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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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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병사는 탈영하고 싶다

등록 2007-11-30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이라크 전쟁 2007년 돌아오지 않은 미 육군 장병이 4698명, 영국군도 지난해 5월까지 1만 명 넘어서</font>

▣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성공회대 겸임교수kimsphoto@hanmail.net

어느 전쟁에서든 젊은 병사들은 탈출을 꿈꾼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또래 젊은이들을 겨냥해 죽기 살기로 맞서기보다는 차라리 총을 내려놓고 탈영할 것을 꿈꾼다. 탈영의 역사는 길다. 자료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무려 2만1천 명의 미군이 탈영죄로 군법재판소에 넘겨졌다. 그 가운데 49명이 총살형 판결을 받았는데, 에디 솔비크라는 이름의 병사 1명만이 사형이 집행된 것으로 알려진다. 나치 독일군의 탈영병 처리는 더 가혹했다. 전쟁사 연구자 만프레드 메서슈미트 교수(독일 울름대학)의 집계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무려 2만2천 명의 독일군 장병이 탈영죄로 처형됐다.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 부대에서 도망쳤던 독일군 사병 요제프 라칭거가 바로 오늘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다.

미군 탈영병의 도피처는 캐나다

미국의 개입이 부도덕하다는 비판이 높았던 베트남전쟁 때 탈영병과 징집 거부자는 무려 6만 명에 이르렀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웃 나라인 캐나다로 몸을 피했다. 그 무렵 캐나다 정부는 탈영병들에게 너그러웠다. 징집 거부나 탈영을 ‘정치적 망명’으로 분류해 편히 머물 집을 소개해주었다. 캐나다 국경 관리들은 긴장돼 얼굴이 얼어붙은 미국 청년들에게 “군대 문제 때문에 넘어왔느냐”고 묻고, “예스”라는 대답을 들으면 입국허가 도장을 시원스레 찍어주었다. 4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세계 제3위 석유 매장량의 이라크를 노린 ‘더러운 전쟁’(dirty war)의 하수인이 되길 거부한 미군 탈영병들이 도피처로 찾는 곳도 캐나다다.

미 육군 탈영병 수가 크게 늘어났다는 보도(〈AP통신〉을 옮긴 11월19일치)는 명령에만 충실히 따르는 기계인간이길 거부하고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고뇌를 떠오르게 한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 9월 마감한 2007 회계연도 기간에 총 4698명의 미 육군 장병들이 허가 없이 소속 부대를 벗어나 30일 안에 돌아오지 않았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던 2003년과 견주면 80%나 늘어난 규모다. 탈영병은 미군뿐 아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이라크 침공의 또 다른 주력군인 영국군도 2006년 5월까지 탈영병 규모가 무려 1만 명을 넘어섰다.

1815년 워털루 전쟁은 단지 하루 동안의 전쟁이었다. 미 남북전쟁 당시 격전이었던 게티즈버그 전투도 사흘 동안에 치러졌고, 더구나 야간전투는 벌이지도 않았다. 이라크는 아프간과 더불어 미군이 베트남전쟁 이래 가장 오랫동안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이라크에서 탈영병이 늘어난 것은 지난 6년 동안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이어진 ‘전쟁 수행에 따른 피로감’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서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을 빼놓을 수 없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탈영이 많아지는 것은 베트남전쟁 때처럼 명분 없는 ‘더러운 전쟁’에 끼어든 병사들이 심리적 갈등에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전쟁에 부역하다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를 매설 폭탄에 생목숨을 잃는 것은 바보짓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전선이 따로 없는 이라크에 투입된 병사들은 컴퓨터로 즐기던 전쟁게임과는 다르다는 걸 느낀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싸워야 하고, 죽어가는 자의 신음을 들어야 한다. 부대로 돌아온 병사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맞는다. 낮에 민가를 뒤져 용의자들을 붙잡을 때 들었던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귓가를 맴돈다. 그러면서 고민한다. “내가 왜 여기서 싸워야 하는가….”

싫든 좋든 건장한 남자라면 군대에 가야 했던 60년대 베트남전쟁 때와는 달리 지금은 모병제다. 지원자만 받는다. 미 국방부는 지원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문제를 풀려고 모병에 매우 적극적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가인 42번지 지하철에 가보면 노점상처럼 좌판을 벌여놓고 지나는 젊은이들에게 말을 거는 모병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일단 호기심을 보이는 젊은이들에게 “군대 가면 이러저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선전한다. “일정한 기간 동안 군복무를 마치면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 있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는다.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하고 좌절감에 빠진 가난한 젊은이들은 군대를 하나의 탈출구로 여기고 지원서를 쓰게 된다. 더 나은 인간적인 삶을 바라는 젊은이가 가장 비인간적인 명령체계 속에 자신을 던져넣는 역설적인 순간이다. 그러곤 곧 이라크전쟁의 실상을 깨닫고 또 다른 탈출구를 찾기에 이른다.

뉴욕 거리의 ‘노점상 모병관’들

지금 미국 정치권에서는 산더미처럼 불어난 전쟁비용과 곧 4천 명에 이르게 될 전사자(11월20일 현재 3873명) 탓에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 군역사 전문가인 리처드 가브리엘 교수(대니얼웹스터대학)는 “일반적으로 국가는 전쟁을 치르면서 돈이 얼마나 들었고, 사상자가 몇 명 생겼나에 관심을 둔다. 병사 개개인이 얼마나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가에 대해선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간’을 기준으로 전쟁비용을 계산한다면, 전쟁이 남긴 정신적 고통이 아마도 가장 비싼 비용일 거라는 얘기다. 그런 정신적 고통에서 탈출하는 수단 중 하나가 다름 아닌 탈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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