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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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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이라크를…

9·11 테러가 알카에다의 공격이라는 보고에도 부시는 “사담이 이 일을 했는지 보라”
이미 미국의 아프간 전쟁 실패를 예고해
등록 2014-04-19 15:48 수정 2020-05-03 04:27

2001년 9월11일 오전, 납치된 미국 여객기들이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강타할 때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플로리다 새러소타의 한 유치원을 방문하고 있었다. 앤드루 카터 비서실장이 “두 번째 비행기가 두 번째 빌딩을 때렸습니다. 미국은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부시의 귀에 속삭였다. 대통령 전용기 공군1호기에 탑승한 부시는 딕 체니 부통령과의 통화에서 “우리는 전쟁 중이다. …누가 이 짓을 했는지 찾아내서 그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차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텅 빈 훈련장’ 공습에는 관심 없다

공군1호기는 이륙 뒤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오직 최고 고도만을 유지했다. 부시는 루이지애나의 박스데일공군기지와 네브래스카의 오펏공군기지를 거치며 저녁이 되어서야 워싱턴 앤드루공군기지로 돌아왔다. 부시는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했다. “우리는 이런 행위를 저지른 테러리스트들과 그들을 숨겨주는 이들을 구별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전쟁이 다른 국가와 정권으로까지 확대될 것임을 보여주는 첫 시사였다.
연방수사국(FBI)은 사건 몇 시간 내에 납치범 용의자들의 신원을 대부분 파악했다. 9·11 테러 납치범들의 리더인 모하메드 아타의 수하물 등에서 납치범들의 신원을 파악했다. 부피 초과로 인해 아메리칸항공 11기에 싣지 못한 아타의 수하물 2개에서는 아타가 9·11 테러에 임하는 자세와 전술 등을 아랍어로 적은 4쪽의 문건이 발견됐고, 여기에는 납치범들의 신원도 적혀 있었다.
이날 백악관 회의에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수단, 리비아, 이란 등 누가 이 공격자들을 품어주는지 폭넓게 생각하라고 촉구했다. 이라크 응징 계획이 9·11 테러 당일부터 부시 행정부 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앞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날 오후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 대리에게 모든 정보를 취합하라고 지시하면서, 아프간의 알카에다 훈련장을 지칭하는 ‘텅 빈 훈련장’들을 단지 공습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본능은 오사마 빈라덴뿐만 아니라 사담 후세인도 동시에 치는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 더글러스 페이스는 9월11일 당일 국방부 고위 관리들과 함께 유럽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후세인을 타도하는 아이디어를 꺼냈다.
부시 대통령도 다음날인 12일 리처드 클라크 백악관 안보조정관에게 후세인이 관여된 증거를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클라크는 “알카에다가 했다”고 말하자, 부시는 “알아, 알아. 하지만 사담이 이 일을 했는지 보라”고 재차 지시했다. 백악관 안보조정관실은 18일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에게 이라크가 관여된 ‘강력한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딕 체니 부통령과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필두로 부시 행정부 내 고위 인사들, 그리고 국방부 내에 포진한 폴 울포위츠 부장관 등 네오콘 세력들은 9·11 테러가 발발하자마자 알카에다에 대한 응징보다는 이라크 응징 기회로 생각했다.
9월13일 국가안보위원회 회의에서 코퍼 블랙 중앙정보국(CIA) 대테러센터장은 아프간 침공 작전에 대한 첫 제안을 했다. 그는 알카에다를 파괴하는 CIA 주도의 작전은 단지 몇 주가 걸릴 것이며, 그들의 “눈알에서 파리들이 기어다닐 것”(그들의 주검에 파리가 낄 것이다)이라고 대통령에게 확신을 줬다.

