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12일 미국 세인트피터즈버그에서 열린 동성애자 권리 시위에서 경찰에 잡힌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들이 키스를 하고 있다. REUTERS
소련 붕괴 뒤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려 무장투쟁을 벌인 체첸 반군의 봉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체첸공화국은 러시아연방에 편입됐다. 이후 한동안 잊힌 체첸이 최근 다시 뉴스에 등장했다.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지역인 체첸공화국에서 경찰과 기관원이 동성애자 남성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해 구타와 고문을 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가족에게 이들을 ‘명예살인’ 하라고 종용도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 가 처음 이 문제를 알렸다. ‘휴먼라이츠워치’와 ‘러시아 성소수자 네트워크’ 등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목숨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의 탈출과 은신을 돕는 인권단체들이 내놓은 보고서와 각종 증언이 보도 내용을 뒷받침했다. 앤드루 크라머 기자도 이 문제를 취재했다.
크라머 기자의 기사만큼 눈길을 끈 것이 그가 올린 ‘취재 후기’였다. 기사 제목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보고(’Reporting on People Who ‘Don’t Exist’)였다. 있지도 않은 사람들을 취재해 기사로 썼다는 뜻이다.
크라머 기자가 체첸에서 탄압과 살해 위협을 못 이겨 도망친 동성애자를 만나 기사를 썼으니, 그들은 분명 실재한다. 다만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체첸공화국 대변인은 자국의 동성애자 탄압에 대한 언론 보도의 논평을 부탁하자, 단칼에 “체첸에는 핍박받을 동성애자 자체가 단 한 명도 없다. 있었더라도 이미 가족이 정리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크라머 기자는 체첸 정부의 공식 의견을 물은 뒤 체첸 사람들을 취재했다. 체첸을 방문했을 때는 동성애자를 만나지 못했지만, 체첸 밖에서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피신한 체첸 출신 동성애자들을 만났다. 체첸에선 지난 한 달 동안 100명 넘는 동성애자 남성이 느닷없이 시작된 정부 당국의 이른바 ‘게이 사냥’으로 불법 체포돼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경찰은 이들을 풀어주며 가족을 협박했다. 현지 언론과 인권단체의 말을 종합하면 지금까지 ‘게이 사냥’으로 숨진 이는 3명이다. 1명은 고문을 받다 숨졌고, 2명은 경찰에서 풀려난 뒤 가족과 친지들의 손에 죽었다. 이른바 ‘명예살인’이었다.
체첸 정부는 동성애자를 검거해 고문한 뒤 이들을 끄나풀로 만들어 동성애자가 모이는 채팅방에 들어가 만날 약속을 잡게 했다. 이런 함정수사로 또 다른 동성애자를 체포했다. 휴먼라이츠워치에는 체첸 정부 요원들이 동성애자를 공격했다는 신고가 쏟아져 들어온다. 체첸 정부는 두려움을 조장해 동성애 혐오를 부추기고, 대외적으로 체첸이 ‘동성애 청정 지역’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체첸에 사는 동성애자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고 체첸을 탈출한 이들은 증언한다. 파트너나 게이 친구가 잡히면 머지않아 다음 차례는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는 어떤 도움의 손길도 믿지 못해 체첸 밖 인권단체가 이들의 탈출을 돕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안전한 은신처에 숨어 지내는 동성애자는 모두 가명을 쓴다. 자신을 ‘일리아’라고 소개한 동성애자는 크라머 기자와 인터뷰하는 중에 자신의 뺨을 만져보게 했다. 크라머 기자는 취재 후기에 체첸 경찰에게 두드려 맞아 부러진 턱뼈를 붙이려고 의사가 급히 조여놓은 티타늄 나사가 만져지던 순간을 생생히 기록했다. 자신이 선택한 적 없는 성정체성 때문에 없는 존재로 치부되는 이들이 있다. 체첸 당국이 아무리 부정하고 덮으려 해도 동성애자는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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