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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라덴은 왜 잡히지 않을까

등록 2007-12-28 00:00 수정 2020-05-03 04:25

미 특수부대 요원, 정부군, 무장대원이 잡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음에도 반미 감정 높은 산악지대 토착민이 숨겨줘

▣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성공회대 겸임교수kimsphoto@hanmail.net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의 산악지대는 지난 6년 동안 삼엄한 분위기에 휩싸여왔다. 살기마저 느껴지는 그곳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지는 세 부류의 인간들이 있다. 첫째, 첨단 군사장비를 갖춘 미군 특수부대 정예요원들. 둘째, 친미 파키스탄 정권의 1인 권력자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지휘하는 파키스탄 정부군. 셋째, 5천만달러의 엄청난 현상금을 노린 ‘인간 사냥꾼’들이다. 앞의 두 부류가 정규군이라면, 셋째 부류는 비정규 무장대원들이다.

인심을 잃었다면 사담 후세인 같았을 것

이 세 부류는 출신은 달라도 겨냥하는 바는 똑같다. 2001년 9·11 테러 사건의 주범 오사마 빈라덴을 죽이든 산 채로 잡든, 이슬람 반미 지하드(성스런 전쟁) 전선에서 제거하는 일이다. 이집트 의사 출신으로 알카에다의 제2인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의 체포 또는 사살도 ‘사냥꾼’들이 꿈꾸는 목표다. 9·11을 겪은 뒤 미군 통수권자인 조지 부시 대통령이 벌여온 ‘테러와의 전쟁’ 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빈라덴·알자와히리 제거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빈라덴을 법의 심판에 넘기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6년이 넘도록 빈라덴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한 상태다.

빈라덴은 지난 6년 동안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접경 산악지대에 잠행을 거듭하며 은신해온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지만 그의 정확한 행방은 안개 속이다. 9·11 기념일을 비롯해 적당한 때만 되면 그의 존재를 증명해 보였다. 등을 통해 반미 지하드 참여를 촉구하는 빈라덴의 동영상이나 육성 테이프가 나올 때마다 부시 행정부는 애써 곤혹스런 표정을 감춰야 했다. 그의 저항 메시지는 기본적으로 미국을 겨냥하지만, 내용은 다양했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하마스 정권을 압박하는 것을 비난하거나(2006년 4월), 이라크에 친미 정권을 세우려는 총선에 이라크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지 말라는 권유(2004년 12월) 등이 그러하다.

빈라덴은 9·11 테러 공격 이전에도 반미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파트와(율법)를 발표했다. 9·11 전보다 테러 사건들은 더욱 늘어났다. 그런 사건들은 빈라덴에게서 직접 지령을 받기보다는 그의 투쟁 메시지에 공감하는 자생적인 반미 저항세력의 단독 행동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생겨난다. 세계 최고의 첨단장비를 갖춘 미군 특수부대조차 무슨 일로 빈라덴을 붙잡지 못하는 것일까. 대답은 명쾌하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산악지대의 토착민들이 빈라덴을 감싸주기 때문이다.

빈라덴이 토착민들로부터 인심을 잃었다면, 그는 벌써 사담 후세인처럼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곳은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부족 지역으로, 반미 감정이 흉흉한 곳이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현지에 가보니, 그곳의 반미 감정이 생각보다 높았다. 카슈미르의 쌀가게 주인은 가게 창문에다 빈라덴의 사진을 붙여두고 있을 정도였다. 빈라덴의 생존력의 바탕은 바로 그런 이슬람 민초들의 마음 깊숙이에 자리잡은 반미 정서일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테러와의 전쟁’ 깃발 아래 부시 행정부는 알카에다와 그 연계 조직을 파괴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그 결과 9·11 당시 약 4천 명에 이르렀던 알카에다 요원의 80% 이상이 죽거나 붙잡힌 것으로 미 정보당국은 분석한다. 그렇다고 알카에다가 소멸한 것은 아니다.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 산악지대를 근거지로 훈련캠프를 마련해 새로운 피(새로운 조직원)를 수혈받고 활동 반경을 넓혀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사실은 마이크 매코넬 미 국가정보국장이 최근 미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 출석해 “알카에다 수뇌부가 훈련캠프를 설치했다”고 밝힌 데서도 확인된다.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초조해진 부시

현재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물론이고 소말리아, 알제리, 이집트 등에서 나름의 조직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9·11 뒤 미국의 공세에 밀려 한때 괴멸 상태에 빠지기도 했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그 뒤를 이은 혼란한 상황에서 이슬람권에 퍼진 반미 정서를 바탕으로 조직을 재정비해왔다. 알카에다가 미 외교전문지 가 꼽은 ‘이라크 전쟁 10대 승리자’ 중 하나로 꼽힌 것도 그런 배경을 깔고 있다.

빈라덴의 알카에다 조직이 훈련캠프까지 마련하고 조직 재건 움직임을 보인다는 보고를 받으면서 부시 미 대통령은 속이 탈 것이다. 2008년 말 미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빈라덴 세력을 제거하지 못하면 득표에 좋을 게 없다. 빈라덴이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은 ‘테러와의 전쟁’ 실패를 뜻하고, 이라크 정책 실패와 더불어 미 공화당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악재다. 이래저래 부시의 머릿속엔 빈라덴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어쩌면 독자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산악지대에 쌓인 눈이 녹을 무렵인 2008년 봄, 빈라덴이 사살됐다는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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