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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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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시위, 우리는 프레디 그레이다

2015년 4월19일 스물다섯 청년 프레디 그레이, 경찰 보고 도망치다 체포 뒤 구금 일주일 만에 숨져, 체포 경찰에 대한 살인 기소 결정 나오면서 시위는 잦아들어
등록 2015-05-12 20:44 수정 2020-05-03 04:28
이 순간에도 세계 70억 명 인구 가운데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고, 우리의 세계는 떠난 사람으로 인해 완성됩니다. 그 가운데 한 명을 골라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짚습니다. 격주로 싣습니다. _편집자

2015년 4월19일,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가 세상을 떠났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경찰에 의해 불법 칼 소지 혐의로 구금된 지 일주일 만이다. 지난 4월12일 아침 8시39분, 키 173cm, 몸무게 66kg의 프레디 그레이는 경찰을 보고 이유 없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내 경관들은 그를 제압했다.

프레디 그레이의 장례식 다음날인 4월28일, 미국 볼티모어의 시위에 참여한 여성이 경찰이 쏜 최루탄 가스에 휩싸여 있다. AP 연합뉴스

프레디 그레이의 장례식 다음날인 4월28일, 미국 볼티모어의 시위에 참여한 여성이 경찰이 쏜 최루탄 가스에 휩싸여 있다. AP 연합뉴스

태어날 때부터 납중독

“경찰이 그레이의 등 위에 올라탔고 그레이의 다리는 뒤틀렸다”는 목격자의 말을 는 보도했다. 경찰차에 태워질 때만 해도 그레이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내 목을 다치게 했다”고 그는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시민이 촬영한 동영상에는 경찰이 인도에서 그레이를 제압한 뒤 경찰차로 끌고 가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 속에서 그레이는 정상적으로 걷지 못했다.

그러나 30분 뒤인 9시24분, 경찰차 밖으로 나왔을 때 그레이는 말은커녕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후 의식을 잃은 그레이는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일주일 뒤 사망했다. 부검 결과 직접적 사인은 척추 손상. 그레이 가족의 변호인은 “목 부위 척추 80%가 골절됐다”고 발표했다. 그레이의 척추가 부러진 정확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경찰이 그레이의 허리 뒤로 수갑을 채운 채 차량 바닥에 엎드리게 했고, 그레이가 고통을 호소했음에도 이를 무시했던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척추가 부러져 스물다섯의 삶을 마감한 그레이는 일평생 가난했다. 헤로인에 중독된 어머니를 둔 그에겐 변변한 직업이 없었다. 대신 전과 기록만 갖고 있었다. 폭행과 마약 혐의로 10차례 이상 체포됐다. 2009년 헤로인과 대마초를 팔다가 붙잡혀 감옥에 갔다. 2011년 가석방으로 풀려나왔지만, 지난해 12월 마약 소지 혐의로 다시 체포됐다. 5월부터 관련 재판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경찰을 보고 무작정 도망간 이유가 아닐까 추정되는 대목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볼티모어의 샌드타운 지역 주민은 대부분 흑인. 이곳은 납중독으로 악명이 높다. 수십 년 전 집주인들이 값싼 임대주택을 지으면서 납이 첨가된 페인트로 집 안팎을 칠했다. 납중독은 집중력 저하, 과잉행동장애 등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레이 역시 집중력 저하 문제로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다.

1989년 이곳에서 태어난 그레이는 태어날 때부터 납중독자였다. 생후 9개월 때 이미 혈중 납 농도가 1데시리터(㎗)당 10마이크로그램(㎍)이었고, 생후 12개월 때는 30㎍이었다. 당시 납중독 기준은 20㎍이지만 현재 기준은 5㎍이다. 그의 유일한 수입은 ‘납 페인트’ 소송을 통해 집주인에게서 매달 받아온 화해 보상금이었다. 보상금만으로는 어머니와 두 여동생을 부양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여자친구 앤절라 가드너(22)가 기억하는 그레이는 그럼에도 “따듯하고 유머스러운 성격”에 “항상 웃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레이가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어 했으며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원했다”고 가드너는 기자에게 말했다.

나이지리아 젊은이보다 건강 나빠
경찰 체포 과정에서 척추가 부러져 숨진 그레이의 생전 모습. 위키피디아

경찰 체포 과정에서 척추가 부러져 숨진 그레이의 생전 모습. 위키피디아

빈곤한 삶은 그레이의 것만이 아니었다. 흑인 밀집 지역인 이곳 주민의 절반은 실직자다. 이 지역의 16~64살 실업률은 51.8%다. 메릴랜드주 감옥 수감자의 절반 이상이 샌드타운 출신이다. 지역 주민들의 가구당 연평균 소득은 미국 전체 가구당 평균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만4천달러다. 는 “이곳 흑인 젊은이들의 건강이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와 인도 젊은이들보다 더 나쁘다.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장례식은 4월27일 열렸다. 볼티모어 뉴실로 침례교회에서 가족과 시민 2천여 명이 모여 그레이의 죽음을 애도했다. 교회 벽면엔 “흑인의 생존 문제는 모두의 문제”라고 적혀 있었다. 장례식에 참여한 시민들은 이내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행진 참가자들은 “프레디 그레이를 잘 알아서 여기 모인 게 아니다. 우리 주변에 프레디 그레이 같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취재기자들에게 말했다.

