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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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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라는 무소불위의 무기



여권 없이 국경을 넘는 ‘집시’ 르네,

100% 히치하이킹으로 북미를 종단한 나탈리와 함께한 나날들
등록 2010-11-17 15:54 수정 2020-05-03 04:26

베네수엘라의 아름다운 바다와 산에서 3개월을 보내고 콜롬비아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두번째로 찾은 대도시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콜롬비아의 작은 유럽’ 카르타헤나(Cartagena)였다.
카르타헤나에서 가려고 했던 플라야블랑카(Playa Blanca)는 ‘하얀 해변’이라는 뜻으로, 콜롬비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할 정도로 완벽한 바다였다. 보통 배를 타고 가는데 관광객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비쌌다. 대신 우리는 그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돈으로 갈 수 있는 루트를 동네 사람을 통해 알아냈다. 버스를 타고 큰 시장까지 나가서 스티로폼으로 만든 요금 몇백원짜리 허접한 배를 타고 100m가 채 안 되는 바닷길을 건넌 뒤 히치하이킹을 하면 되었다. 물론 차가 많이 다니는 곳이 아니므로 운이 좋아야 1시간 안에 차를 잡아 탈 수 있었다. 우리는 약간의 돈을 내고 트럭을 얻어 타고 마지막 마을에 도착해서 30분 정도 걸었다. 비포장도로에 먼지가 뿌옇게 앉은 키 작은 나무들만 무성한 길이었다. 이렇게 오는 데만 거의 하루가 걸렸다. 언제나처럼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바람에 시간을 많이 낭비했지만, 배를 타고 왔다면 보지 못했을 주변의 작은 마을들을 보았고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도 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특별했다. 어차피 우리에게 풍족한 것은 시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콜롬비아 해변에서 커피를 끓이는 지(왼쪽)와 나탈리. 이들은 아침이면 그곳의 어부들과 음식을 나눴다.지와 다리오 제공

콜롬비아 해변에서 커피를 끓이는 지(왼쪽)와 나탈리. 이들은 아침이면 그곳의 어부들과 음식을 나눴다.지와 다리오 제공

그곳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왕년의 히피 나탈리와 브라질에서 온 르네를 만나 일주일을 함께 지냈다. 두 번 불을 지피지 않아도 되도록 모든 일용할 양식을 함께 만들어 나누었고, 자신이 아는 작은 것들을 서로에게 가르치고 배웠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알고 있는 손 매듭 패턴을 르네에게 알려주었고, 르네는 다리오에게 망치로 두드려서 철사를 구부려 만드는 장신구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나탈리에게 손뜨개질하는 것을 가르쳐주었고, 나탈리는 북미와 알래스카의 여러 아름다운 장소를 말해주었다. 나탈리는 나보다 나이도 많고 여행 경험도 훨씬 많았다. 그녀는 알래스카에서 멕시코까지 북미를 종단했는데 100% 히치하이킹으로 가능하다며 북미에서 먹힐 수 있는 히치하이킹 기술을 전수해주었다.

르네는 3년째 남미를 여행 중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집시였다. 여권도 없었고 은행계좌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남미의 수많은 국경을 건너다녔다. 국경을 건널 때 여권이 없다고 하면 돈을 달라고 하고 돈도 없다고 하면 몇 시간 기다리게 하고 겁을 주지만 그는 언제나 풀려났다. 남미의 부패한 경찰들에게는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돈도 없다니 그들에게는 실속이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브라질 히피들은 늘 이런 식으로 대책 없는 여행을 했다. 그들은 법에 저촉받지 않는 집시고 그들이 가진 최대 무기는 ‘무소유’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그중 우리가 가장 좋아한 것은 콜롬비아에서 흔한 콩인 ‘렌틀’로 만든 요리였는데, 불을 지펴 만든 요리는 언제나 그렇듯 가스로 요리한 것과는 깊이가 다른 맛을 냈다. 우리의 아침 식사는 저녁보다도 훨씬 풍성했다. 0.5kg 정도 되는 밀가루로 인도식 빵 ‘차파티’를 만들어서 갖고 다니던 천연 꿀과 함께 먹었다. 차파티를 지나가는 어부들과도 나누었고 아침 산책을 나온 해변가 숙소에 머무는 여행객 친구들과도 나누었다. 나눌 것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친구를 사귀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우리는 르네 덕분에 매일 밤 기타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다. 감미로운 브라질 억양의 포르투갈어로 부르는 그의 노래는 나에게 브라질에 대한 향수에 잠기게 했다. 우리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자연에서의 시간들은 나에게 좋은 명상과 창조적 에너지를 되찾아주었다. 거기다 이 좋은 친구들과 함께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지와 다리오 ‘배꼽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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