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서커스를?
2008년 12월13일 토요일 오후 2시. 맨디 피에페(39)가 5개월 된 막내딸 에이비를 자전거 앞에 달린 바구니에 태운 뒤 자전거에 올라탔다. 곧이어 맨디의 남편 매튜 반 룬(40)이 각각 4살과 3살인 두 아들 팀과 뤽을 자전거 앞뒤에 태운 뒤 가운데 안장에 올라탔다. 암스테르담 서쪽 울프스트랏 거리에 사는 이들 가족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러 쇼핑에 나서는 참이었다. 이들의 이동수단은 자전거 2대였다.
암스테르담 5인 가족을 동행 취재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은 볼펜도 수첩도 아니다. 자전거다. 쇼핑, 출근, 등·하교, 소풍 등 목적을 불문하고 시내에서 움직일 때는 자전거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은 가히 자전거의 도시다. 이때 자전거는 대학생, 싱글족, 나홀로 출근족 등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 아이를 둔 엄마부터 예순 살 노인까지 두루 1대씩 가졌다. 그래서 72만여 명이 사는 암스테르담 시내를 달리는 자전거는 하루에 약 60만 대로 추정된다. 도시 전체의 자전거도로만 약 400km다. 차도 가운데는 항상 자줏빛 길도 함께 있다. 자전거길이다.
동행 취재의 필수품 자전거이날 맨디네 가족이 집을 나서 향한 곳은 국립오페라하우스와 국립박물관, 반고흐박물관 등이 모여 있는 뮤지엄 플레인(Museumplein) 근처 꽃가게. 집에서 2km쯤 떨어진 이곳까지 자전거길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수십 대의 자전거 무리가 교차로에서 신호를 받아 기다리고 있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무리 중에는 매튜처럼 두 아이를 앞뒤에 앉히고 두 바퀴 ‘서커스’를 벌이는 이들도 여럿이다. 그만큼 자전거 타기에 좋도록 도로가 깔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별히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환경을 위해 자전거를 타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편리하고 빠르니까 타는 거예요.” 매튜가 페달을 밟으며 말했다.
맨디와 매튜는 프리랜서 사진가다. 함께 사진관을 운영한다. 매튜가 주로 찾아오는 손님들 사진을 찍고, 맨디는 작품 사진을 찍는다. ‘예술’과 ‘돈벌이’의 경계를 오가는 이 부부는 둘 다 프리랜서여서 소득이 불규칙한 편이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한 달에 4천유로(약 740만원), 1년에 4만5천유로(약 8300만원) 정도를 번다. 네덜란드 1가구당 평균 소득은 연간 5만유로(네덜란드 통계청·2007)로 맨디 가족은 평균치에 가깝다.
이들은 6년 전 지금 살고 있는 4층 건물을 샀다. 건물을 살 때 가격은 34만유로(6억2900만원). 무슨 돈으로 산 걸까? 모아둔 돈은 없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집을 살 때는 자산이 필요하지 않아요. 매달 이자를 빼놓지 않고 낼 수 있는 고정 수입이 있으면 돼요.” 맨디가 말했다. 암스테르담 금융기관에서는 주택융자를 해줄 때 수입에 따라 살 수 있는 집을 결정한다. 그리고 해당하는 집값의 100%에서 120%(이사비용 포함)까지 융자해준다. 갖고 있는 자산과 상관없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의 건실성’만 인정받으면 집값의 전액을 대출받을 수 있기에 ‘내 집 마련’이 머나먼 꿈이 아니다. “6년 전에는 지금보다 사진관 일을 많이 해서 수입이 더 좋았어요. 주택값의 전부인 34만유로를 융자받았고 변동 이자율을 선택해 500~1200유로의 이자를 매달 내고 있어요.” 매튜가 설명했다. 이렇게 매달 이자만 갚고 원금은 갚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자만 낸다고 은행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출받은 사람이 사망한 뒤 그 집은 다시 은행 몫으로 돌아온다. 어차피 집값은 오르기 때문에 손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선열 네덜란드 주재 한국무역관 차장은 “철저하게 소득에 기초해 집을 빌려주기 때문에 암스테르담 은행들은 주택담보 대출로 유동성 위기를 겪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문제라면 살 수 있는 집의 수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최근엔 제도를 보완해 처음 집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대책을 따로 마련했다. 전체 융자금의 20%를 집을 처음 사는 이들에게 할당했다. 연소득이 5만9300유로 이하인 사람들 중 처음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최대 26만유로를 대출해준다. 대출 뒤 처음 3년간은 이자와 원금을 갚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절반 넘게가 사회적 임대주택암스테르담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의 주거 형태가 있다. 비영리단체인 주택협동조합 소유의 임대주택, 개인 소유 임대주택, 개인 소유 주택이다. 이 중 암스테르담 전체 주택의 53.8%는 주택협동조합이 소유한 임대주택으로 싼 임대료가 특징이다. ‘주택 공급의 공공성’이 목표로 만들어진 조합이기 때문이다.
