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보자. 동서로는 태평양 연안의 필리핀 민다나오섬부터 북아프리카의 모리타니 등 대서양 연안까지, 남북으로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중국의 신장웨이우얼 지역까지가 지구상의 이슬람 세계다.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로 구성된 구대륙의 중앙을 관통하는 ‘이슬람 벨트’라고도 부른다.
냉전과 함께 시작해 냉전 뒤 열전 양상
그리고 이 지도에 분쟁지를 표시해보자. 동쪽으로부터는 민다나오의 모로해방전선 등 이슬람반군과 필리핀 정부군의 분쟁에서부터 시작해 서쪽 아프리카 대서양 연안 모리타니의 알카에다 세력과 이곳에 파견된 미군 특수부대와 모리타니 정부군의 전투까지, 남쪽에서부터는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 등 알카에다 연계 이슬람반군과 정부군의 내전에서부터 북쪽 중국 신장웨이우얼의 이슬람 분리독립 세력의 테러까지, 이슬람 세계는 동서남북 끝단에서부터 중앙까지 각종 분쟁으로 점철돼 있다. 장대한 이슬람 벨트 지대는 분쟁지역과 동의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주도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의 격돌을 우리는 ‘냉전’으로 불렀다. ‘차가운 전쟁’이라는 말이 뜻하는 것처럼, 냉전은 포화를 주고받지 않았을 뿐 사실상 상대의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세계적 차원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결국 소련은 이 냉전에 패해 붕괴됐다. 그럼 후세 역사가들은 2차 대전 이후 이슬람 지역에서 들끓고 있는 분쟁을 나중에 어떻게 평가할까? 이슬람 세계의 분쟁은 냉전과 비슷한 시기에 함께 시작돼, 냉전이 끝난 뒤 오히려 더 열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슬람 지역의 분쟁은 2차 대전 같은 단일한 전선의 전면전은 아니나, 국지적 차원의 국제전부터 시작해 내전과 내란, 소요와 테러 등 모든 양상의 분쟁을 안고 있다.
먼저, 전쟁 수준의 분쟁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시리아 내전, 소말리아 내전, 말리 내전 등이다. 아프간 전쟁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며, 미국이 건국 이후 개입한 가장 긴 전쟁이 됐다. 시리아 내전의 경우 발발 2년 만에 현재 화학무기 자행 논란이 일면서, 12만 명이 벌써 사망하고 200만 명 이상이 인접국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425만 명이 국내 난민이 됐다. 인구 2100만 명 중 거의 30% 가까이가 난민이 된 셈이다. 유엔은 그 난민 중 4분의 3이 11살 이하의 어린이인 것으로 추정한다. 20년 이상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는 소말리아 내전은 그 여파로 아덴만 연안의 해적 사태를 만들어냈는데 최근에는 케냐로도 불똥을 튀겼다. 소말리아 내전에 군을 파병한 케냐에 보복하려고, 소말리아의 이슬람반군인 알샤바브가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대형 쇼핑몰에서 전투를 벌여 2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소말리아 내전은 프랑스가 파병한 말리 내전과 함께 사하라 이남 ‘블랙 아프리카’에서도 이슬람 분쟁을 확산시키는 거점이 되고 있다. 이 전쟁들은 모두 미국 등 서방이나 인근 국가들이 파병해서 국제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내란 상태의 분쟁은 헤아리기도 힘들다. 대표적인 이라크 내란을 시작으로 리비아 내란, 예멘 내란, 파키스칸 변경 지역 내란 등이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도 보코하람이라는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과 정부군이 내란 상태고, 아시아의 필리핀 민다나오섬에도 이슬람 반군이 있다. 터키, 이라크, 시리아, 이란 접경 지대에 걸쳐 있는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분쟁도 있고. 러시아의 체첸, 다게스탄, 조지아 등 갑카스 지역에 있는 자치공화국들도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전쟁과 내전, 내란, 소요가 계속되고 있다. 서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 나라인 서사하라·모리타니·시에라리온 등도 몇십 년간 전쟁과 내전이 반복되면서 내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속주의 정권 실패 뒤 이슬람주의 득세소요와 시위는 이슬람 지역 국가 전체를 덮고 있는 일상이다. 특히 2010년 튀니지에서 한 노점상의 분신으로 촉발된 중동의 민주화운동인 ‘아랍의 봄’은 기득권 세력들의 탄압으로 ‘피의 여름’을 지나 ‘반동의 겨울’로 치달으면서,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에 소요와 시위를 격화시키고 있다. 아랍의 봄의 최대 성과인 이집트의 첫 민선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가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뒤 이에 항의하는 시민 2천여 명이 군경의 무력 진압으로 사망했다. 중동과 이슬람 지역의 대표 국가 이집트에 내란과 내전의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아랍의 봄의 진원지인 튀니지에서도 최근 반정부 소요로 이슬람주의 민선 정부가 하야를 발표해야 했다.
