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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으로 행복해졌나요


세계를 돌아 되돌아온 서울의 주택·환경 문제… ‘서민층 주거 불안 부추긴 개발’의 참담한 성적표
등록 2009-02-06 16:35 수정 2020-05-03 04:25
여행의 종착지는 항상 출발점이다. ‘체험! 살기 좋은 대도시’ 기획으로, 지구 한 바퀴를 돌아온 끝은 이곳 한국 땅이다. 다섯 차례에 걸친 기획을 통해 우리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상대적으로 낙후한 슈바멘딩겐 주민들이 자발적 모임을 통해 마을 가꾸기에 나선 모습을 보았고, 싱가포르에서는 고아 출신의 카린이 화려한 콘도를 내집으로 마련한 과정을 들여다봤다. 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선 저소득층과 중산층, 고소득층이 섞여사는 ‘소셜 믹스’의 신주거지 개발을, 영국 런던 베드제드 마을에선 ‘똑똑한’ 에너지 저소비형 부엌을 들여다봤다. 결론을 정해놓지 않고 각 도시를 관찰한 기자들은 시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도시들의 장점을 발견하며 한편으로 부러워했다. 재미있는 점은 기자들이 소개한 개별 도시의 장점은 다양했지만, 주택과 환경 문제가 도시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는 것이다. 나의 콤플렉스는 타인의 장점으로 보이는 법. 서울이 직면한 주택과 환경문제가 그만큼 엄중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기획연재의 마지막으로 여행의 종착지, 한국의 도시 가운데 서울의 주택·환경 정책을 짚어봤다. 편집자

이명박 시장 시절 공공성을 강화한 재개발 사업으로 시작한 서울의 뉴타운은 결국 원주민만 내쫓고 아파트값 상승을 부추긴 ‘프랑켄슈타인’이 돼버렸다. 지난해 9월 헬기에서 바라본 길음 뉴타운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시장 시절 공공성을 강화한 재개발 사업으로 시작한 서울의 뉴타운은 결국 원주민만 내쫓고 아파트값 상승을 부추긴 ‘프랑켄슈타인’이 돼버렸다. 지난해 9월 헬기에서 바라본 길음 뉴타운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5~6년 사이 서울의 주택 정책의 핵심은 ‘무분별한 도시정비 사업을 막기 위한 광역재개발’이었다. 민간 중심으로 진행된 이전의 소규모 개발은 도로와 공원 등 기반시설을 고려하지 않은 난개발의 부작용을 낳았다. 이명박 전 시장에 의해 ‘뉴타운’으로 명명된 광역재개발 방식은 강남·북의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면서 난개발을 막고, 동시에 주거 환경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됐다. 이명박 시장의 재임 4년 동안 서울 26개 지구 2405만㎡가 뉴타운 지구로 지정됐다. 1973~2008년의 36년 동안 재개발지구로 지정된 1939만㎡보다 더 넓은 면적이다. 그렇다면 뉴타운 정책은 지금 어디에 와 있을까.

