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여름 시리아 내전은 이라크와 연동돼, 이라크에 또다시 내전의 불씨를 흩날리고 있었다. 시리아 내전에서 한 세력이 핵심적 변수로 성장해갔다. 누스라전선이었다.
이라크 내 알카에다 세력인 이라크이슬람국가(ISI) 대원들이 2년 전 시리아에 잠입해 결성된 누스라전선은 급속히 세력을 확장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알카에다 연계 세력임을 철저히 숨겼다. 누스라전선은 ISI의 전신인 이라크알카에다(AQI)의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의 전략적 실패를 철저히 반성했다. 누스라전선 지도자 아부 모하마드 알골라니(혹은 알줄라니)는 “우리의 가치를 보여줄 것이다. 주민들과 잘 지낸 다음에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할 것이다”라고 조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이는 골라니 자신의 전략이기도 했고, 미군에 사살당한 오사마 빈라덴의 뒤를 이어 알카에다 지도자에 오른 아이만 알자와히리의 지침이기도 했다. 골라니는 엄격한 이슬람 계율 강제가 주민들의 반발을 불렀던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핏줄이 뛰는 한 존재할 것이다”대표적 반정부 무장세력인 자유시리아군(FSA)은 일관된 지휘체계가 없는 각 조직의 연합체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반정부 세력 지도자들도 터키 등 외국에 머물렀다. 그들은 ‘호텔 참호에 있는 지도자’로 불렸다. 누스라전선은 달랐다. 지도자나 대원들이나 내전 현장에서 전투력과 헌신성에서 다른 반정부 세력을 압도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내전 초기 누스라전선은 친서방 세속주의 반정부 세력과 연대를 구축했다. 반군 지역에서 엄격한 계율을 강제하지 않았고, 오히려 주민들을 위한 사회서비스 제공에 치중했다. 밀가루 배급을 하는 한편 기독교도도 자신들의 공격 목표가 아님을 밝히며 수니파 이외 주민들에게도 저변을 넓혔다.
그해 말 미국은 누스라전선이 알카에다의 별칭일 뿐이라며 이들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이 조처는 역효과를 냈다. 시리아 전역에서 주민들은 “시리아에서 유일한 테러주의 세력은 아사드”라는 구호를 들고 행진했다. 수십 개의 반군 조직들은 “우리는 모두 누스라전선이다”라며 옹호했다. 해외 망명 중인 친서방 시리아 반정부 정치조직들도 미국의 테러리스트 규정을 비난했다. 2012~2013년 연말연시를 거치며 누스라전선은 동북부의 이들리브·알레포 등지에서 완전히 거점을 굳혔다.
시리아와 이라크 내전에서 나란히 질주하던 누스라전선과 ISI의 관계는 4월13일 ISI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육성 성명으로 새 국면에 들어섰다. 그는 누스라전선이 ISI에서 파생된 조직이며, 이제 두 조직을 다시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로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골라니는 즉각 이를 부인했지만, 중동 역내의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의 대개편이 시작되는 계기였다. 조직 통합은 시리아에 안착하던 누스라전선의 입지를 흔들 것이 분명했다.
통합을 거부한 누스라전선 지도자 골라니는 알카에다 수장 자와히리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자와히리는 두 달 만인 6월 중순에야 반응을 보였다. 가 입수한 이 분쟁에 관한 그의 편지를 보면, 그는 바그다디에게 이라크에 집중하고, 골라니도 시리아에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누스라전선은 알카에다의 시리아 공식 조직임을 확인했다. 자와히리는 바그다디가 “우리와 상의도 없이 통합을 발표함으로써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질책했다. 바그다디는 즉각 이를 거부하는 육성 성명을 발표했다. “ISIL은 우리의 핏줄이 뛰고 눈이 깜박이는 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알카에다의 권위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은 처음이었다. 바그다디 쪽은 이라크와 시리아를 구분하는 것은 제국주의 세력이 그어놓은 국경선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바그다디 쪽의 이런 논리는 내전 중인 시리아와 이라크에 몰려든 국제 지하디스트 세력들에게 더 공명을 줬다. 1920년대 말 무슬림형제단 창설 이래 현대 이슬람주의 세력의 궁극적 목적은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모든 무슬림의 공동체, 칼리프 국가의 재건이었다. 시리아와 이라크 내전에 참전한 이슬람주의 전사들은 시리아의 민주화나 아사드 정권의 타도보다는 그런 더 큰 ‘이상’을 품고 있었다. 중동의 한복판인 이라크와 시리아 영토에 걸친 ISIL은 그런 이상을 품은 이들에게 더 호소력을 가졌다.
탈레반 효과는 스노볼 효과로 이어져시리아 동북지역에서 거점을 장악한 누스라전선은 곧 분열됐다. 외국 출신의 전사들은 대부분 바그다디의 칙령을 따라 ISIL에 가담했다. 누스라전선은 자연스럽게 시리아 출신의 조직으로 변했고, ISIL은 국제적 조직의 모습을 갖춰갔다.
