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네요.” 2008년 12월10일 저녁 8시. 암스테르담 아폴란 지역의 한 중학교 복도를 서성이던 양승미(47)씨가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양씨 외에도 10여 명의 학부모들이 같은 곳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양승미씨는 지난 9월 이 학교 1학년에 입학한 양줄리(14)양의 엄마다. 이날은 11월에 치른 중간고사 결과를 가지고 학부모와 교사가 상담하는 날이다. 네덜란드는 초·중·고교 동안 이렇게 시험이 끝나면 집단 상담을 한다. 참여는 자유다.
초·중·고 시험 뒤 집단 상담
“전 오늘 세 선생님을 만나요. 줄리 담임 선생님, 수학 선생님, 프랑스어 선생님. 프랑스어를 좋아하는 줄리가 ‘엄마가 프랑스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고 말해 프랑스어 선생님을 만나고, 줄리가 수학을 너무 못해 수학 선생님을 만나요.” 양씨가 말했다.
교과서도 없이 학교를 다니던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에 들어온 뒤 줄리의 일과는 확 달라졌다.
네덜란드는 초등학교 때까지는 교과서 없이 학교를 다닌다. 간혹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는 “2×2=4인 이유를 10가지 방법으로 설명하세요” “‘믿음’이라는 단어를 써서 글을 써오세요” 등이다. 양씨가 보기에 어려운 숙제지만 줄리는 뚝딱 해낸 뒤 취미활동인 축구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국에서 온 학부모들이 처음에 명품옷을 입혀 학교에 보내다가, 아이들이 항상 체험학습이다, 운동이다 밖으로 다녀서 옷이 배겨나지 못하는 걸 보고 달라지더라고요. 구구단을 줄줄 외는 아이들도 없고요. 아이들 교육은 이래야 되는구나 싶어요.” 양씨가 줄리의 초등학교 시절을 돌이키며 말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과정 6년이 끝나면서 전국적으로 치르는 예비고사인 시토(CITO) 결과에 따라 아이들의 진로는 달라진다.
550점 만점인 시토에서 545점 이상을 받은 상위 10~15%의 아이들은 대학 진학 과정인 김나지움에 간다. 암스테르담 전체에 김나지움은 4개 있다. 김나지움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이 합쳐진 6년 과정이다. 540점 선의 아이들은 2년 과정의 중학교에 간다. 이 2년 동안의 성적과 아이들의 희망 등에 따라 다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베베오 △직업 준비를 목표로 전문대학 등에 진학하는 하버 △아예 직업전선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는 마버 등 3개의 고등학교 과정으로 갈라지게 된다.
시토에서 540점을 받은 줄리는 베베오, 하버, 마버 중 어디에 갈지를 결정하는 2년의 ‘평가과정’에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매일같이 시험이고, 매일같이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다. 양승미씨는 “줄리가 대학에 가서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해서 공부를 하는 거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한다”며 “어차피 학원 수업 등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학원에 가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12년 의무교육, 교육비는 거의 0원아이들이 어느 학교를 가든 12년의 의무교육 기간 동안 교육비는 0원에 가깝다. 6년째 사귀어온 남자친구는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싱글맘 양승미씨는 통역 및 여행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잠시 소득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교육비 때문에 걱정하는 일은 없다. “원래 중학교 과정부터 교재값은 냈는데 올해부터는 돌려준다더라고요. 이번에 책값으로 350유로를 냈는데 그중 316유로를 돌려받았어요. 그것 외에 들어가는 돈은 거의 없네요.” 양씨가 말했다. 부모의 소득이 0유로이든, 1만유로이든 관계없이 아이들이 배우고 누리는 교육환경은 모두 같다. “공부를 원하는 아이들은 누구나 돈에 상관없이 공부할 수 있어 참 다행이에요. 그게 당연한 거죠.” 양씨가 선생님과의 상담을 기다리며 말했다.
암스테르담(네덜란드)=글·사진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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