원주민은 어디로… 시도 인정한 실패

서울시가 1월 내놓은 ‘주거환경개선정책 종합점검 및 보완발전 방안’은 스스로가 내놓은 뉴타운 성적표다. 결론부터 말하면 결과는 참담하다. 시는 뉴타운 추진 과정에서 소형 저가 주택이 감소하고 원주민 재정착률도 저조했다며 전반적으로 서민층의 주거 불안을 부추겼다고 인정했다. 아파트 중심의 획일적인 개발도 문제였고, 재개발조합의 사무업무를 대행하는 정비업체의 난립도 막지 못했다. 결국은 건설업체들이 개발 과정에 개입해 조합과 부실한 정비업체를 실질적으로 조정했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시는 건설회사의 개입을 사실상 방치했다고 스스로 진단했다. 김효수 서울시 주택국장도 “(부작용을) 스스로 인정하기 쉽지 않았다”며 정책 실패를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6명의 생명을 앗아간 용산 도시환경 정비사업 지역의 참사가 서울시의 발표와 같은 달에 겹쳤다는 점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세입자들로서는 전국철거민연합(전철련)밖에 달리 ‘비빌 언덕’이 없었다는 지적은 귀기울여 들어볼 만하다. 남기문 민주노동당 용산위원회 부위원장은 “정당이나 시민단체 가운데 세입자 권리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곳은 거의 없었다”며 “세입자들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철련의 도움을 바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뒤늦게 저렴한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건설업체들의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행동이 말만큼 아름다울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개발의 공공성과 관련해서 주목을 받는 것이 서울시가 2006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장기임대전세주택 ‘시프트’ 아파트다. 시가 ‘중산층·실수요자를 위한 신개념 주택’으로 추진하는 시프트 아파트는 중산층을 대상으로 주변 전세 시세의 80% 수준에 최장 20년까지 전세를 놓는 주거 모델이다. 시프트는 국내 최초로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후분양제를 실시하는 등 부동산 시장에서 관이 공공성을 강화한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오세훈 시장도 “아파트는 ‘사는 것’이지만, 시프트는 ‘사는 곳’”이라며 “시프트를 통해 시민들이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시 주택 정책의 목표”라며 정책 추진에 강한 의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시는 지금까지 4631호의 시프트 주택을 공급했으며 올해 2909호를 추가 공급할 계획이다. 시는 1월29일 ‘주거복지종합실행계획’을 발표하면서 2018년까지 시프트 아파트 11만호를 공급하겠다고 의욕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오 시장이 내년 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할 경우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도시 공간의 공공성 강화와 관련해 서울시와 ‘개발이익’ 사이의 갈등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서울시는 지난 1월19일 ‘한강 공공성 회복 선언’을 했다. 오세훈 시장까지 직접 나서 밝힌 내용의 골자는 한강변에 초고층 건물을 허용하는 대신, 한강변에 위치한 재건축 단지가 공공용지나 기반시설로 전체 터의 25% 이상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한강변을 ‘선점’한 사익의 기득권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일반 시민들을 위한 수변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현실적인 타협의 산물이었다. 이에 대한 평가는 현실론과 이상론 사이에서 엇갈리지만, 도시 공간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의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슷한 절충은 세운상가 녹지축 조성 사업에서도 이뤄졌다. 시는 지난 1월7일 종묘와 퇴계로를 잇는 폭 90m, 길이 1km, 넓이 9만㎡의 거대한 녹지축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70m로 제한되던 건물 높이를 최대 122m로 높일 수 있게 한 대가였다. 쉽게 말해 ‘고층 건물 줄게, 녹지 다오’식이다. 이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결과적으로 개발업자들에게 대규모 이익을 넘겨주고, 도심 정체성도 망치는 사업”이라는 의견과 함께 “도심에 시민을 위한 녹지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타협”이라는 현실론도 만만찮다.

지난해 4월 완연한 봄을 맞아 서울 남산 산책길을 걷고 있는 시민들. 서울에 산이 많다는 건 축복이지만, 동네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중소 규모의 공원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지난해 4월 완연한 봄을 맞아 서울 남산 산책길을 걷고 있는 시민들. 서울에 산이 많다는 건 축복이지만, 동네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중소 규모의 공원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고층 건물 줄게, 녹지 다오’ 타협