현대 이슬람 분쟁의 근원지인 팔레스타인의 가자와 서안 지구는 이스라엘에 의해 봉쇄된 채 전쟁과 내란, 소요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분쟁의 부산물인 레바논 분쟁도 종파와 민족 사이의 내전 상태는 잠복기로 들어갔으나, 여전히 내란 상태를 못 벗어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슬람권 분쟁의 대명사는 테러다. 미국의 국가대테러센터 2011년 테러리즘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에 70개 국가에서 1만 건 이상의 테러가 발생해 4만5천여 명의 희생자가 나왔고, 이 중 1만2500명이 사망했다. 테러 공격 발생 상위 15위 국가 중 아프간(2872건), 이라크(2265건)가 절반을 차지한다. 파키스탄(1436건), 인도(673건), 소말리아(614건), 콜롬비아(424건), 타이(305건), 러시아(238건), 이스라엘(189건), 나이지리아(188건), 필리핀(158건), 예멘(99건), 터키(91건), 콩고(52건) 순이다. 콜롬비아만 제외하고는 전부 이슬람권이거나, 이슬람과 관련된 테러들이다. 사망자 수에서도 아프간(3353명), 이라크(3063명), 파키스탄(2033명) 등 상위 3개국이 70% 가까이를 차지한다. 북구의 평화로운 나라 노르웨이도 91명으로 14위에 올랐는데, 이들은 극우 기독교 백인 우월주의자가 유럽에서 이슬람을 소탕하겠다고 벌인 단 한 건의 극악한 테러로 인해 발생한 테러의 희생자들이다. 이슬람과 관련된 테러다. 결론적으로 현재 전세계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테러의 95%는 이슬람권에서 일어났거나, 이슬람과 관련된 것이다.
현대 이슬람권 분쟁은 크게 세 시기로 성격 구분이 되면서 악화돼왔다. 1기는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 중동 아랍 국가들의 네 차례 중동전쟁을 거치면서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시작된 1차 아프간 전쟁까지다. 이 시기를 주도한 건 중동 아랍 국가들의 사회주의 성향 민족주의 세력이다.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성향의 군부가 정권을 잡고,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끌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테러를 주 무기로 이스라엘과 서방에 맞서 투쟁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네 차례의 전쟁에 모두 완패하면서, 이들 세속주의 성향의 정권과 투쟁세력의 영향력은 이슬람권에서 약화된다. 사회주의 성향의 민족주의 세력은 초기의 개혁성을 상실하고 부패한 세속주의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되면서, 이슬람권 대중의 밑바닥에서는 이슬람주의 세력이 영향력과 투쟁력을 확보하기 시작한다.
로마제국에 가한 게르만족 압력 같은1979년 아프간 전쟁과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이슬람주의의 본격적인 대두를 알리는 무대였다. 2기는 이 아프간 전쟁부터 시작해 이슬람주의 무장세력 테러의 절정인 2001년 9·11 테러까지다. 특히 아프간 전쟁은 현대 이슬람권 분쟁의 분수령이자, 2차 대전 이후 국제 질서인 냉전과 미소 양극 체제를 무너뜨린 중요 요인이었다. 이 전쟁은 소련 붕괴의 한 단초가 됐고, 아프간으로 몰려든 이슬람주의 전사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이슬람주의 무장투쟁의 첨병이 됐다. 미국은 아프간에서 소련을 패퇴시키려고 지원했던 이슬람 무장세력으로부터 나중에 9·11 테러까지 당하며 냉전 이후 자신들의 안보와 국익을 위협하는 최대 세력을 양성하는 결과를 얻는다. 1차 아프간 전쟁 이후에도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촉발된 걸프전, 소련의 붕괴 뒤 중앙아시아 지역 이슬람권 자치공화국들에서 벌어진 체첸 전쟁 등 포스트 소비에트 분쟁, 보스니아 내전 등 유고 분쟁, 알제리 내전을 거치면서 이슬람주의와 그 무장세력들은 이슬람권 대중 사이로 폭발적으로 확산된다. 이는 결국 9·11 테러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귀결된다.