시는 이 주택협동조합 소유의 임대주택의 임대료 상한선을 설정해놓고 있다. 2008년 임대료 상한선은 월 400유로다. 소득에 따라 정부에서 임대료의 일정 부분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맨디 피에페는 “임대주택에 한번 들어가면 본인이 원하는 한 평생토록 살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적 임대주택의 비율은 매년 늘어 2000년 전체 주택의 40%였던 것이 2008년 53.8%로 절반을 넘어섰다. ‘집 없는 설움’이란 게 암스테르담에서는 성립될 수 없는 단어다.
이런 임대주택은 몰려 있지 않고 도시 중심부에 골고루 퍼져 있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적 임대주택과 개인 소유 주택이 섞여 있어 특정 지역이 ‘게토화’하는 걸 막는 것이다. 사코 머스터드 암스테르담대학 교수(도시계획학)는 “사회적 임대주택과 개인 소유 주택이 서로 섞여 있으면 이는 곧장 사회 통합 효과를 가져오고, 사회 계층 간 상승작용을 일으켜 도시 문제를 완화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암스테르담은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7.1%가 네덜란드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 175개국에서 온 서로 다른 사람들이 암스테르담에서 섞여 살고 있다. 그만큼 ‘다양성 인정’은 암스테르담의 중요한 과제다. 머스터드 교수는 “오래전부터 암스테르담은 주택 혼합 정책을 통해 사회적 혼합을 두루 꾀해왔고, 이는 꽤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서로 섞여 있음에 따라 통합과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커져, 도시 전체가 다양한 문화를 안고 풍부해지고 자유로워진다”고 말했다.
맨디가 꼽는 암스테르담의 또 다른 장점은 ‘풍부한 녹지’다. 전 국토의 65%가 해수면보다 낮고 가장 높은 곳이 해발 322.5m에 불과하며 가장 낮은 곳은 해수면보다 6.7m 아래에 있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은 ‘녹지’에 민감하고 ‘공원 조성’에 신경을 많이 썼다. 박물관들이 몰려 있는 뮤지엄플레인 앞에는 가로 750m, 세로 450m의 녹지가 펼쳐져 있다. 박물관 구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본델 공원(13만 평)이, 30분쯤 걸어가면 베아트릭스 공원이 나온다. 두 군데 모두 맨디 가족이 즐겨 가는 공원이다. 크리스마스트리용 나무를 산 뒤 다섯 가족은 본델 공원을 자전거로 두세 바퀴 돌고 새떼들에게 먹이를 줬다. 그 밖에도 암스테르담 남쪽에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공원 ‘암스테르담 보스’가 있다. 면적만 991만7400㎡(약 300만 평)에 이른다. 맨디 피에페는 간혹 이곳에서 “길을 잃는다”고 말했다. 녹지는 암스테르담 전체 면적의 15%를 차지한다.
맨디네 가족은 일요일이면 종종 북쪽에 있는 웨스터 공원에 간다. 이곳에선 일요일마다 ‘아티스트 장터’가 열린다. 서울 홍익대 앞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처럼 암스테르담 예술가들이 모여 직접 만든 쿠션, 집안 장식품, 초, 가방 등을 팔고 사진, 도자기 등도 전시한다. 사진작가인 맨디도 종종 가서 사진을 전시한다. 12월 둘쨋주 일요일에는 매년 크리스마스 장터가 열려 사람들이 더 북적인다. “자전거로 어디든 40분이면 갈 수 있는 작은 도시인데 할 것이 너무 많아요. 그 역동성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맨디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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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네덜란드)=글·사진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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