‘프레디 그레이를 위한 정의’(Justice for Freddie Gray)를 외치던 시위대는 진압에 나선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대는 돌멩이와 벽돌 등을 던지며 저항했다. 가난과 인종차별에 억압받은 흑인 주민들과 백인이 다수인 경찰 간의 오랜 갈등이 함께 불거졌다. 볼티모어 인구 64만 명 가운데 백인은 28%에 불과하지만, 이 지역 경찰 가운데 백인의 비율은 46%다.

시위는 인근 건물에 대한 방화와 약탈로 번졌다. 일부 시위대는 상점과 현금인출기 등을 약탈하고 경찰차를 부수었다. 볼티모어시 당국은 이날 시위로 200여 명이 체포되고 건물 15채와 차량 144대가 불탔다고 발표했다. 경찰 15명이 폭동 진압 과정에서 다쳤으며 이 가운데 6명은 중상이라고 밝혔다.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는 볼티모어시에 비상사태와 통행금지령을 선포했다. 메이저리그 경기도 취소됐다. 그러나 장례식 다음날인 4월28일 밤까지도 시위대의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경찰이 최루탄과 연막탄으로 대응하며 시내 광장이 매캐한 연기로 뒤덮였다.

볼티모어 시위는 다른 도시로 전파됐다. 4월29일 뉴욕 유니언스퀘어에 수백 명이 집결해 항의행진을 벌이다 경찰과 충돌을 빚어 60여 명이 체포됐다. 워싱턴에서는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모인 20대 시위대가 백악관까지 행진하며 “프레디 그레이를 위해 싸우자”고 외쳤다. 미니애폴리스, 보스턴, 휴스턴 등에서도 크고 작은 시위가 일어났고, 4월30일에는 신시내티와 필라델피아 시민까지 합류했다.

최근 1년 경찰 체포·심문 과정 중 죽은 흑인들

대권 주자들도 그의 죽음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은 인종차별과 사법차별 문제를 비판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우리 사법시스템에 존재하는 불평등이 미국의 미래 비전을 갉아먹고 있다. 사법제도가 균형을 잃었다”고 말했다.

공화당 대권 주자들은 법 질서와 가정 확립에 초점을 맞췄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법 규정과 집행에 대한 헌신이 있어야 한다”고 했고, 랜드 폴 켄터키 상원의원은 “가족 구조의 붕괴, 아버지의 부재, 사회적 도덕의 부족이지 인종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최근 1년 동안 경찰의 체포 또는 심문 과정에서 흑인들이 잇달아 죽었던 것도 이번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된 이유다. 지난해 7월, 뉴욕에서 불심검문 도중 에릭 가너(43)가 경찰에 목 졸려 숨졌다. 지난해 8월, 미주리주 퍼거슨에선 비무장한 마이클 브라운(18)이 경찰의 총격으로 숨졌다. 지난해 11월, 오하이오 클리블랜드에선 장난감 총을 들고 있던 타미르 라이스(12)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2005~2011년 구속된 3328명의 경찰 가운데 체포 과정 중 시민 살해 혐의가 적용돼 기소된 경찰은 54명에 불과하다고 는 보도했다.

시위는 5월1일 메릴린 모스비(36) 지방검사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그라들었다. 사법 당국은 프레디 그레이의 죽음을 경찰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하고 기소 방침을 밝혔다. 모스비 검사는 기자회견에서 “볼티모어 경찰은 그레이를 불법적으로 체포했고, 그레이가 가지고 있던 주머니칼은 불법적으로 소유한 것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사건 관련 경관 6명 가운데 그레이의 호송을 담당한 시저 굿슨은 2급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윌리엄 포터, 브라이언 라이스, 얼리샤 화이트는 과실치사로, 다른 2명은 2급폭행과 불법체포로 각각 기소됐다.

2급살인은 최고 징역 30년을 선고받을 수 있다. 기소된 경찰은 흑인 3명, 백인 3명이다. 시저 굿슨은 흑인 경관이다. 볼티모어 경찰 노조는 “지나치게 빠른 기소 결정이다. 관련 경찰 누구도 그레이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반발했다.

죽은 지 10여 일 만에 나온 기소

부모와 할아버지, 삼촌 등을 포함해 5대째 흑인 경찰 가족인 모스비 검사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이같은 결론에 도달했고, ‘정의 없이 평화는 없다’는 호소를 마음속으로 새겨들었다”고 말했다. 스물다섯 청년 프레디 그레이가 죽은 지 10여 일 만이었다.

김승미 여행자·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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