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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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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의 피비린내나는 기름

등록 2001-06-27 00:00 수정 2020-05-02 04:21

나이지리아에선 폭력적 유전개발 착취, 노르웨이에선 ‘선진적 활동’으로 천사의 얼굴

몇 개월 전에 필자는 네덜란드계의 한 학자와 함께 네덜란드사회 경제구조를 토론한 일이 있었다. 평소에 네덜란드의 복지시설과 각종 후생사업들을 상당히 동경했던 필자는 네덜란드 현실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자 그 교수의 얼굴에 갑자기 쓴웃음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자본주의가 인본주의적이라고요? 당신 혹시 쉘(Shell)이 뭔지 알아요? 쉘이 인간적인지 나이지리아사람들에게 먼저 물어나 보고 네덜란드 자본주의를 긍정하십시오. 수혜자에게야 인간적인 얼굴을 보이겠지만 피해자의 입장은 다르죠.”

네덜란드 자본주의가 인본적이라고?

그 교수와 이야기했던 당시에 쉘문제를 전혀 몰랐던 필자는 상당히 당황했지만, 나중에 노르웨이 환경운동가와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노르웨이 환경운동의 소식지 등을 자세히 접한 뒤에 쉘에 대한 많은 현지 지식인들의 극단적인 반발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의 로얄 더취 피트롤럼(Royal Dutch Petroleum: 지분 60%)과 영국의 쉘(The Shell Transport and Trading: 지분 40%)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대표적인 국제 에너지기업 쉘이, 어떤 이유로 수많은 북유럽 지성인의 공적(公敵)이 됐을까? 그 대답을, 쉘이 개발·이용하는 많은 유전(油田)들이 있고 쉘이 판매하는 석유의 14%가 생산되는 나이지리아의 비극적인 역사와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계 자본주의적 체제 속에서의 핵심부인 구미지역과 주변부의 불평등한 관계의 중심 사항이 주변부 자연자원의 불공평한 수출계약과 제3세계 독재정권에 대한 묵과와 후원이라면, 쉘과 나이지리아의 관계는 그 세계체제의 작동 논리의 교과서적인 실례이다. 쉘이 니제르(Niger)강 유역에서 유전개발을 시작한 것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이지리아가 독립을 쟁취한 1960년 이전부터이다. 영국 식민주의자들은 300여개의 종족을 인위적으로 통합하여 독립 뒤 종족들간의 내전을 이용하였으며, 수백년 동안의 유럽인의 흑인 노예매매와 자원약탈로 사회와 경제가 극도로 피폐해진 나이지리아 정부보다, 니제르강 유역의 유전개발에 이미 상당한 투자를 했던 세계 굴지의 기업 쉘은 좀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독립국 나이지리아 40여년의 역사에서 군부독재와 민간 관료·자본 위주의 과두 정치적 정권이 이미 몇번이나 교체되고, 약 300만명의 희생자를 낸 내란을 치르는 등 수없는 표면적인 변화를 겪었지만 전혀 변화되지 않은 것은 바로 쉘의 절대적인 영향력이다. 신식민주의의 전형으로 꼽히는 나이지리아경제에서 외화 수입의 80%가 석유 수출에서 나오고, 그 석유 수출량의 절반 이상을 쉘이 차지한다. 결국,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그 정권의 경제적 영향과 뒷바라지를 쉘이 책임져 주는 셈이다. 나이지리아 역대 최고 권력과 쉘의 공생관계는 상호 유익한 관계이다. 쉘은 40여년 동안 약 300억달러 상당의 나이지리아 석유를 서양 국가(주로 미국)에 판매했고, 나이지리아의 역대 정권은 석유 소득 이외에도 쉘이 수입해준 무기와 쉘의 돈과 해외에서의 정권 홍보의 혜택도 받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수어지교(水魚之交: 물과 물고기의 관계)로 보이지만, 이 핵심부의 기업과 주변부 정권의 밀월관계의 피해자는 언제나 주변부의 환경과 민중이다. 나이지리아와 쉘의 경우도 역시 다를 바 없다.

타의 추종 불허하는 환경파괴 실적

나이지리아에서 쉘의 유전 개발·운용을 가리켜, ‘생태적 인종주의’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쉘은 유럽의 근해인 북해에서의 유전개발과 관련된 환경파괴도 저질렀지만, 나이지리아에서의 환경파괴 실적(?)은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쉘은 세계 28개국에서 유전개발을 하고 있지만, 쉘 석유유출사건의 40%가량이 바로 나이지리아 니제르강 유역에 있다. 이와 같은 기형적인 사고율은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는 “흑인 나라, 우리 손아귀 밑의 나라에서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쉘 경영진의 인종주의적·신식민주의적 사고의 반영이라는 시각이 북유럽 지성계에서는 지배적이다.

