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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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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IS와 대적할 것인가

사우디 와하비즘과 이집트의 감옥에서 배태된 전투적 이슬람주의에서 탄생한 이슬람국가…
그들을 키우는 수구적 현실과 억압적 정권 속에서 중동전쟁은 계속되고
등록 2014-10-11 12:48 수정 2020-05-03 04:27
민간인 학살과 납치 등 만행을 저지르는 이슬람국가(IS)는 국제사회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지난 9월15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유엔 청사 앞에서 이라크계 쿠르드족 주민들이 IS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민간인 학살과 납치 등 만행을 저지르는 이슬람국가(IS)는 국제사회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지난 9월15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유엔 청사 앞에서 이라크계 쿠르드족 주민들이 IS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오아시스는 당신의 것이다. 당신의 적을 두려워 말라. 알라의 이름으로 모든 네지드 전역이 당신을 내친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당신의 추방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1744년 아라비아반도 한가운데에 있는 노란 모래언덕의 사막지대 네지드. 이 지역의 사우드 부족장인 무함마드 빈 사우드는 이슬람 율법학자 모하메드 이븐 압둘 와하브에게 동맹 관계를 제안했다. 와하브는 화답했다. “당신은 우리 주민들의 수장이자 현인이다. 나는 당신이 불신자에 맞서 지하드(성전)를 펼칠 것이라는 다짐을 나에게 주기를 바란다. 그 보답으로 당신은 무슬림 공동체의 지도자인 이맘이 될 것이며, 나는 종교 문제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개인의 생활을 단속하는 종교경찰

와하브는 이슬람이 선지자 무함마드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슬림은 코란에 쓰인 그대로 실천해야 하며, 이를 준수하지 않는 자는 모두 지하드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우드-와하브 정교동맹군은 곧 아라비아반도를 휩쓸었다. 1800년대 초 이들은 시아파의 시조인 무함마드의 손자 후세인이 순교했던 카르빌라를 침략해 시아파 무슬림 2천 명을 학살했다. 성지 메디나에서는 무함마드의 동료 무덤을 파괴했다. 메카에서는 무함마드의 출생지를 표시한다고 알려진 사원까지 초토화했다. 우상숭배라는 이유였다.

오스만터키의 제국 군대에 의해 괴멸된 사우드-와하브 동맹군은 20세기 초 다시 등장했다. 현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초대 국왕인 압달 아지즈 알사우드는 ‘이크완’이라는 사우드-와하브 정교동맹군을 부활시켜 아라비아반도의 사막지대를 석권했다. 하얀 터번과 잘 다듬은 콧수염과 턱수염으로 상징되는 이크완은 반독립적 종교전사들의 전위부대였다. 이들은 종교적 신념과 열정을 바탕으로 200년 전 자신의 선배들처럼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을 차례로 정복해나갔다. 와하브의 이름으로 정복한 곳마다 술과 담배, 화려한 장식의 비단, 도박, 마술 등을 금지했다. 그들은 심지어 현대 문명의 이기인 전화, 라디오, 자동차도 신의 법에 위배된다며 비난했다. 그들의 영토에 트럭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크완들은 트럭에 불을 지르고 운전사를 맨발로 도망가게 했을 정도다.

사우디 왕국의 국교는 와하브의 교리를 따르는 와하비즘이 됐다. 사우디에서는 와하비즘에 입각한 종교경찰이 개인의 생활을 단속하며 사소한 위반자도 참수형에 처해질 수 있다.

1966년 8월, 이집트 정부의 2인자 안와르 사다트는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 중인 사이드 쿠틉을 비밀리에 방문했다. 쿠틉은 “나는 이 순교를 얻을 때까지 15년 동안 지하드를 수행했다. 신이여,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사형선고를 순순히 수용했다. 사다트는 국가 전복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쿠틉에게 항소하라고 제안했다. 그러면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자비를 베풀고 나중에 교육부 장관직도 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틉은 거절했다. 옥중에 같이 있던 여동생 하미다는 “이슬람 운동은 오빠를 필요로 한다”고 설득했다. 쿠틉은 “이 말을 받아적어라. 그들이 나를 죽인다면 내 말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라고 유언을 남겼다. 8월29일, 쿠틉은 교수형을 당했다. 나세르 정부는 그의 주검을 유족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그의 무덤이 추종자들의 사원이 될 것을 우려했다. 자신의 죽음이 자신의 말을 더 강하게 할 것이라는 쿠틉의 유언은 1년이 지나지 않아 곧 실현되기 시작했다.

