 신청할 계획이다.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언지, 또 내게 중요한 게 뭔지를 최고경영자와 이야기할 통로가 있다는 것만 해도 이전에 일자리를 찾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워크의 실험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구인 공고를 내는 회사 대부분이 중소기업이고, 채용 대상도 대부분 고학력·경력직 여성이다. 하지만 일터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느냐가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고학력, 전문 직종도 마찬가지다. S&P 500(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가 작성하는 주가지수)에 드는 회사의 전체 임원 가운데 여성 비율이 4%에 불과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 워크를 창업한 변호사 애니 딘은 말한다. “여성도 당연히 임원이 되고 싶죠. 그렇지만 기업 임원이 되려면 삶의 어느 순간은 적어도 매일 16시간씩 주말도 없이 일에 파묻혀야 하는데, 대부분 여성에겐 그런 삶이 허락되지 않잖아요.”

유연근무제는 분명 성별 격차 해소에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유연근무제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먼저 남녀를 고루 배려하지 않은 정책은 오래갈 수 없다. 학교 수업이나 급식처럼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해야 하는 일도 많다. 가전제품 쇼핑몰 ‘베스트바이’는 유연근무제를 시행했다가 철회했다. 성별과 일터 문화 등에 대해 다양한 의제를 제기해온 싱크탱크 ‘뉴아메리카’의 앤 마리 슬로터 소장은 경영진의 인식과 태도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유연근무제를 시행해도 무리 없이 굴러가는 직업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한데 모여 일하는 것만큼 업무 성과를 평가하기 쉬운 방법도 없다. 결국 이 문제는 직원 개개인보다 업무를 지시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매니저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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