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부터 히잡 착용 금지한 프랑스 사회 ‘라이시테’의 딜레마
▣ 파리=이선주 전문위원 koreapeace@free.fr
노엘(크리스마스)이 다가온다. 이맘때면 늘 그렇듯 편지함엔 선물광고 카탈로그가 수북하게 쌓이고, 거리마다 알록달록 장식된 조명등과 대형 트리가 다가올 노엘을 서둘러 재촉한다. 기독교 전통의 사회에선 1년 중 가장 큰 가족 축제다.
무신론자나 이교도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노엘 분위기인데, 특히 이방인에겐 모국의 가족이 간절하게 그리워지는 것이 바로 이맘때다. 반가운 친지들이 북적대는 설날에 듬뿍 받아야 할 세배돈을 아깝게 놓치며 머나먼 이국땅에 덩그러니 남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12월이면 영락없이 다가와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전염병처럼 모두를 엄습하는 노엘에, 지난해부터 더해진 새로운 두드러기가 있다.
“선생님! 학교에서 히잡 착용은 금지하면서 트리는 허용해도 되나요?”
이것은 단순히 트리 얘기가 아니라 아주 복잡한 얘기다.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면 ‘프랑스는 라이시테의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밖에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좀더 설명하면 “프랑스는 부패한 왕정을 시민의 힘으로 몰아내고 세운 (위대한) 공화국이며, 이 공화국은 모든 종교에 대해 중용을 지키는 동시에 인간의 자유의식을 존중하고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그렇게 해서 1905년, 국가와 종교를 분리하는 법, 라이시테(국가의 비종교성)법이 생겨났고 지난 12월9일을 기해 100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하늘의 뜻을 받드는 종교가 대중을 이끌어가던 전통을 가진 사회에서, 이제 하늘이 뭐라 하든 ‘공식적으로’ 국가가 뜻대로 대중을 이끌어가게 된 것이다. 이런 라이시테 이념을 존중하는 국가인 만큼 공교육기관들은 학생들이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 각자의 신앙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니 이전엔 그런 얘기였다. 그런데 100년 전의 법이 겪어야 했던 세월의 풍파를 법이 아니면 누가 알겠는가.
“히잡을 벗어라/ 벗을 수 없다” “라이시테를 존중하라/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라” 등 100년의 세월 동안 44개의 조항으로 구성된 라이시테법으로는 무난히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일들이 생겨났다.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면, 종교의 메뉴가 늘어나 그 모두를 어떻게 존중해야 할지 헷갈리고, 늘어나버린 ‘다름’ 앞에서 어떻게 중용을 지켜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해졌다.
그래서 2004년 “공교육기관에서 모든 종교적인 표징의 착용을 금지한다”는 ‘금지령’이 보태지기에 이른다. 다른 것이 하나둘뿐일 땐 기꺼이 ‘허용’을 택했던 ‘중용’이, 이제 배가된 ‘다름’ 앞에서 ‘금지’를 택한 격이다. 덕분에(?) 2004년부터 프랑스의 공교육기관 안에서 히잡은 퇴치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의문 중 하나가 연말에 학교에 장식되는 트리다. “그러면 종교적인 축제 노엘을 장식하는 트리는 종교적이지 않은가”라는 의문이다. 그 여파로 트리를 치운 소수의 학교가 있기도 했지만, 트리는 “종교적이지 않다”는 게 대의다. 사실 100살 된 라이시테의 프랑스라 그런지 가톨릭 전통의 사회치고는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는 청·장년층이 그리 많지 않으니, 노엘조차도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풍습적이라는 게 더 적절하다.
나의 종교가 뭔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이전엔 이렇게 응수하곤 했다. “무신론자였는데 지금은 라이시테의 개인이다.” 상대방의 종교가 무엇이든 존중한다는 의미고, 좀더 개인적인 이유로는, 무신론과 유신론의 갈등 과정(?)에 있다는 암시이기도 했다. 세월은 사건을 낳고 사건은 언어에 묘한 어감을 남기는 법. 100살의 라이시테가 근간에 겪은 두드러기 나는 어감이 맘에 걸린다. 이젠 이렇게 대답해야겠다. “무신론자였다가… 민주적인 라이시테의 개인이었는데… 여전히 종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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