쿠틉의 ‘순교’를 곁에서 지켜본 변호사 마푸즈 아잠은 외조카인 15살 청소년 아이만 알자와히리에게 두고두고 얘기해줬다. 자와히리는 15살 나이로 곧 세속주의 정부 타도와 이슬람 국가 건설에 헌신하는 이슬람주의 지하조직 창설에 가담했다. 자와히리가 관여한 지하조직은 곧 알지하드, 이슬람그룹 등으로 발전해나갔다. 이 단체들은 1981년 사다트 당시 대통령의 암살을 주도하는 등 수많은 테러와 암살을 자행했다.

이슬람국가의 풍부한 자양분

아라비아반도의 사막과 이집트의 감옥은 현대 이슬람주의 지하드 운동의 발원지다. 세계에서 자연적으로 가장 척박한 곳인 아라비아의 사막, 그리고 인위적으로 가장 잔혹한 곳인 이집트의 감옥에서 태어난 이념과 운동의 성격과 운명은 어쩌면 그 태생지에서 결정됐을 것이다.

사막에서 성장한 전투적이고 복벽적인 종교 이념인 와하비즘은 그 사막 밑에서 분출된 석유가 흐르는 곳을 따라 이슬람 세계에 퍼져나갔다. 사우디는 현대 이슬람주의 세력이 주장하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가 사실상 통치하는 유일한 현대 국가였다. 종교경찰이 개인의 복장 등 사생활을 간섭하고 규율한다. 이런 샤리아 통치를 실시하는 와하비즘을 사우디는 이슬람 세계에 수출했다.

우리는 ‘중동대전 70년’ 연재물 초기에 사우디가 현대 이슬람주의 운동의 배양지가 된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무자헤딘과 이슬람주의 세력을 정력적으로 지원했음을 지적했다. 이는 사우디가 자신들이 주도한 1970년대 석유 금수 이후 자신들의 와하비즘을 이슬람 세계 전역에 전파하려는 운동의 일환이었다. 이는 또 비슷한 시기에 이슬람혁명을 성공시킨 이란의 시아파를 봉쇄하고 이슬람 세계의 종주권을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슬람 세계에 수출된 와하비즘은 곧 이집트의 감옥에서 배태된 현대의 전투적인 이슬람주의와 결합했다. 고문이 횡행하는 이집트 감옥에서 쿠틉이 현대의 전투 전위조직 이론으로 정제한 전투적 이슬람주의는 와하비즘과 합성되며 현대 지하드주의로 승격됐다. 무슬림의 땅을 침탈한 모든 세력과 이에 동조한 세력을 상대로 지하드를 선포한 지하드주의 세력은 현대 이슬람주의 무장운동의 본류가 됐다.

1988년 8월20일 아프간과 접경한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사우디의 건설재벌 빈라덴 그룹의 아들 오사마 빈라덴과 자와히리 일행이 참석한 회의에서 아프간 전쟁이라는 성전을 지속해나갈 알카에다 결성이 선포됐다. 알카에다는 사우디의 사막과 이집트의 감옥이 결합해 나온 지하드주의 세력의 전형이었다. 빈라덴은 사우디 사막의 석유로 전파된 와하비즘을 대표했고, 자와히리는 이집트 감옥에서 배태된 급진적·전투적 이슬람주의 전위를 상징했다.

아프간의 이슬람주의 정권 탈레반 역시 와하비즘과 쿠틉의 전투적 이슬람주의의 결합물이다. 탈레반의 구성원들은 아프간 전쟁 때 사우디가 후원한 국경지대 난민촌의 이슬람학교 마드라스에서 쿠틉의 후예를 스승으로 하여 와하비즘에 경도된 이슬람을 배웠다.

‘아프간 전쟁-알카에다 결성-탈레반 정권 수립-9·11 테러-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라크 내전-아랍의 봄-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 수립과 실각-시리아 내전과 이라크 내전의 연동화-이슬람국가(IS) 선포’는 현대 이슬람주의 지하드 세력이 걸어온 굵직한 길이다.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 사후에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무슬림의 세계적 공동체인 칼리프 국가를 자칭하는 IS의 탄생은 미국 등 서방과 중동의 집권세력이 초대한 사건이다.

현재 미국 등 연합국과 IS의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IS 탄생의 근원인 사우디의 사막과 이집트의 감옥 현실이 과거나 지금이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상황은 IS의 풍부한 자양분을 말해준다.