침공안 확정하면서 이라크 응징 논의도 최고조

이 회의에서도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다시 이라크 응징을 주장했다. 그는 이라크는 위협이고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고 있다며 그들에게 대량살상무기를 줬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다른 테러분자 지원 정권들이 주지할 만한 피해를 이라크에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시 역시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은 정권 교체를 가져와야 한다고 응답했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미 그날 회의에 앞서 육군 3군 사령부에 이라크의 남부 유전지대를 장악하기 위한 계획을 3일 내로 작성하라고 명령했다.
9월15~16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아프간 침공안이 확정됨과 동시에 이라크 응징에 대한 논의가 최고조에 올랐다. 첫 회의에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정부가 이라크에 대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물었다.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번 기회”에 이라크를 때리자고 주장했다. 울포위츠의 초강경 매파 의견이 계속되자, 존 맥롤린 CIA 부국장은 이는 “현 시점에서 할 바른 결정이 아니다. …우리는 거기에 관여된 사람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들은 알카에다이다”라고 반박했다. 결국 회의는 알카에다와 탈레반에 대한 전쟁을 놓고 투표를 벌였다. 럼즈펠드는 기권했다. 부시는 회의 말미에 “나는 이라크가 관여됐다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캠프데이비드 회의에서 조지 테닛 CIA 국장은 CIA가 주도하는 아프간 침공 작전의 개요를 설명했다. 그는 CIA 군사요원들을 아프간에 침투시켜, 알카에다나 탈레반에 적대적인 북부동맹 등의 세력들과 연합해 침공 작전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CIA 군사요원들이 미 특수부대원들과 결합해, 이들이 미군의 공군력이 탈레반 정권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하도록 인도해 탈레반 정권을 타도하는 작전안을 밝혔다.
이미 전날인 9월14일 코퍼 블랙 대테러센터장은 CIA의 파키스탄지부장을 맡으며 대탈레반 공작을 벌였던 베테랑 현장요원 게리 슈로엔을 불러 아프간 침투를 지시했다. 그때 슈로엔은 은퇴를 앞두고 휴가를 가려는 참이었다. “게리, 당신이 CIA 요원의 소규모 팀을 아프간으로 끌고 가야겠네. 북부동맹과 연계해서, 우리가 알카에다를 추적할 테니 CIA와 미군의 협조를 받을 것이라고 설득하게.” 슈로엔은 은퇴를 미루고 아프간 침투 공작을 위한 배낭을 꾸리며, 북부동맹을 회유할 수백만달러의 현찰도 챙겼다.
9월17일 열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테러와의 전쟁 ‘2단계’가 논의됐다. 부시는 만약 이라크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경우 이라크의 유전지대 점령을 포함하는 작전 등 이라크에 대처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울포위츠는 이날도 럼즈펠드에게 메모를 보내, 만약 후세인이 9·11 공격의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10%가 된다고 해도 그 위협을 제거하는 데 최우선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가능성이 10%보다 훨씬 높으며,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파 사건의 주범인 람지 유세프가 이라크의 공작원이며 이라크가 그 사건의 배후라고도 주장했다. 람지 유세프가 이라크 공작원이라는 주장, 그래서 1993년 월드트레이트센터 폭파 사건에 이라크가 관여됐다는 혐의는 FBI의 최종 수사 결과 모두 근거가 없는 것으로 공식 확인된 사안들이다.
부시 행정부가 아프간 전쟁 계획을 확정하고 몰두하던 9월29일,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옵션 준비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1990년 후세인의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이를 탈환하기 위해 파견된 50만 병력보다 더 적은 병력으로 침공할 계획을 짜라는 구체적인 지시도 곁들였다.
아프간 침공 작전을 책임져야 할 국방부의 장관과 부장관 등이 그 작전에서 목표물인 알카에다와 탈레반보다는 이라크라는 다른 목표물에 집착했다. 이미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실패를 예고하고 있었다. CIA라는 정보기관이 전쟁을 주도하고, 국방부와 군은 뒷짐을 지는 이상한 전쟁이 아프간에서 벌어진다. 전쟁의 주역인 국방부와 군은 그 전쟁의 주적이 없는 엉뚱한 전장에서 전쟁을 계획하는 데 역량을 쏟는다. 9·11 테러 이후 워싱턴은 정말로 이상하고 이해하기 힘든 풍경을 보였다. 할리우드 영화를 조롱하는 빈라덴과 알카에다 테러리스트의 상상력에 의지한 전대미문의 테러공격은 부시 행정부에 경쟁적으로 상상력의 자극을 준 것 같았다. 9·11 테러가 나기까지 외교안보 분야에서 알카에다 등 초국적 테러집단의 위협에 대처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 대한 인식조차 없던 부시 행정부는 갑자기 상상력의 나래를 폈다.

