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서 전자우편 한 통을 받았다.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모아둔 돈과 퇴직금을 싸들고 여덟 달 전 훌쩍 바깥세상으로 여행을 떠난 친구다. 그가 함께 보내온 사진 한 장에 눈길이 갔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있는 국방부 건물이었는데 10년 전 ‘코소보 사태’ 때 나토군의 정밀 폭격으로 부서진 채 방치돼 있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이 사진이 이라크 취재 때 본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고 1년여 시간이 흐른 2004년 4월, 바그다드를 찾았다. 시내 곳곳에는 미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공공건물들이 흉물스런 모습으로 서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본 한 건물에 옷가지가 널려 있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미국의 공습을 막기 위해 세운 옛 이라크군 대공방어사령부라고 했다. 불안해하는 현지 가이드를 설득해 들어가봤다. 놀랍게도 폐허 속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난 뒤 일자리를 잃어 집세를 낼 수 없게 된 이라크인들이었다. 전기는 겨우 들어오고 있었고 물은 바깥의 낡은 배관에서 몰래 끌어다 쓰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언제 건물이 철거될지 몰라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른들의 어두운 표정과 달리 아이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갑작스런 이방인의 출현에 놀랄 법도 한데 오히려 신기한 구경거리를 만난 듯 웃고 떠들며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곧 무너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계단을 지나 2층에 오르니 고추까지 내놓은 벌거숭이 어린이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찬물을 뒤집어쓰고 울음을 터뜨린 막내의 팔을 잡은 채, 쪼그려 앉은 넷째의 머리에 물을 부어주는 누나는 동생들의 모습이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전쟁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바그다드 시내 한복판에서 우연찮게 만난 이 풍경은 긴장해 굳어 있던 우리의 얼굴에도 미소와 여유를 찾아주었다.
“이라크 전쟁이 끝났다”라는 ‘짝퉁 ’의 보도가 있었다.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자니 이 아이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김정효 기자 blog.hani.co.kr/hyo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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