지하드주의 세력 대 국제사회의 전쟁

와하비즘으로 통치되는 사우디의 현실은 IS 내에서 벌어지는 야만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사우디는 와하비즘에 기대 왕국을 유지하려 하고, 이를 여전히 수출하고 있다. 이집트의 감옥 역시 건재하다. 이집트의 군부로 대표되는 권위주의적 세속주의 세력은 온건한 이슬람주의 정권을 실험하던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를 쿠데타로 몰아냈다. 그리고 이들을 다시 감옥에서 전투적인 지하드주의자로 거듭나게 하고 있다. 쿠틉 이후 이집트 감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촉발된 중동전쟁은 이제 70년이 되어가고 있다. 아랍 국가 대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시작된 중동전쟁은 이제 IS로 대표되는 이슬람주의의 지하드주의 세력 대 국제사회의 전쟁으로 바뀌었다.

중동전쟁이 이렇게 전개되는 동안 중동의 지정학적 정세는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이스라엘은 부동의 강자로 자리잡았다. 중동전쟁의 근원이던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건설은 더욱 요원해지고, 이제 아랍 등 이슬람 국가들의 관심사에서 벗어났다. 이라크·시리아·리비아·레바논 등 아랍의 세속주의 정권은 무너졌고, 그 국가들 자체가 거의 붕괴 상태가 됐다. 사우디 등 걸프 지역의 보수적인 왕정들은 돈으로 정권을 지탱하고 있다. 이 국가들은 이제 전략적 가치가 감소하는 석유와 그 가격에 언제까지 매달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슬람혁명에 성공한 이란은 이라크와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걸프 지역에서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 이는 사우디 대 이란이라는 중동 지역의 패권 다툼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패권 다툼에서 사우디는 시간이 갈수록 불리한 위치에 처하고 있다. 사우디는 오직 석유에 기댄 돈의 힘만으로 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특히 사우디는 자신들의 돈으로 키운 수니파 지하드 세력, 바로 IS으로부터 국가의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다. 사우디뿐만 아니라 이슬람 세계 수니파 진영의 주축국인 이집트와 파키스탄 등은 급진적 이슬람주의 세력이 가장 극성한 나라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중동에 대한 의지와 힘을 상실하고 있다. 미국이 중동에 개입하던 최우선 가치였던 석유는 이제 미국 내의 셰일 에너지 개발로 그 전략적 가치가 희석되고 있다. 석유는 물론 당분간 현대 산업의 최고 전략자원으로 남겠으나, 이제는 더 이상 석유자원 고갈론이 나돌지 않고 있다. 6월과 8월 미국의 석유 및 석유 연관 액화 추출물(에탄과 프로판 등) 생산량이 하루 약 1150만 배럴로, 세계 1위 산유국인 사우디와 거의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가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이 다음달이면 사우디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산유국 자리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동에 개입할 힘도 잃었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대중동 정책의 최대 실패였을 뿐만 아니라, 힘의 한계도 보여줬다. 이라크라는 한 나라를 평정하는 데는 적어도 60만 명 정도의 병력을 최대한 가동해서 10년 이상 주둔하며 안정화해야 함을 보여줬다. 미국은 그럴 힘이 이제 없다. 이는 IS와의 전쟁에 지상군 파견을 미리부터 선 그으며 공습에만 의지하는 현실이 잘 보여준다.

미국이 중동에 개입할 의지와 힘을 점점 잃어가는 현실은 전후 중동 정세를 전인미답으로 이끌고 있다. 무엇보다도 IS를 누가 상대할 것인가? 지금 미국 주도로 IS 공습이 진행되고 있으나, 이는 신을 신고 가려운 발을 긁는 격화소양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게릴라형 무장집단인 IS가 공습으로만 와해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IS의 무장력을 직접 제압할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 정부군도, 시리아 정부군도, 사우디도, 이란도, 터키도 그럴 의지와 역량이 없다. 고작 시리아 내의 온건파 반군세력이나 쿠르드족 반군을 훈련하고 지원해서 IS를 직접 상대시키겠다는 복안 정도다. 그들에게 그런 역량을 갖추게 할 시간도 모자라고, 그럴 역량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아라비아 사막과 이집트 감옥

중동전쟁은 진행 중이다. 더욱 격화되고 있고, 이 연재물의 제목처럼 어쩌면 중동대전으로 넘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진행 중인 사건을 평가하는 것은 평자에게 고통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중동전쟁의 한 주체인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을 배태한 아라비아의 사막과 이집트의 감옥이 건재하는 한 중동전쟁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아라비아의 사막은 수구적인 중동의 현실이고, 이집트의 감옥은 이 지역의 억압적 정권을 상징한다. 이슬람 세계의 무슬림들이 이 수구적인 현실과 억압적 정권을 극복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지하드 세력과 중동전쟁을 실질적으로 마감하는 길이 될 것이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정의길의 중동대전 70년’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수고해주신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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