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22일, 주링이 죽었다. 향년 50. 중국 내 주요 언론사와 대부분의 온·오프라인 매체, 그리고 여러 소셜미디어에서 이 여성의 죽음을 대서특필했다. 국가의 중요 지도자나 유명인이 아닌, 한 평범한 여성의 부고에 온 나라가 들끓었다. 중국인들이 주링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는 이유는 그가 ‘사라진 정의’를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주링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최고 명문대인 칭화대학 출신이다. 부모는 최상위 지식인 계층이었고, 어릴 때부터 베이징에서 최고 교육을 받고 자란 ‘엄친딸’이었다. 화학과 3학년이던 1994년, 비극이 시작됐다. 그해 11월24일부터 주링의 몸에 이상현상이 나타났다. 복통이 잦고 갑자기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주링은 병원에 여러 차례 입원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다음해인 1995년 3월26일, 상태가 더 심각해진 그는 다시 병원에 입원했고 그로부터 약 6개월 정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병원에서 검사 결과가 나왔다. 전형적인 탈륨 중독이었다. 주링의 몸에서는 치사량의 탈륨이 검출됐다.
주링의 부모는 누군가 고의로 딸에게 탈륨을 투약했다고 보고 곧바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경찰은 성의 있는 수사를 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보도한 언론들과 주링 부모의 말에 따르면, 관할 공안국은 처음부터 제대로 수사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탈륨 중독임이 밝혀지고도 두 달 정도 지나서야 사건이 접수되고 수사가 시작됐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증거가 사라진 다음이었다.
사건은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나고 주링이 50살을 일기로 사망하기 전까지도 미제로 남았다. 1996년 말 베이징 공안국은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혐의자를 특정할 수 없다”며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주링 부모에 따르면, 당시 공안국이 범인으로 확실시되는 혐의자를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자신들에게도 말했다고 한다. 당시 칭화대에 다니던 주링의 친구들도 범인으로 짐작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평소에 주링을 질투하던 같은 과 동기이자 기숙사 룸메이트인 쑨웨이였다. 쑨웨이는 연구실에 있는 탈륨에 접근 가능했고, 주링이 쓰러지던 날 그의 물병에 직접 물을 받아서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이 차일피일 수사를 게을리하는 사이, 쑨웨이는 유학을 핑계로 황급히 외국으로 ‘달아났다’. 쑨웨이가 고위 관료의 손녀딸이라서 공안국이 일부러 사건을 ‘묻었다’는 소문만 무성히 나돌았다. 주링은 죽기 직전까지 예닐곱 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사지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 됐다.
“주링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도 기적이지만 50살까지 꿋꿋이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가 (사건에 맞서) 항쟁하는 것이자 모두에게 (사건을) 잊지 말라고 일깨우는 것입니다. (…) 이 사건은 많은 사람의 양심과 정의에 대한 상식을 건드렸습니다. 주링과 같은 고급 지식인 계층 가정 출신도 안전함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중국에서 과연 누가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시사주간지 <봉황 위클리> 2023년 11월25일치 관련 기사 중 주링의 친구 인터뷰 내용에서 발췌)
연말에 만난 한 중국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베이징 길거리에서 외국인들이 사라졌어요. 상하이나 선전 등 다른 대도시에서도 예전만큼 외국인이 바글거리지 않는 것 같아요. 진짜 외국인이 눈에 띄게 많이 사라졌다고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대표되는 중국 정부의 과도한 방역 정책에 실망과 분노를 느낀 많은 외국인이 중국을 떠났다. 중-미 관계 악화와 ‘간첩법’ 등의 개정으로, 투자와 기업경영 환경이 악화했다. 팬데믹 이후에도 경제가 회복하지 못하자 많은 외국 기업이 속속 철수하거나,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로 이전해갔다. 외국 기업들이 철수하자 그들을 따라온 직원 가족도 사라졌고, 그들의 자녀가 다녔던 국제학교 중에도 폐교하는 곳이 속속 생겨났다. 중국 내 많은 언론매체가 지난 10년 동안 외국인 유입 통계와 비교해서 대략 절반의 외국인이 2023년 한 해 동안 중국을 떠났거나 지금도 계속 떠난다고 보도했다.
중국 출입국관리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중국에 들어온 외국인은 팬데믹 전인 2019년 수준의 17.3% 정도에 불과하다. 이 수치도 중국에 친인척이 있는 국외 화교의 방문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같은 기간 중국에 온 국외 여행객 수는 약 5만2천 명이다. 참고로 2019년 상반기 국외 여행객 수는 379만 명, 그중 절반이 홍콩과 마카오에서 왔다.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하고 무비자 허용 국가를 확대하고 있지만, 한번 등을 돌린 외국인들은 좀체 중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시진핑 체제의 경직성과 노골적인 애국주의 교육 강화 등으로 중국은 ‘돈 많은 북한’이 돼가고 있다.