9·11 이전 ‘테러리즘’은 단 한 차례 언급

9·11에 앞서,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30년 내에 가장 긴 휴가를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즐기던 부시는 8월6일 CIA의 분석관 바버러 수드가 직접 참가하는 ‘빈라덴, 미국 공격 결정’이라는 정보 브리핑을 받았다. 부시는 나중에 그 브리핑이 단지 “옛날 얘기”였다며 자신에게 알카에다의 위험에 대해 새로운 내용이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한 달 이상의 휴가를 즐기고, 9·11 일주일 전인 9월 첫째 월요일인 노동절이 지나서야 워싱턴에 복귀했다. CIA와 테러 관련 안보 관리들이 휴가 중인 대통령을 상대로 실무자를 참가시키는 정보 브리핑을 밀어붙일 만큼 당시 상황은 그들에게 온통 “빨간불이 울리고 있었다”.
7월10일 조지 테닛 CIA 국장은 라이스 보좌관에게 긴급 면담을 요청해 “앞으로 몇 주나 몇 달 안에 중대한 테러공격이 있을 것이다. …동시적인 다중 공격의 가능성이 있고 이는 전혀 경고 없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라이스는 클라크 안보조정관에게 이런 평가를 공유하는지 물었고, 클라크는 “그렇다”라고 소리쳤다. 테닛 등은 마침내 자신들이 라이스의 주의를 끌었다고 생각했으나, 라이스는 그 뒤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언론인 피터 버겐이 데이터베이스 ‘넥시스’를 이용해 조사한 결과, 라이스·울포위츠·체니·럼즈펠드는 1990년대 중반부터 9·11 전까지 언론이나 자신들의 저작물에서 알카에다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울포위츠는 단지 1998년 의회 위원회에서 “이라크와 빈라덴 사이에 의심되는 연관이 있다”는 언급을 했다. 9·11 이전 43차례의 부시 행정부 고위 각료회의에서 단지 한 번만 테러리즘이 언급됐다. 이것도 2월5일 첫 각의에서였고, 이는 이라크를 압박하는 논의 과정에서 나왔다. 알카에다의 위협에 대한 첫 각의 차원의 언급은 9·11 테러 직전인 9월4일이었다.
부시 행정부 인사들은 왜 이미 현실화되고 전례가 있던 알카에다 등 초국적 지하디스트 테러그룹들의 위협에 무신경했을까? 그들이 냉전시대의 안보관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버겐은 답한다. 라이스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위원회의 소련 전문가였다. 울포위츠는 1970년대 국방부에서 소련의 위협에 대비하는 ‘팀(Team) B’라는 작업을 주도하며 공직에 입문했다. 이 팀은 소련의 군사 위협이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는 잘못된 결론을 입안했다. 체니 부통령과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각각 비서실장과 국방장관으로 재직했다. 이들의 견해는 국가 차원의 위협이라는 냉전시대의 정신 상태에 고착돼 있었다. 버겐은 이들을 프랑스혁명 뒤 폐위됐다가 복위한 부르봉 왕가에 비유했다. “과거의 것을 전혀 잊지 않았고, 새로운 것은 전혀 배우지 않았다”라는 말이 공히 적용된다.
로마의 불과 금속의 신인 ‘불칸’은 부시의 안보보좌팀의 별명이다. 별명에서 보듯, 이들은 하드웨어적인 안보 위협에 집착했다. 그들에게는 미사일방어망이 제1의 과제였다. 국가가 아닌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을 첫 번째 위험으로 주장하는 것은 어려웠다. 대신에 그들에게는 이라크라는 불량국가가 첫 번째 위험이었다. 빈라덴과 알카에다를 주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부시 행정부의 세계관으로서는 정치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 불편한 일이었다.
부시 행정부 내에서 이라크 응징은 안으로 잠복하고 일단 아프간 침공을 위한 전쟁 계획이 진전되기 시작했다. 부시는 9월17일 국가안보위원회 회의에서 “나는 CIA가 먼저 거기로 가길 원한다”며 CIA가 선도하는 아프간 전쟁의 추진을 천명했다. 9월20일 부시 대통령은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통해 알카에다를 보호하는 탈레반이 “그 테러리스트들을 인도하지 않으면 그들은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모든 국가는 지금 결정해야 한다. 우리와 함께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과 함께할 것인가를”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공습… 전혀 다른 전쟁의 소용돌이로

이미 하루 전인 9월19일 게리 슈로엔이 이끄는 CIA팀은 아프간 북쪽 접경국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했다. 슈로엔 등 7명의 공작팀 암호명은 ‘조브레이커’(광석파쇄기). 조브레이커 팀은 일주일 뒤인 9월26일 아프간 땅에 잠입했다. 조브레이커 팀이 아프간에 잠입해 북부동맹과의 동맹 구축 작업들 벌이던 9월 말, 미국은 탈레반에 대한 마지막 공작을 시도했다. 아프간의 남쪽 국경지대에 접한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주도 퀘타의 세레나 호텔에서 CIA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지부장 로버트 그리니어가 탈레반 정권의 2인자 물라 악타르 모하마드 오스마니를 만났다. 그리니어는 미군의 빈라덴 체포를 탈레반이 방조하라고 제안했다. 10월2일 만남에서는 물라 오마르를 가택연금하는 쿠데타를 사주했다. 돌아간 오스마니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10월7일 미국의 공습이 시작됐다. 조브레이커 팀이 선도하는 CIA 특수행동국 소속의 군사요원 110명, 미군 특수부대원 300명, 이들과 동맹을 맺은 수만 명의 북부동맹 병력 등 반탈레반 아프간 병력들이 인도하는 미군의 공습은 탈레반 정권의 병력과 시설을 쪽집게처럼 강타한다. 알카에다, 탈레반, 미국은 이제 다시 전혀 다른 전쟁으로 접어든다.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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