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투어를 해 보는 게 어떨까?” “사진 콘테스트는 어때?”
2004년 10월, 취리히 북동쪽 끝 슈바멘딩겐 지역에서 ‘슈바멘딩겐 포럼’이 열렸다. 한 달에 한 번 지역 주민들이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든 모임이다. 이 모임에서는 슈바멘딩겐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역 투어’ ‘사진 콘테스트’ 등이 논의됐다. 이런 모임이 만들어진 까닭은 뭘까?
슈바멘딩겐은 취리히 북동쪽 끝에 있어 일종의 관문 구실을 한다. 1960년대에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유고 내전이 있던 1980년대에는 유고슬라비아에서, 1990년대에는 터키에서 이주민들이 대거 스위스로 들어와 슈바멘딩겐에 정착했다. 외국인 비율이 취리히시 전체(30%)에 비해 7%가량이나 높다. 하지만 한 번 들어온 외국인들은 금세 지역을 떠났다. ‘오래 살 곳’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 여겨졌다. 다양한 인종들 간의 이질감도 지역의 문제였다.
취리히에서 루체른과 베른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슈바멘딩겐 지역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 역시 지역 이미지가 나빠진 요인이다. 씽씽 달리는 자동차 소음이 슈바멘딩겐에서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슈바멘딩겐 주민자치회의 마가 부리 대표는 “슈바멘딩겐은 광장과 녹지가 많아서 실제로 살아보면 굉장히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포럼은 이런 슈바멘딩겐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없애는 방법을 찾기 위해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포럼이 만든 도시투어 아이디어는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1년에 네 번 슈바멘딩겐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도시 녹지 등을 코스별로 보여주는 행사를 조직했다. 매년 5월16일에는 슈바멘딩겐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화합하자는 의미의 ‘모자이크 데이’도 만들었다. 슈바멘딩겐 사진을 찍어 1등을 뽑는 사진 콘테스트도 열었다. 이때 대상을 받은 작품은 피부색이 다른 두 아이가 손을 꼭 잡고 있는 사진이었다. 화해와 다문화의 상징이다. 이렇게 지역 주민들이 만들어낸 행사가 언론을 타면서 슈바멘딩겐의 이미지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취리히 시청의 도시개발팀도 슈바멘딩겐을 눈여겨봤다. 슈바멘딩겐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주택협동조합이 지은 아파트가 많다는 점을 주목했다. 전체 아파트의 38.2%를 주택협동조합이 지었다. 이는 취리히시 전체(18%)의 두 배를 넘는 비율이다. 이렇게 주택협동조합이 많은 것은 1940년대 땅값이 싼 대신 녹지가 많은 이곳에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40년대 슈바멘딩겐을 ‘정원 도시’로 만들려고 했던 스위스의 1세대 도시계획가 알버트 스타이너의 도시계획과도 맞물려 있다. 많은 수의 주택협동조합은 결국 이 지역에서 자치 논의를 활성화하는 주춧돌이 됐다. 시는 이 점에 착안해 협동조합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많은 외국인과 고속도로 소음이 두드러진다는 점 말고도 슈바멘딩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아파트가 지은 지 오래돼 욕실과 주방은 구식이고, 침실도 다른 도시의 아파트에 비해 너무 작았다. 시는 주택협동조합 사람들과 의논해 이후 아파트를 지을 때 이런 단점을 보완할 방향에 대해 조언했다. 그 영향으로 2005년부터 슈바멘딩겐에는 더 크고 현대적 양식을 갖춘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슈바멘딩겐의 마텐호트 거리, 자틀렌 지역 등은 현대적인 분위기로 슈바멘딩겐의 외모를 바꿔가고 있다.
방음벽 공사 등은 시 예산 지원돈이 필요한 사업에는 시가 지원을 한다. 소음 배출구이던 고속도로에는 방음벽을 덮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2년 공사가 끝나면 ‘고속도로 소음’이 연상되는 슈바멘딩겐의 이미지가 바뀔 전망이다. 이 지역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마가 부리 대표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다 시의 지원으로 슈바멘딩겐의 이미지가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내년에도 도시 투어가 네 번 있을 예정입니다. 모두들 슈바멘딩겐으로 와보세요. 정말 살기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취리히(스위스)=글·사진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민주 “윤석열 기소 부정하며 조기대선은 하겠다는 국힘 한심”
‘내란의 밤’ 빗발친 전화 속 질문…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윤석열 충암고 동창’ 정재호 주중대사, 탄핵정국 속 이임식
‘윤석열 친구’ 선관위 사무총장도 ‘부정선거론’ 반박했다
서부지법, ‘윤석열 영장판사 탄핵집회 참석 주장’ 신평 고발
권영세 “‘공수처 굴종’ 검찰총장 사퇴하라”…국힘, 검찰 일제히 비판
“새해 벌 많이 받으세요”…국힘 외면하는 설 민심
‘뿔 달린 전광훈 현수막’ 소송…대법 “공인으로 감당해야 할 정도”
당진영덕고속도로서 28중 추돌…눈길 교통사고 잇따라
설 연휴 내일도 전국 많은 눈…중부 영하 10도 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