2023년에는 많은 기업가와 정부 고위 관료가 사라지거나 죽었다. 어떤 이는 ‘별들이 우수수 떨어진 한 해’였다고도 말한다. 10월27일 상하이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한 리커창 전 총리는 그중 가장 큰 ‘떨어진 별’이었다. 여러 외신을 통해 리커창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싸고 석연치 않은 여러 정황이 있다는 ‘음모론’이 나돌지만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6월 이후 공식 석상에서 돌연 사라진 친강 전 외교부장은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미국 매체 <폴리티코> 등은 그가 이미 자살했거나 고문 등으로 죽었다고 보도했지만 이 역시 확인할 방법이 없다. 8월 이후 공개 석상에서 사라진 리상푸 전 국방부장의 행방도 지금까지 오리무중이다. 한 나라의 외교부장과 국방부장이 소리 소문 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무엇을 의미할까. 중국 정치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죽의 장막’에 가려졌고, 마오쩌둥식 ‘일인 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중국 공산당의 ‘비밀정치’ 전통은 2023년 3월 시진핑 체제 3기로 접어들면서 그 본색을 더 강화하고 있다. 체제 3기는 덩샤오핑 이래 중국 정치체제가 지향해오던 ‘임기 종신제’와 ‘일인 권력 집중 금지’ 등의 원칙을 파괴하고, 당·정·군의 모든 권력을 시진핑 일인으로 집중시켰다. 3월10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시진핑은 참석자 전원 만장일치라는 사상 초유의 찬성률로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 최초로 3연임에 성공한 ‘황제’가 됐다.
예전에는 비록 정치 파벌 간 권력투쟁에 따른 부작용이 있기는 했지만, 파벌끼리 견제·경쟁하며 권력분점이라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정치적 경쟁과 최소한의 견제가 사라졌다. 부패 척결이라는 이름으로 ‘호랑이’와 ‘파리’가 우수수 사라져갔다. 2023년 한 해에만 약 45명의 고위 관료가 각종 ‘부패 혐의’로 낙마했고, 그중 최고위급으로는 구이저우성 당서기였던 쑨즈강도 포함됐다.
사라진 기업가도 부지기수다. 2020년 중국 정부의 금융규제 정책을 비판했다가 한동안 갑자기 사라졌던 마윈은 다시 돌아오기는 했지만 알리바바의 모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지금은 홍콩과 일본의 대학 강단에서 ‘명예교수’를 하고 있다. 마윈 이전에도 2017년 밍톈그룹 회장이던 샤오젠화가 홍콩에서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들에게 납치돼 사라졌다. 그는 사라진 지 5년 만에 중국 법정에 재판받는 모습으로 나타났고, 뇌물수수와 불법자금 운용 등의 혐의로 13년형을 선고받았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헝다와 중즈, 비구이위안 같은 굴지의 부동산 대기업들이 채무를 갚지 못하게 됐는데 이로 인해 기업주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기도 했다. 대부분은 당국에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받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자세한 행방이 알려지지 않은 기업가도 많다.
사업하는 한 중국 지인은 “친분이 있는 사업가 중 절반 이상이 어느 날 사라졌고, 그중 3분의 1이 각종 경영에 얽힌 문제로 감옥에 있거나 조사받고 있다”고 했다. 중국의 한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시진핑 체제 이후 중국 민영기업가 사이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다. 덩샤오핑은 기업가들이 세금을 내고 법에 따라 사업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지금은 기업가들이 이윤보다는 체제 이데올로기와 국가안보 문제에 더 눈치 봐야 해서 경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기업가가 겁에 질려서 자발적으로 사라지거나 실종되는 경우도 있다.”
크리스마스인 12월25일, 중국 유명 경제잡지 <차이신>에 ‘실사구시 사상 노선을 재검토하자’(重温实事求是思想路线)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하지만 검색해보면 ‘404 Not Found’라는 페이지가 뜬다. ‘404’는 중국 인터넷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숫자다. 주로 검열에 걸려 삭제된 글 등을 검색할 때 화면에 뜨는 표시다.
<차이신>은 이 ‘404’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개혁·개방은 현대 중국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었다. (…) 문화대혁명 당시 국가경제가 붕괴 직전에 있었지만 관리들은 여전히 ‘상황이 좋고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 선진국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약하는 주변 국가들에도 크게 뒤처지고 있다. (…) 1978년 이후 45년이 지난 지금, 실사구시 사상 노선을 재검토하는 것은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이 사설이 왜 ‘404’로 분류됐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모든 언론매체를 동원해 ‘중국 경제 광명론’을 적극 홍보하며 ‘중국 경제는 갈수록 점점 더 좋아진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 경제 암흑론’을 말하는 사람들과 글들은 사라지거나 삭제당하고 있다.
거의 모든 것이 ‘사라져간’ 2023년 중국의 세밑 거리를 뒤덮는 것은 우울과 불안이다. 2024년에는 사라져갔던 것들이 ‘빛’을 찾아 돌아올 수 있을까.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베이징에 거주하는 필자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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