서울 종로의 뒷골목 안 피맛길 개발 사업도 비슷한 예다. 지난해 서울시는 종로 일대 정비계획안을 승인했다. 선술집이 다닥다닥 이어진 피맛길의 일부가 사라지고 23~24층 높이의 고층 건물 건축을 허가하는 내용이었다. 서울시 내부에서는 “피맛길의 역사성을 고려해서 최대한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이런 입장이 사인의 개발이익을 가로막는 명분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공공공간 확보와 사익 보호라는 명분이 부딪힌 또 하나의 사례였다. 시는 대신 초고층 건물 저층 부분에 피맛길의 풍취를 남길 수 있도록 건축주들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창모 경기대 교수(건축학)는 “시가 ‘공간을 최대한 비우고, 공공성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기본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철학을 현실에서 집행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특색을 섬세하게 고려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타협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대기질이 갈수록 악화된다는 통념과 달리, 서울시의 공기는 최근 점차 맑아지고 있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시내 대기의 평균 미세먼지농도(PM10)가 55㎍/㎥으로 1995년 미세먼지농도 측정을 시작한 뒤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또 극미세먼지(PM2.5)도 평균 26㎍/㎥으로 나타나 2003년 관측 시작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대기질이 쾌적하다고 체감할 수 있는 날(세계보건기구 기준 미세먼지 20㎍/㎥ 이하)이 2001년에는 10일 정도에 불과했으나 2006년 이후부터는 해마다 28일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가 계속 추진해온 배출가스 저감장치 부착과 LPG 엔진 개조 등 경유자동차 저공해화 사업, 천연가스(CNG) 버스 보급 등이 결실을 맺은 것으로 평가된다.

도시환경 정책의 핵심으로 각광받는 도심 혼잡통행료가 서울에도 도입될까. 결론부터 밝히면, 오 시장 임기 안에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오 시장은 임기 초기에는 혼잡통행료에 상당한 의욕을 밝혀서, 도입 시기에 관한 설이 무성했다. 오 시장은 2007년 와의 인터뷰에서도 “취약 지역 인프라 확충의 속도를 보면서 (제도) 도입을 결정할 것”이라면서도 “준비 작업은 다 마쳐서 이제는 결단의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시가 지난해 혼잡통행료 도입의 포석으로 둔 백화점 등 교통혼잡 유발 시설에 대한 혼잡통행료 시범 도입안이 일부 언론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자 제도는 장기 과제로 남게 됐다. 현재 오 시장이 이끄는 서울시가 ‘불도저식’ 이명박형보다는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고건형에 가깝다는 평가를 듣는 이유다. 지난해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서울시민을 상대로 실시한 도심 혼잡통행료 여론조사에서는 56%가 찬성을, 40%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녹지 공간 통계로만 치면, 서울은 축복받은 도시다. 서울시 ‘공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시의 행정구역 대비 공원율은 27.4%로, 파리(20.9%), 런던(10.9%), 뉴욕(9.7%), 도쿄(6.1%) 등 주요 대도시보다 훨씬 높다. 1인당 공원 면적도 서울시는 15.9㎡로, 런던(24.2㎡)보다는 좁지만 뉴욕(10.3㎡), 파리(10.4㎡), 도쿄(4.5㎡)보다는 넓다. 체감 현실과 달리 서울시의 공원·녹지 비율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서울 외곽과 시내 곳곳에 자리잡은 산지 덕이다. 산지 면적은 전체 공원 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지대를 제외하고 계산한 ‘1인당 생활권 공원 면적’은 5.29㎡ 수준에 그친다. 런던의 약 5분의 1, 뉴욕과 파리의 절반 수준인 셈이다.

대기·녹지 수치 좋지만 행복도는 낮아

그렇다면 시민들이 체감하는 만족 수준은 얼마나 높을까. 지난 2007년 1월 서울복지재단과 대한민국학술원이 세계 10개 도시의 시민 각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복도를 보면, 거의 무안하다 못해 참담한 수준이다. 서울시민들은 설문의 11개 항목 가운데 교육문화, 복지, 환경, 생활여건, 시행정, 시에 대한 자부심, 이웃관계, 행복 등 8개 분야에서 가장 낮은 만족도를 보였다. 그 밖에 경제 여건은 7위, 치안·건강 부문에서는 모두 9위였다. 비교 대상 도시는 뉴욕·토론토·런던·파리·베를린·밀라노·도쿄·베이징·스톡홀름이었다.

장원호 서울시립대 교수(도시사회학)는 “치안과 같이 객관적 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은 분야에서도 서울시민들의 만족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한국이 급속도로 발전하다 보니 시민들의 미래 기대치가 높아 현재 상황에 대한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시의 전반적인 제도와 인프라 수준이 과히 높지 않음을 나타내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태 기자 한겨레 지역부문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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