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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국가라는 바늘구멍 들어가기

등록 2007-11-02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미-이스라엘 ‘신성하지 않은 동맹’ 속에서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한 두 가지 전제</font>

▣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성공회대 겸임교수kimsphoto@hanmail.net

중동 팔레스타인 땅이 이스라엘에 모조리 점령당한 지도 벌써 40년이 흘렀다. 1967년 6일 동안 벌어진 전쟁(제3차 중동전쟁 또는 6일전쟁) 이후 이스라엘군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절의 일본 헌병처럼 팔레스타인에서 ‘무단통치’를 펴왔고, 국제사회로부터 ‘깡패국가’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20세기 전반기 우리 한민족이 조선 독립을 꿈꾸었듯이, 21세기 전반기에 독립국가를 이루는 것이 팔레스타인 민초들의 꿈이다. 문제는 그 꿈이 이뤄지려면 까다로운 조건이 따라붙는다는 점이다.

중동평화협정이 점령을 합법화시켜

지금부터 꼭 16년 전인 1991년 10월31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중동평화회담의 막이 올랐다. 1948년 독립국가를 이룬 이래 주변 아랍국들과 4차례의 큰 전쟁을 벌여온 이스라엘은 그날 처음으로 아랍국과 마주 앉았다. 마드리드 회의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아버지 부시)은 “우리는 평화, 참된 평화를 찾고 있다. 영토적 타협이야말로 평화의 기본 요건이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땅과 평화의 교환’(팔레스타인에 땅, 이스라엘에 평화) 등식이 선보였던 마드리드 회담은 2년 뒤인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이어졌다. 미 클린턴 행정부가 깊이 개입했던 평화협정은 199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서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음에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는 들어서지 못했다.

중동 현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중동평화협정을 미국과 이스라엘이 합작하는 ‘사기극’이라 여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제한적인 자치권만 주었을 뿐, 이스라엘의 억압통치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가자에서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 셰이크 아메드 야신(2004년 이스라엘군이 암살)을 만났을 때,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난민 귀환 등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오랫동안 바라온 주요 사항들을 관철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타협으로 오히려 이스라엘의 점령을 합법화했다.”

실제로 이스라엘 극우파들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란 있을 수 없다”는 태도가 완고하다. 지금은 식물인간으로 병석에 누운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도 지난날 야당(리쿠드당) 정치인 시절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내뱉곤 했다. 유엔대사(1997~99)를 지냈던 도어 골드에게 언제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로 될 것 같냐고 묻자,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독립국가를 갖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제럴드 스타인버그 교수(바르일란대학·정치학)는 이스라엘에 대한 세계적인 비판 여론은 전세계 반유대주의자들의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했다.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을 지중해 바다 속으로 빠뜨려 죽이려는 음모를 막으려면, 전략적으로 1967년 6일전쟁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땅을 무단통치할 수밖에 없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중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상황만이라도 안정시켜 이라크 사태 해결에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 이즈음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1월에 미국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에서 열릴 중동평화회의 준비로 바쁘다. 라이스 장관 스스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견해 차이를 좁히기 위해 수년 만에 가장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힐 정도다. 그녀는 “11월 회담이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도 말했다.

라이스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문제는 친이스라엘 일방주의에 바탕한 미국이 이스라엘의 입맛에 맞는 팔레스타인 온건파만을 협상 테이블로 부르려 한다는 점이다. 팔레스타인 온건파의 우두머리는 마무드 아바스 자치수반이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가 만나고 싶어하는 인물도 아바스 같은 타협적 성향의 온건파이지, 하마스 출신인 이스마일 하니야 총리 같은 강경파가 아니다. 미국은 하마스를 ‘중동평화의 훼방꾼(spoiler)’이라고 비판하곤 했다. 그래서 11월 중동평화회담에 하마스 정치인들을 초대할 뜻이 없어 보인다. 결국은 미국의 친이스라엘 일방주의가 문제다. 미-이스라엘 두 나라의 유착관계는 유럽의 외교사에 자주 등장하는 신성동맹에 빗대어 ‘신성하지 못한 동맹’(Unholy Alliance)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이미 1993년 오슬로 협정문서는 ‘휴지 뭉치’, 사문서가 된 상태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오랜 희망이 이뤄지지 않는 한, 중동에서의 유혈투쟁은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중동 땅에 언제 유혈사태가 그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출현할 것인가. 기본적으로 두 가지 큰 변화가 따라야 할 듯하다. 첫째, 친이스라엘 일방주의에서 비껴나는 좀더 중도적인 정권이 워싱턴에 들어서야 한다. 둘째,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인정하는 평화지향적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함께 충족될 경우에만 중동평화협상에 희망에 있다. 그렇지 않고 ‘제2의 부시’가 워싱턴에 똬리를 틀고 있다면, 그리고 ‘제2의 샤론’이 텔아비브에 버티고 있다면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중동의 속담처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탄생을 바라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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