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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독립에 냉전의 그림자가…

등록 2008-02-29 00:00 수정 2020-05-03 04:25

2월17일 독립 선언한 뒤 초긴장 상태, EU와 미국의 지지는 ‘민족자결’이란 대의에 동감해서일까

▣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성공회대 겸임교수 kimsphoto@hanmail.net

21세기 들어 ‘개방’이라는 깃발을 내건 이른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물결 아래 국가의 경계선은 날로 허물어지고 있다. 덩달아 민족 개념도 희미해져가는 모습이다. ‘민족주의자’ 하면 왠지 고리타분한 모습의 국수주의자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생겨나는 시대다. ‘저 기업이 순수한 민족자본으로 꾸려가는 기업이냐, 아니면 외국 투자가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매판자본이냐’를 따지던 날은 어느덧 먼 옛날이 된 듯하다. 역설적으로 상황이 그렇기에 민족이란 개념은 평화를 말할 때 매우 소중하다. 민족이란 지구촌 국제분쟁과 내전의 배경을 재는 유효한 잣대이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불을 댕겼던 곳

지구촌을 피로 물들이는 각종 유혈투쟁의 배경에는 민족끼리의 갈등과 충돌이 깔려 있다. 1990년대 초 옛 소련의 분해와 더불어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지구촌 분쟁의 대부분은 한 국가 안에서 혈통·언어·종교를 달리하면서 갈등을 빚어온 이민족끼리의 충돌,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패권국가들과 약소국가(약소민족)들의 이익 충돌에서 비롯됐다. ‘20세기 세계의 화약고’라 일컬어져온 발칸반도와 ‘21세기 세계의 화약고’로 떠오른 중동 지역의 상황을 돌아보면 그런 사실이 분명해진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신호로 1990년대 초 옛 소련이 여러 국가들로 쪼개지고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자, 사람들은 한때나마 지구촌 평화를 꿈꾸게 됐다. 냉전 이데올로기 대립이 사라지면 전쟁도 그칠 것이란 기대감에서였다. 그러나 곧 곳곳에서 대량학살 소식이 들려왔다. 보스니아 내전과 크로아티아 내전, 아프리카의 르완다 내전과 수단 내전, 동티모르 학살 등이 그러했다. 이런 전쟁들의 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결국 종교와 문화·언어·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이민족끼리의 폭력적 충돌과 다를 바 없다.

20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향해 쏜 탄환이 제1차 세계대전의 불을 댕겼음을 우리 모두 기억한다. 20세기 마지막인 1990년대에는 유고연방 해체 과정에서 보스니아 내전, 크로아티아 내전, 코소보 내전이 잇달아 일어났다. 그런 발칸의 불길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보스니아는 사실상 독립국가인 두 개의 공화국이 느슨한 형태의 연방을 이루고 있고,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민족갈등의 긴장 속에 있다. 그런데 이번엔 코소보가 초긴장 상황이다.

코소보는 가뜩이나 휘발성 강한 발칸반도에 불을 지필 잠재력이 큰 지역이다. 지난 1999년 인구분포에서 90% 이상을 차지하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종교는 이슬람교)이 세르비아(종교는 동방정교의 한 분파인 세르비아정교)로부터 정치적 자립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1만 명의 희생자를 냈고, 나토군이 78일 동안의 공습으로 개입한 끝에 내전이 막을 내렸다. 전쟁 뒤 코소보에는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군을 주축으로 한 5만 명의 나토 평화유지군이 진주했고, 사실상 유엔의 ‘보호령’으로 바뀌었다. 지난 8년 동안 코소보가 과연 독립국가가 될 것인지는 국제사회의 커다란 관심사였다.

네 차례에 걸친 발칸반도 현지 취재에서 거듭 확인한 사항이지만, 베오그라드를 정치 중심도시로 하는 세르비아의 입김에서 벗어나는 것은 코소보 사람들의 오랜 염원이었다. 결국 지난 2월17일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 선언을 이끌어낸 인물이 1999년 전쟁 때 코소보해방군(UCK) 사령관을 지냈던 하심 타치 코소보 총리다. 비록 나토군의 군사적 압박에 밀려 코소보를 내주었지만, 세르비아는 “코소보는 국제법상 세르비아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라고 주장한다. 코소보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사실은 21세기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의 주요국들이 코소보 독립에 우호적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생겨나는 물음 하나.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코소보 독립에 ‘푸른 신호등’을 켜준 것은 민족자결이란 대의에 공감해서일까. 피압박 민족이 정치적 예속에서 벗어나 홀로 서야 한다는 민족자결론은 듣기엔 좋은 말이지만, 정치사적으로 보면 속이 빈, 위선적이기까지 한 용어다. 20세기 초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과 터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식민지들에나 해당되는 말이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곳곳을 점령 착취하고 있던 승전국 영국, 프랑스, 일본의 식민지들은 ‘민족자결’의 적용 지역이 아니었다. 그때 한민족의 일부 지도자들이 윌슨의 민족자결론에 따라 우리 민족이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리라는 희망을 품고 파리강화회의장으로 향했던 일을 떠올리면, 그저 안타까움만 남는다.

“한 국가의 정책은 이해관계에 따라”

밖으로 내거는 논리야 어떻든,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코소보 독립에 푸른 신호등을 켜주는 데에는 냉전적 대결구도의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세르비아의 ‘형님’ 나라인 러시아가 오랫동안 동유럽에서 지녀온 영향력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다. 러시아는 코소보 독립이 발칸 지역, 나아가 동유럽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력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이라 믿는다. 큰 틀에서 보면 나토가 러시아를 압박하는 ‘동진’(marching east) 정책의 일환이라 여긴다. 많은 국제정치학자들은 “한 국가의 정책은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해왔다. 코소보 독립선언과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태도를 보면서 또 한 번 국제정치의 비정함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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