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가 책임집니다!” “경제 살리는 대통령.” 대통령선거 시기에 흔히 접하는 구호다. 미국 국민이 대통령을 기억하는 방식에도 경제 성적표가 꼬리표로 따라붙는다. 로널드 레이건과 빌 클린턴은 정당도 다르고 정책도 달랐지만, 호황을 이끈 대통령으로 나란히 기록됐다. 지미 카터나 부시 부자의 경제 성적표는 신통치 않았다.
대통령의 힘으로 위기에 빠진 경제를 살렸다거나, 반대로 잘나가는 경제를 망쳤다는 평가는 온당할까? 닐 어윈 기자가 에서 분석한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통령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다. 대통령이 통제할 수 없는 경제 요인이 훨씬 많고, 대통령이 영향을 미치는 분야라도 견제 장치가 마련돼 독점적 권한이 없는 경우가 많다. 5년 단임제에 불과한 짧은 기간의 경제 성과를 거의 여과 없이 ‘대통령의 것’으로 평가하는 우리나라 분위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사를 보면, 경제 상황과 관련해 미국 대통령의 정책보다 더 근본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운(運)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임기 8년 동안 고용성장률은 8.4%였다. 오바마가 만약 1년1개월 먼저 취임했다면 고용성장률은 3.4%에 그쳤을 것이다. 반대로 고용 지표가 바닥을 친 2010년 2월에 취임했다면, 오바마 정권 8년 동안 고용성장률은 14%에 육박했을 것이다. 취임 시기만 달라져도 성적표가 바뀐다. 이른바 ‘기저효과’ 때문이다.
인구구조, 노동시장에 참여한 인구의 기술력 등 대통령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요인도 대통령 처지에선 결국 운이라고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의 가파른 성장을 이끈 동력 가운데 하나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다. 사회생활을 하는 25~54살 여성은 1948년 33%에서 2001년 77%로 높아졌다. 닉슨, 레이건, 클린턴 등 ‘경제 대통령’이라 불릴 만한 이들은 구조적 변화의 덕을 톡톡히 봤다.
둘째, 통화정책은 중앙은행 몫이다. 미국 대통령에겐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 총재를 비롯해 이사 7명의 임명권이 있다. 하지만 연준은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성 보장을 핵심 가치로 여긴다.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통화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사 임기도 14년으로, 대통령 임기보다 길다. 총재와 이사 임명은 상원 인준을 받아야 한다. 대통령이 인사권자라 해도 중앙은행을 장악할 수 없다.
셋째, 조세정책과 정부지출을 결정하는 재정정책은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위한 핵심 수단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경기 부양, 부자 증세 등이 대표적 재정정책다. 하지만 재정정책에서도 대통령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진 것은 의회다. 공화당이 다수당이 된 2010년 이후 오바마 대통령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고, 걸핏하면 자동 예산 삭감 논란이 일어난 배경이다.
국가 정책의 효과나 부작용은 즉각 체감하기 어렵다. 인프라 확충이나 교육 개혁, 경제정책에 따른 효과는 수년 뒤 수혜자가 나타날 때쯤이나 확인된다. 반대로 잘못된 규제의 폐해도, 시간이 흐른 뒤 전반적인 효율을 떨어트리고 성장을 저해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한 정권의 경제 성적표를 매겨보는 건 필요하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종합해보면, 경제 성패의 원인을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정책에서만 찾아서는 성공은 이어지지 못하고,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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