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은 집이 부족하다. 2008년 인구는 74만7290명으로, 1995년 69만5221명에서 5만여 명 늘었다(네덜란드 통계청). 인구에 맞춰 주택 공급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2005년에서 2007년까지 주택 증가분은 3100여 채에 불과하다. 집값도 10년간 연속해 ‘플러스’ 인상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암스테르담의 집값 수준은 유럽에서도 높은 편이다. 런던, 파리, 로마 다음으로 4위다. 암스테르담 시당국의 고민은 날로 치솟는 집값과 주택 부족이라는, 두 가지 주택 관련 문제에 집중돼 있다.
시당국이 눈을 돌린 곳은 북동쪽 바다다.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고, 그 땅에 집을 짓자.’ ‘에이부르그 계획’이다. 북동쪽 바다 위에 8개의 인공섬을 짓고 그곳에 주거단지인 에이부르그를 조성한다. 1번 섬 스테거아일랜드, 2번 섬 하벤아일랜드, 3번 섬 리테아일랜드는 주거단지다. 4번 섬인 센트룸아일랜드에는 쇼핑시설과 극장 등이 있는 쇼핑·문화단지가 들어선다. 5번 섬인 스트랜드아일랜드는 해안을 따라 모래사장을 펼쳐 해변과 백사장이 있는 휴양단지로 만들 계획이다. 이 다섯 섬이 완공되는 시점은 2012년. 나머지 세 섬은 2030년 완공 목표로 현재는 설계가 진행 중이다.
2008년 12월15일,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에이부르그로 가는 26번 트램을 탔다. 번호에서 알 수 있듯 시를 가로지르는 26개의 노선 중 가장 마지막에 생긴 노선이다. 에이부르그 계획이 시의회를 통과한 것이 1998년. 5년간의 공사 끝에 스테거아일랜드에 첫 입주가 시작된 것이 2003년이다. 에이부르그로 가는 트램도 그에 맞춰 생겨났다. 중앙역을 출발한 트램은 ‘미래소설’에서 본 듯한 해저터널을 지나 20분 만에 에이부르그에 도착한다.
에이부르그 지역에는 2030년까지 모두 1만8천 채의 집이 지어진다. 수용 인원은 약 4만5천 명이다. 현재까지 그 절반인 9천 채의 집이 지어졌고 2만2천여 명이 살고 있다. 빈집은 거의 없다. ‘뉴타운’을 조성하더라도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서울의 ‘뉴타운’과 달리 암스테르담의 에이부르그는 어떻게 사람들로 가득 찬 걸까.
“시민의 수요를 반영한 다양한 주택정책이 첫 번째 비결입니다.” 에이부르그 프로젝트뷰로 총감독인 이거 루버스가 말했다. 주거단지로 조성된 에이부르그 지역은 획일적인 한 가지 주거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주택’을 갖췄다.
저소득층의 재활 효과 높은 ‘섞여 살기’첫 번째 섬인 스테거아일랜드는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개인 사업자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을 줘 마음대로 집을 짓도록 한 A지역 △물 위에 떠 있는 집들이 있는 ‘운하 지역’인 B지역 △도시계획을 세워 저소득층을 위한 집, 중산층을 위한 집, 고소득자를 위한 집을 골고루 섞은 C지역이다. 루버스 총감독은 운하 지역에 대한 시민의 호감을 도시 계획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고 말한다.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물을 좋아해요. 중심부에서도 ‘커낼벨트’, 즉 운하 주변의 집값이 가장 비싸죠. 에이부르그 곳곳에 ‘커낼벨트’를 만든 것은 운하 근처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수요 때문입니다.”
사회계층을 섞는 ‘소셜믹스’도 중요한 원칙이다. 시가 직접 계획하는 마을(C지역)에는 한 아파트, 한 빌라에도 저소득층이 약간의 임대료를 내고 사는 집, 중산층이 사는 집, 개인 소유 집 등이 3분의 1씩 섞여 있다. “어느 곳도 슬럼화하지 않고, 계층·소득수준별 다양성이 고루 녹아 조화로운 마을이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 융합이 저소득층의 사회적 재활 효과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소셜믹스의 효과에 대한 루버스 총감독의 설명이다.
암스테르담 도시계획을 맡아오다 에이부르그 도시계획을 구체화시킨 건축가 키스 린부트의 목표도 ‘콜라주 도시’다. “서로 다른 이웃들이 각자의 개성을 잃지 않고 모여살 수 있는 도시를 계획적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콜라주 도시’를 위해서는 다양한 공공 공간 또한 필수적이다. 스테거아일랜드에 ‘노숙인을 위한 아파트’가, 하벤아일랜드에는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이 조성돼 있다. 스테거아일랜드 맞은편에는 ‘녹지’가 조성돼 있다. 원래는 쓰레기 매립지였던 곳을 공원으로 바꾼 것이다.
에이부르그는 암스테르담의 자랑인 자전거도로도 그대로 이어받았다. 1600년대 조성된 ‘고도’ 암스테르담의 도심에서 듬성듬성 빠져있는 자전거도로가 에이부르그에는 더 잘 정비돼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복잡한 중앙역 근처나 오래된 요르단 마을 군데군데에는 자전거도로가 끊어져 있다. 격자형 ‘신도시’ 에이부르그에는 어디를 가나 ‘빨간 도로’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암스테르담 도심에서 에이부르그 끝까지 이어주는 26번 트램이 에이부르그를 가로지르는 대동맥이라면, 자전거도로는 트램 노선에서 주거지를 잇는 촘촘하게 짜인 모세혈관이다. 에이부르그에서 암스테르담 북쪽인 오스트바터르흐라프스메이르(Oost-Watergraafsmeer)로 곧장 이어지는 자전거 전용 다리도 있다. 암스테르담대학 법학부에 다니는 마조리 반 부덴(27)은 이 다리를 이용해 학교에 간다. 반 부덴은 “학교까지 자전거로 30분 정도 걸린다”며 “바다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학교 가는 기분이 꽤 괜찮다”고 말했다.
집 1만8천 채를 위해 40년 고민 중‘바다 위 작은 마을’ 에이부르그 계획이 가장 먼저 제안된 것은 40여 년 전인 1965년. 당시 급증하기 시작한 인구를 감당하는 대책을 찾던 중 나온 건축가 반덴 브뤽의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30여 년간 건축가들 사이에 논의만 무성한 채 실행되지 않았다. 인구·주택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수면 위로 떠오르곤 하면서. 막대한 예산, 환경적 고려, 적절한 도시계획 등 고려할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1998년 시의회는 30년간의 논의 과정을 반영한 계획을 통과시켰다. 에이부르그의 1·2·3번 섬이 ‘바다 위로 떠오른’ 것이다. 4·5번 섬의 쇼핑단지와 휴양단지 계획은 지난해 시의회를 통과했다. 나머지 3개 섬 조성 계획은 엄격한 환경영향평가를 거치는 중이다. 이거 루버스 총감독은 “무리하게 계획을 진행하지 않는다. 철저한 평가와 검토를 거친 뒤 투표를 통해 결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4만5천 명에게 제공할 1만8천 채의 집을 짓기 위해 암스테르담은 40년 이상을 고민하고 있었다.
암스테르담(네덜란드)=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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