3기는 9·11 테러부터 현재까지 이슬람주의 확산에 맞서 서방과 이슬람권의 세속주의 세력들의 전면적 투쟁의 시기다. 미국은 9·11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알카에다 세력과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은거해 있던 아프간을 침공하고, 이라크까지 침공하는 ‘테러와의 전쟁’을 전 이슬람권으로 확산시켰다. 이라크 전쟁과 아랍의 봄을 거치면서, 이슬람권 분쟁은 이슬람주의 대 세속주의의 분쟁, 이슬람 대 기독교 등 타 종교와의 종교 분쟁, 수니파 대 시아파 등 이슬람 내부의 종파 분쟁, 아랍 대 이스라엘 및 서방의 반외세 분쟁, 독재정권 등 권위주의 세력 대 민중의 민주화 투쟁, 다수 민족 대 소수 민족의 민족 분쟁이라는 6대 분쟁이 뒤섞이는 악성 분쟁으로 격화됐다. 현재의 시리아 내전은 이 6대 분쟁이 모두 혼합된 해답 없는 대표적 분쟁으로 치달았다.
모든 분쟁의 근본적 원인은 결국 경제적 문제고, 이슬람권 분쟁의 배경은 이 지역의 저개발이다. 저개발의 원인과 해법을 놓고 벌이는 갈등이 결국 이슬람권 분쟁이라 할 수 있다. 이슬람권 분쟁을 낳은 저개발의 배경이자 악순환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증폭된다. 첫째, 이슬람권이 지구상의 건조지대이자, 건조화가 현재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구대륙의 사막은 모두 이슬람권에 위치해 있고, 사막화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슬람권의 유일한 자원이라 할 수 있는 석유는 오히려 이슬람권에 대한 강대국의 착취를 끌어들였을 뿐이고, 대다수 이슬람권 대중은 척박한 환경의 희생양이 됐다.
둘째, 환경과 자원은 척박한 반면 이슬람권은 가장 역동적인 인구 성장을 보이고 있다. 방글라데시·이집트·인도네시아·나이지리아·파키스탄·터키는 1950년 2억4200만 명의 인구를 가졌으나, 2009년에는 8억8600만 명으로 3배나 늘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성장하는 48개 국가 중 28개 국가가 무슬림이 다수이거나 인구 중 무슬림이 33% 이상의 소수인 국가들이다. 이슬람권 국가는 젊은 층이 가장 많은 국가다. 2010년 1·2월호에 실린 ‘새로운 인구폭탄’이라는 글은 이 점을 지적하며, 무슬림 국가들의 역동적인 인구 증가는 서방과 동북아시아 국가의 고령화와 맞물려 21세기의 재앙이 되거나 축복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먹고살 것이 없는 이슬람권 국가에서 들끓는 혈기방장한 젊은 인구층들의 에너지가 지금의 이슬람권 분쟁과 이슬람주의 확산의 한 배경이다. 폭발하는 무슬림 젊은 층 인구는 과거 로마제국에 가한 게르만족의 압력과 같은 것이다. 로마는 게르만족에 의해 한 차례의 전면전으로 붕괴되지 않았다. 지금 이슬람권 분쟁에서 보이는 국지적 전쟁과 소요, 유민, 난민들에게 장기적으로 노출되며 넘어졌다.
‘비대칭적 장기 국제전’의 속살1948년 1차 중동전쟁 이후 지금까지 이슬람권 분쟁을 일관된 성격의 분쟁이라고 보면, ‘비대칭적 장기 국제전’이라고 부를 만하다. 미국이 스스로 말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비대칭전의 한 표현이다. 미국에서는 이슬람권에서 벌어지는 테러 등에 대한 대응을 ‘롱 워’(Long War·장기전)라고도 말한다.
이 ‘비대칭적 장기 국제전’ 혹은 ‘롱 워’의 속살을 본격적으로 보려면, 먼저 1979년 아프간으로 시계를 돌려야 한다. 이때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비대칭 장기 국제전을 본격화한 이슬람주의, 특히 이슬람 무장세력을 전세계로 퍼트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1979년 아프간으로 떠나보자.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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