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공식언어, 나라라는 개념보다 언어권에 따라 동질감을 느낀다네
▣ 브뤼셀=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벨기에는 인구 1천만 명에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작은 나라다. 하지만 프랑스어, 플라망어(네덜란드어 방언), 독일어 등 세 가지 언어를 일상어로 사용한다. 독일어는 1차 세계대전 뒤 합병한 유펜과 말메디라는 지역에서 사용하는데, 사용자는 전체 인구의 3%에 못 미친다. 인구의 60%는 플라망어를, 37%는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벨기에를 남북으로 절반씩 나눴을 때, 북부 지역인 플랑드르에선 플라망어를, 남부 지역인 왈룬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북부와 남부 중간에 있는 브뤼셀은 프랑스어와 플라망어를 함께 쓰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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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벨기에 프랑스어’는 프랑스에서 사용하는 프랑스어의 사투리, 플라망어는 네덜란드어의 사투리라고 한다. 실제로 벨기에 대학의 수업 교재 중 ‘프랑스 현지 프랑스어와 벨기에 프랑스어의 차이’라는 독본에 딸린 단어장은 무려 200여 쪽에 이른다. 그만큼 두 곳에서 사용하는 프랑스어는 같으면서도 달리 쓰이는 말이 많다는 뜻이다.
일부 프랑스인들 중에는 벨기에에서 사용하는 프랑스어가 느리고 어색하다며 비웃기도 한다. 예를 들어 벨기에 프랑스어에선 거스름돈을 주거나 뭔가 부탁할 때 ‘실부플레’(S’il vous plait·영어의 ‘플리즈’)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것은 프랑스인과 벨기에인을 구분하는 가장 눈에 띄는 언어 습관이다. 그럼에도 벨기에는 프랑스어권 문화 전도사의 역할도 충실히 해 유명한 만화 이나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의 문장은 벨기에를 모국어로 한 프랑스어로 쓰여졌다.
게다가 본토 프랑스어와의 차이는 대외적으로 ‘프랑코폰’(프랑스어 문화권)이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어느 정도 희석된다. 한 예로 3년마다 개최되는 ‘세계정치학회’에선 영어 회의 외에 프랑스어 회의가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로 프랑코폰의 위력은 여전하다. 여기서는 본토 프랑스어, 벨기에 프랑스어, 아프리카 프랑스어에 상관없이 프랑코폰이라면 누구나 프랑스어로 발표하고 토론한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프랑스어권기구’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프랑스어를 일상어로 쓰는 나라는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등 32개국이다. 또 보조어로 쓰는 나라는 베트남, 모로코 등을 포함해 21개 나라에 이르며, 사용 인구는 1억75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니 6천만 명이 채 안 되는 프랑스인들이 그보다 많은 프랑스어 사용 인구를 일일이 사투리라고 멸시할 일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다중 언어를 쓰는 벨기에에선 다른 언어를 쓰는 같은 나라 사람과 만났을 때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까? 아주 시골 사람이 아닌 한 플라망어권 사람들은 대체로 프랑스어를 잘 구사한다. 여전히 프랑스어는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언어이기 때문에 플라망어를 배우려는 프랑스어권 사람보다 프랑스어를 배우려는 플라망어권 사람들이 많다. 벨기에 왕실도 일상적으론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공식행사에서 플라망어권을 방문할 일이 있을 때만 플라망어를 사용한다.
벨기에에선 언어의 구분은 곧 경제 수준과도 직결된다. 식민지의 잔재로 북아프리카 등에서 오는 불법 이민자들은 대부분 프랑스어권 사람들인데, 주로 프랑코폰 지역인 왈룬에 정착한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어권 지역은 이민자들로 넘쳐나고 경제력은 후퇴하는 반면, 플랑드르 지역은 상대적으로 이민자들이 적고 부유하다. 따라서 프랑스어권 지역은 복지를 중시하는 사회당이 우세하고, 플랑드르 지역은 자유주의 정당과 극우 정당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
언어가 나뉘어 있는 만큼 국민 통합을 이루기가 쉽지 않은 단점도 있다. 왈룬 사람들은 프랑스의 TV는 즐겨 보면서도 자국 플라망어권 방송은 거의 보지 않는다. 때문에 ‘나라’라는 개념보다는 ‘언어권’이라는 맥락에서 더욱 동질감을 느낀다. 왈룬인들에겐 벨기에인보다는 프랑코폰이라는 것이 더 동질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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