알카에다 본부의 대응이 늦은 것도 한몫했다. 누스라전선과 ISIL의 분규에 좌고우면하던 5월 ISIL은 누스라전선의 본거지 도시인 락까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누스라전선이 앞서 3월에 점령했던 인구 22만 명의 락까는 시리아의 반정부 세력이 점령한 유일한 주도였다. 락까를 점령하자마자 이 도시를 국가 건설과 운영의 모태로 만들 의지를 적극적으로 과시했다. ISIL이 락까를 점령하고 나서야 알카에다 본부는 통합에 반대하는 명령을 내렸으나,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ISIL은 락까에서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의한 통치를 공식화하고, 이에 반대하는 이에게 가혹한 처벌을 가했다. ISIL은 철저히 수니파 근본주의 통치를 통해 수니파 주민과 외국 출신 전사들의 지지를 모아내는 전략을 썼다. 이슬람 내 다른 종파인 시아파 및 기독교 등 소수 종교인들에게 개종을 요구해,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이교도 세금을 내거나 처형하는 선택을 강요했다. 이 지역의 다수인 수니파 부족 세력들은 첨예해지는 종파 분쟁 앞에서 ISIL 쪽으로 지지와 결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하드와 순교라는 신념을 가지고 시리아와 이라크에 온 외국 출신 대원 및 강경파 세력들도 엄격한 샤리아 통치를 펼치는 ISIL에 자연스럽게 끌렸다. 그들은 “샤리아 통치와 무슬림의 국가 건설을 위해 싸우고 있다”며 “ISIL이 펼치는 샤리아 통치를 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싸우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며 ISIL 쪽으로 가담했다.
ISIL이 락까를 근거지로 통치 기반을 굳히면서 ‘탈레반’ 효과와 ‘스노볼’ 효과가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오랜 전쟁에 지친 주민들은 탈레반의 집권을 수용했다. 전쟁과 무질서보다는, 가혹하지만 질서와 평화를 가져다준 탈레반의 집권이 더 좋다는 것이었다. ISIL의 점령 이후 락까에는 주민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시리아의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내전을 피하려는 이들이 락까에서 생업을 재건하려고 했다.
아프간에서 탈레반은 무장군벌 통치에 비해 가볍고 공정한 세금을 부과하는 한편 엄격하지만 일관성 있는 법 집행을 했다. ISIL도 락까에서 상점을 상대로 두 달에 20달러 정도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이는 아사드 정권 관리들에게 주는 뇌물보다 적은 금액이라고 는 보도했다.
탈레반 효과는 스노볼 효과로 이어졌다. 즉, 눈덩이 효과다. ISIL의 세력이 커지자 주변 세력들의 가세가 가속화됐다. ISIL은 정교한 전략·전술로 스노볼 효과를 극대화했다. 우선 자신들의 전투와 진군 지역을 쉽게 이길 수 있거나 텅 빈 공간으로 선정했다. 적이 미약하거나 인구가 희박한 수니파 거주 지역을 휩쓸면서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이 광대함을 선전했다. 충격과 공포에 바탕한 효과적인 선전활동을 펼쳤다. 점령한 지역에서 반대 세력에 대한 참수 등 처형 장면을 적극적으로 전파해, 적의 저항 의지를 무력화했다.
ISIL의 약진은 시리아 정부군과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진행됐다. 시리아 정부군은 반군이 장악한 다른 도시와 달리 락까에는 공습을 하지 않았다. 이는 아사드 정권이 수감 중인 이슬람주의 세력 석방으로 이슬람주의 무장반군 세력을 키웠다는 주장과 맞물렸다. 아사드 정권을 반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 등 수니파 국가들의 수니파 세력 지원과도 관계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지역 수니파 보수왕정들은 시리아 반정부 세력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고, 터키는 그 통로였다. 터키가 개방한 시리아와의 국경 지역을 통해 시리아로 들어간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은 대부분 누스라전선에 가담했고, 나중에 ISIL에 가담했다.
2014년 2월3일 알카에다는 ISIL을 자신들의 조직에서 완전히 파문했고, ISIL은 알카에다가 지하드의 참된 길에서 이탈했다며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ISIL은 이때부터 이라크 쪽으로 군사적 공세를 확대했다. 6월 들어 이라크의 두 번째 최대 도시 모술에 대한 공세를 감행하면서, 갑자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음과 함께 중동 정세의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이는 약 한 달 뒤 ‘이슬람국가’(IS)라는 칼리프 국가 선포의 예고였다. 지난 6월5~29일은 IS가 실질적으로 형성된 시간이다. ‘국가’, 그것도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모든 무슬림의 ‘칼리프 국가’의 참칭이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뤄졌다. 이 기간에 IS는 시리아 동북부와 이라크 북부 지역을 장악하고 ‘영토’로 선포했다.
