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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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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의 전쟁

등록 2008-01-25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파병 병사들의 살인범죄 증가한 미국, 침공전쟁은 어떻게 사람들을 폭력에 길들이는가 </font>

▣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성공회대 겸임교수kimsphoto@hanmail.net

21세기 들어 벌인 두 개의 침공전쟁(2001년 아프가니스탄, 2003년 이라크)의 후폭풍으로 미국은 폭력사회로 바뀌어가는 모습이다. 이라크에 파병됐다가 미국으로 돌아온 참전군인들의 살인범죄가 늘어난다는 최근 기사를 옮긴 기사(2008년 1월14일)는 그런 모습을 잘 전해준다. 기사에 따르면, 미국 본토에 주둔 중인 현역과 아프간전쟁 뒤 군복을 벗은 젊은이들이 살인사건을 일으킨 경우는 지난 6년 동안 모두 349건. 아프간전쟁이 일어나기 전 6년 동안의 184건에 비하면 89%나 늘어났다. 기사는 “미국 지방언론을 통해 밝혀진 숫자 말고도 알려지지 않은 참전군인 연루 살인사건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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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딴사람이 되어 돌아오다

전쟁터에서 ‘적’을 향하던 총구가 미국 본토에서 일반 시민들에게로 돌려지는 사건이 많이 터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흔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 일컫는 정신적 후유증을 꼽는다. 전쟁터에서 일상적으로 겪어온 죽음의 공포, 또는 이렇다 할 죄가 없는 아프간·이라크 민간인을 반미 게릴라로 잘못 보고 죽인 뒤엔 정신적 고통과 죄책감이 따르기 마련이다. 악몽에 시달리며 불면증, 알코올과 마약 중독에 빠지기 십상이다. 전선에서 익숙해진 폭력적 성향에 놀란 애인이나 아내로부터 “우리 그만 헤어지자”는 말을 듣기 일쑤다. 그런 개인적 고통과 좌절감으로 인해 살인이란 극단적인 해법을 찾게 된다. 미국에서 살인을 저지른 전 해병대 부사관의 아내가 “그를 배에 태워 전선으로 보냈는데, 완전히 딴사람이 돼서 돌아왔다”고 한탄했을 정도다.

따지고 보면 전선에서 돌아온 참전군인들의 범죄(살인·폭력)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이 베트남 수렁에 허우적대던 1960년대는 이즈음처럼 지원이 아닌 징집제였다. 미국의 전쟁 개입이 비도덕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베트남에서 많은 미군병사들은 마구잡이 폭력과 살인에 익숙해졌고,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마약을 가까이했다. 베트남 참전군인 가운데 30%가량은 미국에 돌아온 뒤 PTSD 증상으로 고통을 겪었고, 일부 사람들은 이혼, 술과 마약 중독 속에 자살이나 살인범죄에 빠져들었다. 그와 아울러 미국 사회의 살인범죄율은 전보다 매우 높아졌다.

여기서 따져볼 문제. 미국 사회에 살인범죄와 폭력이 늘어나는 것이 전쟁 참전자들 탓인가? 이 물음의 답은 “그들 때문만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한 가지 흥미로운 조사가 있다. 지난 1980년 미 사회학자 다이엔 아처와 로즈메리 가트너는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개입했던 10년 동안(1963~73년) 미국의 살인범죄가 급속히 늘어난 이유가 무엇인가를 알아봤다. 그 10년 동안 미국은 남성에 의한 살인범죄율이 101%, 여성에 의한 살인범죄율이 59% 늘어났다. 두 사회학자가 특히 관심을 쏟은 대목은 그런 살인범죄 증가가 베트남전쟁에서 폭력에 익숙해진 병사들이 미국 사회로 복귀한 뒤 적응을 못해 저지르는 범죄 때문인가였다.

조사작업을 진행하면서 두 사회학자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 동안에 전반적으로 미국 사회가 폭력화됐음을 알아냈다. 이들의 연구 결과인 (1984)에 따르면, 베트남 참전세대가 아닌 45살 이상의 세대에서도 살인범죄율이 다른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높아졌다. 다시 말해 미국에서 저질러진 강력범죄들이 베트남전쟁의 마구잡이 폭력에 익숙해진 제대군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날마다 뉴스로 듣던 베트남전쟁의 폭력에 무뎌져 “베트남전쟁 참전자나 일반 국민 가릴 것 없이 전반적으로 폭력범죄들을 많이 저질렀다”는 얘기다. 두 사회학자가 내린 결론은 명쾌했다. “폭력을 합법화하는 전쟁이 치러지는 동안, 일반 사회도 폭력을 정당화하게 되고, 전쟁이 끝나고도 한동안은 그런 폭력적 경향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부시 효과’와 폭력둔감증

미국이 베트남전쟁의 아픈 기억을 잊을 무렵인 1990년대는 때마침 경제호황과 더불어 해마다 범죄율이 줄어드는 현상을 보였다. 그러다가 21세기 들어 미국 사회는 강력범죄(살인·강간)가 늘어나는 현상을 보인다. 미국의 아프간 침공 1년 뒤인 2002년 미 연방수사국(FBI)은 “미국의 전국 1만7천 개 경찰서들을 통해 집계한 바에 따르면, 10년 만에 처음으로 주요 범죄들이 늘어났고 살인율도 3.1%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2007년 6월에 나온 FBI의 2006년 범죄 통계에 따르면, 강도범죄율 6%, 살인 범죄율 6.7%가 늘어났다(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 FBI는 경찰 순찰대의 감소와 폭력단, 청소년 폭력, 총기 관련 범죄 탓으로 돌렸지만, 지구촌의 평화주의자들은 그런 분석에 동의하기 어렵다.

미 부시 행정부의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반전 평화주의자라면 그 책임이 다름 아닌 부시 행정부에 있다고 손가락질할 만하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깃발 아래 미군이 지구촌 곳곳에서 벌여온 마구잡이 폭력에 미국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부시 행정부의 폭력적인 대외 강공책이 낳는 부정적인 결과인 이른바 ‘부시 효과’(Bush effect)가 미국 사회에 퍼지고 있다는 비판마저 가능하다. 전쟁은 후방의 폭력범죄 증가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베트남전쟁 시기를 다룬 앞의 두 사회학자가 내린 결론으로 미뤄보면, 지금 많은 미국인들이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의 폭력에 익숙해져가는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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