석유 유출의 결과는, 니제르강의 유역·해안 주민들의 생태와 경제생활의 거의 완전한 파탄이었다. 근해의 탄화수소 오염 수준이 유럽 기준의 무려 360배, 미국 기준의 60배에 이르는, 고기도 해초도 다 죽어버린 ‘사해’(死海)가 되어버렸다. 대대로 어업에 종사해온 해변의 주민들은 소외된 실업자가 돼버렸는데 이는, 실업률이 이미 30%에 이르는 나이지리아에서 일종의 사형과 같다. ‘죽은 바다’뿐 아니라 쉘과 그 시녀로 전락한 매판적 정권은 유전개발에 필요한 일체의 땅을 거의 무보수로 주민으로부터 몰수해버렸다. 주권과 법질서가 지켜졌다면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주민들은 일거에 무산자·폐인이 되었다. 또한 석유와 같이 나오는 가스를 그대로 허공에서 태워버리는데, 미국에서 금지된 이 저급 악성 기술의 결과로, 주민들은 산성비를 맞으면서 커다란 가스 스토브와 같이 뜨거운 이상 환경 속에서 지옥과 같은 나날을 보낸다. 비옥했던 땅은 이미 황무지와 다름없어 농사가 제대로 되는 해가 거의 없어 주민들은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린다.

농업과 어업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해서 현대적인 고용의 기회를 주기는커녕 ‘분리 통치’(divide and rule)의 전술을 잘 익힌 쉘은 정치적인 배경이 강한 북부 출신들을 많이 고용하고 정권으로부터 차별을 받는 유전지역, 특히 니제르강 유역 주민들은 철저하게 따돌린다. 주민들의 반발과 저항 운동에 대한 쉘의 대응은, 식민지 시절을 연상케 하는 무력 진압이다. 식민지 시절 영국 총독부가 현지 건달들을 경찰로 고용한 데 비해 현재는 형식상 독립국인 나이지리아의 군·경찰을 일종의 용역깡패로 이용한다. 쉘의 돈을 받고 쉘이 공급해 주는 무기로 무장된 군의 ‘특무 부대’들은 1994년에만 약 2000명의 주민들을 살해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다. 쉘과 나이지리아 정권의 범행의 상징으로 남게 된 것은, “석유는 우리의 저주”는 명언을 남기고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나이지리아의 저명한 작가, 환경 투사, 저항 운동가였던 사로위와(Ken Saro-Wiwa)에 대한 사형 집행(1995년)이었다. 그해 유럽에서는 쉘의 폭력을 규탄하는 캠페인이 절정에 이르기도 했지만 이렇다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노르웨이 ‘주류 좌익’의 침묵

그뒤 북유럽 지성인, 환경운동가들 사이에 ‘쉘’의 이름은, “핵심부 기업의 제3세계에 대한 폭력적 착취”의 대명사처럼 됐다. 그린피스를 위시한 여러 환경단체들은, 쉘을 규탄하는 시위와 시설 점령 등의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쉘문제에 대한 노르웨이 ‘주류 좌익’인 집권여당 노동당과 주류 언론의 침묵이다. 물론, 정치인·언론인들의 손익 계산은 뻔하다. 노르웨이에서 700여개의 주유소를 운영하고 북해 유전 탐사 등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쉘은 노르웨이 지도층의 무시 못할 파트너다. 더군다나 노르웨이사회 분위기에 잘 편승해 간부직의 20% 이상을 여성에게 할당함으로써 남녀 평등에 앞장을 서주는 등 그 선진성(?)을 과시하기도 한다. 그외에도 문화사업 후원·자선 활동 등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노르웨이사회의 환심을 살 만한 이와 같은 ‘여유’를 과시하기 위한 재정적 기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제3세계의 파탄은 제1세계의 ‘선진성’의 기반을 제공해 주는 셈이 된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상실함으로써 사실상 국제주의의 원칙을 배신한 노르웨이의 ‘주류 좌익’을 여전히 진정한 진보주의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이러한 측면에서, 주로 ‘주류 좌익’에 속하는 유럽 각국 지도자들의 정상회담 때마다 극렬시위를 벌이는 젊은 좌익계 청년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의 폭력적인 시위 방식에는 물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지만, 그 행동의 주요 동기가 쉘과 같은 악덕 기업의 약탈의 지속을 가능케 만드는 ‘주류 좌익’인 지도부에 대한 실망과 자국이나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는 약한 존재를 괴롭혀도 된다는 기존 체제의 양심의 부재에 대한 허탈이기 때문이다.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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