6월 대공세 전에는 안정적 기반이라고는 현재 IS의 수도라고 하는 시리아 동북부의 락까에 불과했다. 락까도 ISIL에서 파생된 누스라전선이 확보했던 지역이었다. ISIL은 2013년 12월 전까지는 그 활동 무대가 누스라전선이 닦아놓은 시리아 동북부 지역이었다. 이마저도 누스라전선 등 다른 세력과 각축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12월부터 ISIL은 이라크 쪽 영내로 활동 무대를 넓혔다. 이라크 내전에서 수니파의 거점이던 팔루자와 라마디 등 안바르주 지역의 일부를 2014년 1월 점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도 낮에는 정부군 등 다른 세력이 득세하고 밤에만 그들이 득세하는 전형적인 게릴라 스타일 점령이었다.
누리 알말리키 정부는 곧 반격 공세를 준비했다. 이때까지도 많은 수니파 지도자들은 말리키 정부의 소탕작전에 지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말리키 총리의 종파적 발언이 불을 질렀다. 말리키는 안바르주에서 벌어지는 수니파 반군 세력에 대한 정부군의 반격 공세를 “후세인 추종자와 야지드 추종자 사이의 전쟁”이라고 묘사했다.
국제사회에 태풍의 눈으로 일약 등장후세인은 시아파의 원조이고, 야지드는 후세인을 패퇴시킨 우마이야 왕조의 2대 칼리프다. 둘 사이의 전쟁은 이슬람에서 수니파와 시아파가 갈리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 발언은 안바르주 내의 모든 수니파를 격동시키며 일거에 반말리키 전선으로 뭉치게 했다. 안바르주에서 말리키 정부의 반격 공세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결과 이라크 내 수니파 본거지에서 ISIL의 재기 발판을 확실히 마련해줬다.
시리아 동북부에서도 기반을 강화한 ISIL은 드디어 6월5일 사마라를 전격적으로 공격해 점령하면서 대공세를 시작했다. 다음날인 6일에는 이라크의 모술도 공격해 일부를 점령하면서 국제사회에 태풍의 눈으로 일약 등장했다. 사흘 뒤인 9일 밤 정부군은 모술에서 퇴각하며 사실상 패주했고, 10일 모술은 함락됐다. 그 뒤부터 ISIL 대원들은 바그다드 쪽으로 무인지경으로 진군하며 영역을 확장했다.
사마라와 모술을 함락할 때 ISIL의 병력은 많아야 2천~3천 명으로 추정된다. 1천 명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주요 도시들이 이들에게 맥없이 넘어간 것은 이라크 정부군의 자멸적 붕괴가 원인이다. 이라크 정부군 지휘관들의 도주 혹은 전향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모술, 티크리트, 키르쿠크의 이라크 정부군 장군들은 국가로서 작동을 못하는 이라크 정부를 위해 애초부터 싸우길 원치 않았다고 은 보도했다. 사담 후세인의 바트당 출신인 이 지휘관들은 ISIL이 진군하자 가장 먼저 도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라크 정부군의 붕괴에는 확실히 사담 후세인 시절의 장교와 병사들의 태업이 작동했다. ISIL은 바그다디가 지도자로 올라선 뒤부터 사담 후세인 치하의 군사 및 정보장교 등 바트당 세력을 흡수하면서 모든 수니파와의 연대 기반을 마련한 상황이었다. 이라크 내 바트당 지하세력인 나끄슈반디군뿐만 아니라 수니파 부족 민병대도 ISIL의 진군 지역에서 봉기해서 도왔다. 한때 이라크에서 ISIL의 축출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안바르주 내 친서방 수니파 부족 세력의 연대인 ‘어웨이크닝(각성) 위원회’와 그 민병대도 봉기에 참가했다.
6월15일 티크리트 탈환을 위한 정부군 공세에 동원된 공격 헬기는 불과 1대였다. 이라크의 한 전직 장관은 “정말로 초현실적이었다”며 “도대체 이라크 정부가 최근 몇 년 동안 구입한 140대의 헬기는 어디로 간 것이냐”고 한탄했다. ISIL은 나중에 블랙호크 헬기까지 동원했다. 나머지 139대의 헬기는 분실했거나, 애초부터 구매하지도 않았다. 자발적으로 전투에 나선 시아파 민병대도 집으로 돌아왔다. 굶주리고, 자신의 돈으로 총과 탄약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알카에다, 탈레반 정부도 뛰어넘는6월29일 ISIL 지도자 바그다디는 IS를 선포했다. 영국보다 더 큰 영토, 모술 중앙은행에서 확보한 5억달러의 현금과 최소한 매달 1200만달러의 세금, 석유 밀매를 토대로 한 약 20억달러의 자산, 정부군이 버리고 간 탱크와 헬기, 장갑차 등 첨단 미군 장비, 자신들의 영토로 밀려드는 외국의 이슬람주의 전사들이 IS의 기반이다. 이는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네트워크 조직인 알카에다, 아프간 주민들의 정권에 그친 탈레반 정부를 넘어서는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신기원이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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