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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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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정의로워야 한다

등록 2008-03-14 00:00 수정 2020-05-03 04:25

침공 5주년 통계 숫자상으로 안정을 되찾아가는 이라크, ‘미국의 평화’ 아닌 ‘이라크의 평화’가 이뤄지길

▣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성공회대 겸임교수kimsphoto@hanmail.net

2003년 3월20일 미국이 이라크 바그다드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벌이면서 시작된 이라크의 비극과 고통이 벌써 5년째 이어지고 있다. 사담 후세인의 독재로 고통받는 이라크 민초들을 구해내겠다는 명분 아래(실제로는, 세계 제3위의 석유매장량을 지닌 이라크에 친미 정권을 세움으로써 석유의 안정적 공급선을 확보하겠다는 욕심 아래) 일으킨 이라크 침공은 결과적으로 숱한 생목숨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미국의 침공이 없었다면 흘리지 않아도 될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래서 독일의 이름난 지식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전쟁을 함부로 벌여선 안 된다고 규정한) 국제법을 패권주의 정치학으로 갈음하는 뚜렷한 일탈 행위“라고 비판했다.

바그다드에서도 걸핏하면 저항세력의 기습 공격

지금 이라크에는 16만 명에 이르는 미군이 주둔 중이다. 많은 미군 병사들이 이미 이라크에서의 1회 근무에 그치지 않고, 두세 차례 거듭 이라크에 재배치된 상태다. 이들은 긴장과 피로감으로 하루빨리 다시 본국으로 되돌아가길 간절히 바라는 것으로 알려진다. 2007년 미 국방부가 미군 병사들의 이라크 복무 기한을 15개월로 늘린 것은 이라크에서 미군이 그만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이 지출하는 전쟁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한 달에 100억달러쯤 지출되는 것으로 집계된다. 미 국방부의 장성들과 민간인 고위 관료들은 가능한 한 이른 시점에서 이라크에서 발을 빼려는 전략(이른바 ‘출구전략’)을 세우고 있지만, 문제는 이라크 상황이 탁상에서 세운 계획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앤서니 코데즈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 ‘이라크에서의 승리와 폭력’에서 “이라크의 상황이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아지고 있으나, 미국은 아직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통계 숫자상으로만 본다면 이라크 상황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듯한 모습이다.

무엇보다 민간인 사망자가 줄어들고 있다. 2006년 11월 무렵만 해도 한 달에 3천 명쯤의 민간인들이 여러 유혈 사태로 숨을 거두었지만, 2007년 12월부터는 700명쯤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반미 저항세력의 활동도 전에 비해 주춤한 모습이다. 2005년에 견줘 2007년엔 미군을 겨냥한 공격 횟수가 40%쯤으로 잦아들었다. 이에 따라 미군의 대규모 공습 횟수도 적어졌다(2007년 6월엔 130회, 같은 해 12월엔 40회).

한때 내전 상태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냈던 이라크 내부의 유혈 사태도 숫자상으로는 가라앉는 모습이다.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에 피가 피를 부르는 공격 횟수는 2006년 12월 무려 1100건에 이르렀지만, 2007년 11월엔 100건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반미 저항세력의 근거지라 할 ‘수니 삼각지대’는 놔두고라도 미국의 이라크 지배 거점이자 수도인 바그다드에서 조차 걸핏하면 반미 저항세력의 기습 공격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미국의 승리는 아직 멀었다”는 진단이 나올 법하다.

이라크 수렁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미 부시 행정부의 또 다른 고민은 이라크 군대와 경찰 문제다. 미국은 이라크 정부군이 2012년까지 이라크 국내 치안을 떠맡고, 2018년까지는 외국 군대의 침략에 맞설 만큼의 군사력을 키운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침략군인 미군의 허수아비 용병’이라고 손가락질받는 이라크 정부군이 제 역할을 잘해나가길 바라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미군은 ‘전략적 파트너십’이라는 이름 아래 이라크군과의 공조를 바라지만, 낮엔 미군과 함께 수색 활동을 펴던 이라크 정부군이 밤에는 오히려 총부리를 미군에게 겨누는 일마저 벌어지는 실정이다.

인간공동체의 안보인 ‘인간안보’를 떠올리며

전쟁이 끝난 지 5년이 넘도록 이라크가 혼란 상황을 거듭하는 현실은 어느 나라든 함부로 전쟁을 벌여선 안 된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해준다. 구체적인 이라크 재건 청사진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채 “이라크 사람들이 미군 탱크에 장미꽃을 던지리라”라는 미국인들 나름의 편리한 낙관론 아래 밀어붙인 이라크 침공과 그 뒤의 혼란을 가리켜 훗날 역사가들은 ‘21세기의 야만과 패권적 야욕에서 비롯된 참극’이란 혹독한 비판 기록을 남길 것이다.

여기서 새삼 ‘인간안보’의 개념이 떠오른다. 전쟁을 치르는 과정도 물론이려니와 전쟁의 마무리 단계에서 인간안보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안보란 국가안보에 머물지 않고 넓게는 인간공동체의 안보를, 좁게는 인간 개개인의 안보를 가리킨다. 전쟁폭력의 위협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지킨다는 것은 모든 가치행위의 으뜸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인간안보가 지켜지지 않는 한 이 땅에 평화는 없고, 정의로운 평화는 더군다나 없다.

지구촌의 여러 분쟁 지역들을 취재하면서 굳어진 생각 하나. 참된 의미의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는 정복자 로마 사람들의 평화였다. 로마에 복속된 약소민족들에게 평화는 ‘노예의 평화’일 뿐이었다. 강자만을 위한 평화, 약자의 인간안보가 위협당하는 평화는 정의로운 평화가 아니다. 21세기 ‘미국의 평화’(팍스 아메리카나)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민초들이 바라는 평화는 미국의 평화보다는 ‘이라크의 평화’다.

*‘김재명의 전쟁과 평화’를 이번호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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