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살기 위해 ‘부업’에 매달려야 하는 인디 밴드들, 그럴수록 음악의 질은 떨어져</font>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오랜 친구가 하나 있다. 대학 동기다. 햇수로 14년째, 우리는 만나면 언제나 술을 마신다. 며칠 전, 오랜만에 한잔할까 싶어 연락을 했다. 음악을 틀어주는 홍익대 앞의 바에서 만났다. 친구는 대뜸 자기가 이곳을 인수한다고 했다. 전부터 언젠가 바를 할 생각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레라니. 친구는 말했다. “거의 막장이야.” 카드가 막히고 휴대전화가 끊기더니, 구청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떼갔다. 친구의 직업은 뮤지션이다. 음악 애호가라면 이름만 대도 아는 밴드의 리더다. 음악을 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후진’ 음반을 발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의 음반이 나오면 음악 기자나 평론가들은 침을 튀겨가며 매체에 소개한다. 음악성을 중심에 두는 시상식에서 큰 상도 받았다. 하지만 그동안 뮤지션으로 살아오면서 그는 늘 가난했다. 언제나 그런 상태였기에 가난함이란 단어에 따라붙기 마련인 측은함이라든지 연민 따위의 말이 전혀 생기지 않을 정도다. 그런 상황을 견디다 못해 그는 가게를 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행사는 거의 유일한 돈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다 비슷한 상태다. 음반은 팔리지 않고, 디지털 음원은 워낙 되는 음악만 된다. 게다가 콘서트 시장도 요즘 같아서는 ‘시장’이란 말을 쓰기 민망할 정도다. 잘나가는 가수들도 연기자로 전업할 정도니, TV와는 인연이 없는 인디 밴드들은 끔찍 그 자체다. 그런 이들이 생계를 이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우선 부업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술집이나 카페를 오픈하는 뮤지션들이 최근 부쩍 늘어났다. 음악만으로는 생활이 보장되지 않으니 가게를 여는 것이다. 모던록 계열의 뮤지션들이 대부분 생활고를 타개하기 위해 가게를 냈거나 개점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옛날 가수들이 음악으로 번 돈으로 자기 가게를 내서 취미생활처럼 운영해갔다면, 지금은 목숨을 걸고 가게를 꾸려나가야 한다. 음악이 보장해주는 수입이 말하기 민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주종이 바뀐다. 음악에 투자할 시간은 거의 없어진다. 멀쩡하게 회사에서 영업 뛰다가 가게 내도 성공하기 힘든 게 자영업의 세계다. 하물며 음악 제대로 하면서 가게를 꾸려나갔다가는 월세도 못 내고 보증금만 깎이기 십상이다. 차일피일, 음악 작업을 미루다가 어느덧 사람들이 자기를 뮤지션이 아니라 가게 주인으로만 생각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물론 가게도 잘 꾸려가면서 음악도 잘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뭘 해도 성공할 사람이다. 독하다는 얘기다. 그렇게 독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게 세상의 이치다.
음악만으로 먹고사는 사람들도 있다. 마찬가지로 판은 거의 팔리지 않는다. 대신 행사를 많이 뛴다. 현재 음악 시장에서 행사는 거의 유일한 돈줄이기도 하다. 대학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축제 같은 곳을 돌면서 전국을 누빈다. 야외 행사에 걸맞은 펑크나 로큰롤 밴드들이 주로 행사 계열로 분류된다. 서울시청 앞 무대부터 안흥 찐빵 축제, 김제 지평선 축제 등등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인디 밴드들의 경우 행사를 얼마나 잘 물어오느냐가 유능한 매니저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행사를 많이 뛰는 밴드들에게는 대부분 공통점이 있다. 음악의 질이 점점 낮아진다는 것이다. 음악의 질이란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구린 건 구린 거다. 어쩔 수 없다. 본인들도 인정한다. 감각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행사에 모이는 사람들이 그 밴드가 좋아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냥 공짜고 공연이니까 모여 있기 마련이다. 음악에 큰 관심도 없는 불특정 다수의 군중이 반응하는 노래는 밴드의 자작곡이 아니다. 기존 가요를 리메이크해서 연주하거나, 군중이 좋아할 만한 비트와 멜로디의 노래를 해야 한다.
행사에서 돈을 모아 콘서트를 열면 객석에는 찬바람이 분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자기 노래는 연주하지 않고, 그런 곡으로만 공연 시간을 채우게 된다. 행사 때 반응이 좋아야 이벤트 업자들의 섭외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작곡도 행사에 맞는 뻔한 스타일의 노래들만 나오게 된다. 갈수록 뻔해지는 음악에 팬은 떠난다. 음반이 나와도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그저, 행사를 뛰기 위한 명함 한 장이 추가될 뿐이다. 음반도 공연도 인정 못 받고 행사로만 활동을 이어가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깝지만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그들은 탄식한다.
“기타 멘 꼬마들 보면 혼내고 싶다”
전자가 중견 조연급 탤런트가 내는 고깃집이라면 후자는 밤무대 전용 가수다. 고깃집도 못 내고 밤무대도 못 설 정도가 되면 정말이지 답이 없다. 저주받은 운명이려니, 체념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친구가 있다. 역시 뮤지션이다. 중학생 영어 과외를 하며 근근이 입에 풀칠하는 그를 얼마 전에 만나 암울한 얘기를 나눴다. 암울이 절정으로 달했을 무렵 그는 넋두리처럼 말했다. “홍대 앞에서 기타 메고 다니는 꼬마들 보면 당장 뛰어가서 혼내고 싶다니까. 왜 인생을 낭비하려 하냐고.” 주야장천 MP3 다운받으면서 들을 음악 없다고 푸념하는 세태를 탓해야 할지, 너도 빨리 가난에 뼛속까지 익숙해지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놈이 산다고 해서 나간 술자리였건만, 나는 술값이 얼마인지 머릿속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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