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사에서 2016년은 모처럼 의미 있는 해로 기록할 만하다. 온전히 취재 역량으로만 대통령 박근혜의 국기문란 범죄행위를 캐냈다. 이를 계기로 시민들은 최고권력자의 정치적 숨통을 사실상 끊어냈다. 언론사마다 취재 의제와 역량이 달랐지만, 그동안 정치·경제 권력 앞에서 손쉽게 펜을 꺾은 언론들조차 최소한의 구실을 한 게 사실이다. 지난해 말 한국언론학회 토론에서 “시궁창에서 장미가 핀 것 같다”며 자조와 긍정을 뒤섞은 분석이 나왔다.
이와 달리 미국에선 2016년을 ‘미디어 역사상 치욕적인 한 해’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트럼프에게 패한 미디어의 교훈’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2016년은 미국 뉴스 업계에 그다지 좋은 해가 아니었다”며 미국 언론의 총체적 문제점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언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백악관행을 ‘경우의 수’로서조차 거론하기 꺼렸고, 앞서 공화당 경선 과정에서도 트럼프의 승리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많은 이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게 이유다. 그는 “우리는 번쩍이는 것만을 좇기에 급급했다. 보이는 건 무엇이든 물어뜯었다. 깊이 파헤치지 못했다. 거짓말을 늘어놓는 정치인들의 책임을 묻지도 못했다”며 자성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크리스토프는 뉴스 프로그램을 모니터해 그 결과를 분석한 앤드루 틴들의 보고서로 ‘미국 언론이 트럼프에게 패배한 까닭’을 설명했다. 지난 대선 때, <abc> <nbc> <cbs> 3개 방송 네트워크 저녁 뉴스가 대선 후보자의 성명이나 토론을 빼고 독자적인 선거 관련 보도에 할애한 시간은 하루 36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맞붙은 대선에선 3개 방송사의 ‘독자적 선거 보도’ 시간이 하루 3시간40분이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이들 3개 방송사 저녁 뉴스가 빈곤, 기후변화, 마약중독 같은 핵심 이슈를 다룬 시간은 0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크리스토프는 이 사실을 근거로 언론인들이 ‘정책 없는 선거전’을 치렀다고 분석했다. 그는 “소수의 빛나는 예외를 제외하면 언론인들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보고 짖어대는 개와도 같았다”고 뼈아프게 반성했다. “우리에겐 중요한 사안을 보도하는 언론이 필요하지, (대선 후보가 올라탄) 차 한 대가 지나갈 때마다 짖는 언론이 아니다”라는 원로 언론 비평가 톰 로젠스틸의 말도 인용했다.
취재원들이 떠드는 것을 잘 받아쓰는 ‘속기사’가 아닌 권력자들이 손바닥으로 가려둔 진실을 캐는 ‘진짜 기자’가 필요한 시대다. 제이 로젠 뉴욕대학 교수(언론학)는 “백악관 언론 브리핑에 인턴기자들을 보내고, 베테랑 기자들은 ‘진짜 기삿거리’를 찾아다니라”고 제안한 적이 있다. 크리스토프 역시 “양쪽의 말을 무조건 한마디씩 인용하며 있지도 않은 논쟁을 만들어내는 ‘가짜 균형’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며 “칼럼니스트로서 할 말이 아닌지도 모르지만, 거들먹거리는 ‘논평’보다 ‘(스트레이트) 보도’에 집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많은 사람이 거짓을 사실이라고 믿을 때, ‘기계적 균형’보다 ‘공격적 진실’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희망을 꺾지는 않았다. 2017년이 시작됐고, 새로운 해를 살아야 한다. 크리스토프는 “올해 우리는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백만 미국인들의 국가 건강보험 상실 여부, 전체 국민 대비 21%에 이르는 빈곤 어린이들의 운명, 시리아와 남수단에서의 학살, 무역 전쟁, 또는 ‘진짜 전쟁’의 가능성 같은 것들이다. 크리스토프는 “역설적으로 건강한 언론의 구실이 더 중요해졌다. 애완견이 아닌, 감시견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스스로 옷깃을 여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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